삶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세계는 얄미우리만큼 우리를 속이고 진심을 몰라주고 세상의 중심으로부터 우리를 배제한다. 곳곳에 널린 행복은 신기하게도 나에게는 오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그렇듯 아버지는 자식을 먹이면서 자식이 부모의 우를 다시 범할까 노심초사한다. 자신이 아파했던 그것을 자녀가 알게 될까 봐 끊임없이 세상은 그렇지 않다고, 웬만하면 이 세계를 변호하려 한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적어도 삶이 안겨다 준 상처가 생긴 이후로. 나이를 먹었다 하더라도 그 시간은 조금도 흐르지 않았다. 시간은 늘 그 자리애서 그대로 우리를 다시 아프게 한다. 시간은 나이를 먹지 않았다.
몇 년 전이었는지 모르겠다. 딸이 초등 2학년이었나 보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딸을 위해 색칠하기 캔버스를 가장 작은 걸로 사준 적이 있었다. A6 사이즈 정도의 작은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색칠하기 교재였다. 그날은 토요일 같은 휴일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점심때가 가까운 오전에 딸과 함께 거실에 있었으니까. 색칠하기 선물을 이유 없이 주었을 때 천사 같은 딸은 방긋 웃으며 기뻐했다. 그것은 내 기쁨이기도 했다.
"아빠가 ○○이를 위해서 선물을 해 주었지?, 어서 그려 보자!"
"기래! (그래!)"
주말에 소박한 딸의 행복을 위해 얼른 그려 보라고 권한다. 딸이 미술로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까......
"아빠~ 아빠도 같이 하자~"
"......"
"아빠~ 아빠가 도와줘야지......"
"○○아 잠깐만, 아빠가 오빠야랑 이야기하고 계시지? 좀 기다려 주울래~?"
그 말을 딸이 몇 번은 했던 것 같다. 다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고개를 들어 딸을 봤을 때는 온몸이 마비된 듯 정지한 채 생애 가장 억울한 슬픔의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얼굴을 일 그리며 소리 없이 영혼까지 울고 있었다. 소리를 내지 않았다......
딸이 행여 다쳤나 해서 얼른 일어나 다가가봤더니 다행히 다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머리칼이 곤두서는 아픔을 느꼈다. 딸이 그림을 예쁘게 칠하려다 삐져나가고, 칠하려다 삐져나가기를 몇 번을 반복하다가 더 이상은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다다라서 느끼는 완전한 무력감과, 어떻게 해도 안된다는 삶이 내리는 엄격한 좌절감을 느낀 채, 캔버스에 붓으로 화풀이하듯 물감으로 망쳐버리고, 그 붓을 그대로 든 채로 혼자 흐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난 그리고 직감했다. 이것은 내가 어렸을 때 느꼈던 것과 같은, 횡격막이 쉼 없이 끄덕이며 숨을 고르지 못해 소리조차 나지 않은 그 비애와 같은 것임을.
딸의 손은 그때까지 섬세하지 않을 때다. 그리고 몇 번이고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었다. 난 딸이 기다려 주길 마땅히 바랬었다. 그리고 딸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울고 있었던 것이다.
난 본능적으로 그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생각은 딸에게 그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사명의식으로 바로 이어졌다. 회상되는 내 어린 시절의 어린이 버전의 절망감을 순식간에 뒤로한 채 유쾌하고 호기로운 아빠의 모습을 찾아갔다. 격정적으로 일어나는 정신적 고통에 끄덕 없이 저항하며.
"괜찮아 ○○아, 괜찮아... 잘했네?
우와 여기까지 잘했네?
○○이가 아빠에게 도와달라고 했는데
아빠가 모르고 안도와 줬어요? 미안해~
우와~ 그런데 조금만 고치면 엄청 이쁘겠다!"
딸의 붓을 뺏어 들고 삐져나간 부분과 딸이 절망감으로 휘갈겨 망쳐놓은, 아직도 고통 속에 꿈틀거리며 채 마르지 않은 그 아우성을 선량한 세상의 색깔인 고결한 하얀색으로 덧칠하며 실존의 좌절을 지워나가고 있었다. 난 알고 있었다. 지금 지우고 있는 것은 딸의 비애가 아닌 나의 비애라는 것을.
완전히 지우진 못하였지만 딸은 금세 활기를 되찾는다.
"아빠, 여기도...... 여기도.......
여기도 그렇게 해줘~"
"알겠어~ 아빠가 다 해줄게? 조금만 기다려 주울래?"
"......"
"......"
어느새 딸은 오빠야랑 장난치며 놀고 있다. 아직도 그 눈가가 촉촉해 보였지만 그것은 이제 슬픔이 아니다. 슬픔을 이겨낸 흔적이다. 다시 내가 공부한 철학과 심리학이 기초 이론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누군가 내 어려움을 알아주는 단 한 사람이 있으면 삶의 좌절은 극복된다.
그 몇 년 전의 사건이 오늘 다시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 회사 동료가 수십 일을 들여 공부하고 인터뷰하며 만든 자료로 리뷰를 하는데, 주변에 다섯 명의 동료와 후배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이렇게 하면 안 되니, 다시 보강을 해야 하느니... (내일 임원 보고인데......) 이걸로는 메시지 전달이 안되니 하는 매우 지적인 조언을 너무나 자신만만하게 던지고 있었다. 난 발표자의 마음에 일어나는 '어떻게 해도 안 되는 실존의 비애'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 고결한 삶의 색깔인 하얀색 물감의 붓으로 그의 캔버스에 덧칠을 하려 했다.
"여러분들은 결함을 발견하고 도움이 되어라고 말씀해 주시지만, 이 분이 6개월간 취재하고 자료화해 온 것을 불과 20분간 설명을 듣고, 내용을 이제 알게 된 것인데, 도와준답시고 이 분의 장기간의 노력에 이런 식으로 절망감을 안겨 줘서는 안 되는 겁니다"라고....
"왜 이 분이 이 많은 이야기들을 오늘에서야 듣고 삼켜야 하는 거냐?"라고.
회의를 마치고 발표자와 다시 마주 앉았다.
"마치 한국 대표팀이 독일 분데스리가와 축구를 하는데 왠지 이기는 게임이 아닐 것 같은 느낌을 그들이 받은 거"라고. "그래도 그 사람들이 축구 선수여서 하는 말은 아니었다"라고 난 힘주어 말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일하는 한 가지 내면의 이유는, 누군가의 좌절과 절망을 지워나가는 것을 돕고 싶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나 자신을 치유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딸은 언젠가부터 국제미술대회 등에서 상을 받아오기 시작했다. 그다음 또 어디서 그림 상을 받아오고, 또 어디서 그리기 상을 받아온다. 자기가 어디에서 무슨 그림을 그려서 어떤 상을 받았는지 기억조차 다 하지 못한다.
그림 그리기에서 틀린 건 틀린 게 아니다. 작가의 양식학적 접근이고, 도상학적 접근이며, 세계와 자신에 대한 맥락적 이해를 자신의 손으로 최선을 다해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기에 자를 대고 그은 지평선은 작품이 될 수 없다는 기준에 다수가 동의해 온 것 아니겠는가.
삶은, 자라면서 세계와 투쟁하며 아픔을 겪는 것이고, 그 모든 아픔을 나이 먹으며 극복하고 스스로 치유해 가는 것이며, 더 나아가 그 삶의 의미와 가치를 자기 조직적으로 완성해 가는 일련의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