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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운박사 Feb 25. 2023

당신이라는 책, 글 꿈 삶을 짓다

브라운박사의 실험실


가뭄에 콩 나듯 강의를 할 때가 있다.

오래 한 분야에서 일하다 보니 어줍잖은 식견과 노하우가 쌓여 부족하지만 그것을 슬쩍 나눈다. 물론 나의 내공이 일천하여 소문이 자자하게 나서는, 절대, 아니고 나를 아껴주시는 선배와 지인들이 한번 해보라고 판을 깔아주신 덕분이었다.


어제는 늦은 저녁 일산에서 작은 강의를 했다.

만학도 학우분들을 모시고 글쓰기 특강을 한 것인데,

나누고 온 것보다 담아온 것이 많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모두 살림에 직장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는 상황인데 그 시간을 쪼개 새로운 공부를 하기 위해 모인 분들이었다. 나도 이제 나이가 적지 않아 그 시간에 일하고 달려와 무엇을 집중해 듣는다는 게 어렵다는 걸 아는지라, 형광등 아래 학우분들의 얼굴을 보니 왠지 애틋한 마음도 들었다.


한 분 한분이 글쓰기에서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핑요한지도 모르고, 한시간 반이란 짧은 시간 동안에는 서두만 풀기도 바쁜 상황.


일하며 느꼈던 글쓰기의 중요성이랄까, 노하우랄까 이런 것들을 간략히 정리해 갔다. 상당 부분은 필자들의 글을 교정하고 피드백하면서 ‘지적질’ 하다 보니 알게 된 것!

작은 교실에는 이미 맛있는 다과가 한상 차려져 있고, 훈기가 감돌고 있었다. 일단 요기 좀 하라고 이끄시는 통에 떨림과 서먹함도 스르르 사라졌다.


일전에 했던 콘텐츠 전문가를 꿈꾸는 청년 대상의 강의와는사뭇분위기가 달랐다. 온라인 세계를 수놓고자 하는 이들에게 고리타분하게 글쓰기가 왠말인가, 한두 명을 빼고는 모두 노트북을 펼쳐두고 다른 과제를 하기 바빠 보였다. 잔뜩 긴장하고 갔지만 앞에 선 나에게 1도 관심 없는 그들 ‘덕분에’ 아주~~ 편하게 준비해 간 강의를 잘 마치고 왔다! 물론 그중에도 졸린 눈을 치켜뜨며 아이컨택을 하고 질문을 하는 초롱이들이 있었는데, 참 고맙더라. 나중에 목이 아플 때까지 답변도 해주었다.


이번 학우님들은 작은 공간과 인원도 소규모라 더 그리 느꼈을지 몰라도, 정말 리액션과 흡수력 만렙인 분들이었다. 눈빛은 초롱초롱, 수업 중간중간의 적절한 추임새와 날카로운 질문…..이런 강의를 많이 접하지 않으셨던 탓도 있지만 절실한 삶의 질문으로 공부를 시작한 분들이라, 마음가짐이 좀 달랐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나도 준비해 간 내용 외에도 더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샘솟았다. 사실 강의든 거래든 인간의 활동은 모두 상호작용이니..초보 소리꾼이 고참 고수를 만난 듯, 학우님들의 궁디팡팡 속에 강의를 잘 마칠 수 있었다.


늘 글쓰기 강의를 하고나면 좀 거칠지만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아는 게 이거뿐이라서인지도.


“글을 쓰려고 하지 마세요, 인생의 경험을 차곡차곡 쌓으세요, 나를 고유하게 밀고 가세요, 곰국처럼 끓이세요, 학문도 지식도 여행도 실패도 그냥 찐하게 푹 사세요, 남들의 표준과 기교는 아무 도움이 안돼요, 김훈 책을 아무리 읽어도 나는 김훈이 아닙니다, 될 필요도 없습니다, 내 삶이 얼마나 찐했는지 나는 그 순간 얼마나 절실했는지 그래서 나에게 새겨진 삶의 무늬가 얼마나 고유하고 소중한지… 내 존재의 꼭지점이 얼마나 뾰족한지 그것만이 전부입니다, 그러면 그 순간 글은 절로 써집니다.”


이번 강의의 대미는 송길영 님의 말을 좀 빌려왔다

“당신의 모든 것이 메시지다“

“당신의 본진을 탄탄히 구축하라!


그리고 내가 잠시 잊고 있던 소중한 꿈 하나가 되살아났다. 글이란 것이 이리도 나의 존재와 닿아 있는 것이라면 이리저리 빙빙 돌지 말고 나를 직면하는 글쓰기 과정을 함께 해보고 싶은 것이다. 치유의 글쓰기, 직면의 글쓰기…. 결국 나의 보이스를 만나는 아주 즉각적인 방법으로서 글쓰기를 잘 활용해 보는 것이다.


꽤 오래 소매틱과 표현 예술치료를 배웠다. 어제도 학우분들은 자신을 표현하고 싶다고 하셨다. 여전히 주저하고 자신없어 하시는 분들을 만나며, 글쓰는 것 또한 예술과 닿아있기에 ’몸으로 쓰는 글‘ 소매틱 라이팅(somatic writing) 을 제대로 해보고 싶어졌다! 몸은 인지적 글보다 좀더 솔직하다. 자기 몸에 봉인된 이야기와 목소리들, 그것을 움직임과 감각으로 하나하나 세밀히알아차리고 글의 예술작업을 통해 안전하게 꺼내어 만나고 통합해 가는 것…(거…창하다;; 배운게 기억이 안난다는 치명적 문제도..!)


쳇gpt도 대신 써줄 수 없는 당신이라는 책.. 그 귀한 책의 첫 페이지를 이렇게 열어본다.


#당신이라는#책#글쓰기#소매틱#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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