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박사의 실험실
올해는 하동 지역에 비가 종종 내려 다른 때보다 꽃이 잘 되었다고 했고,
그래서 일주일간 '꽃철'에 제대로 손님맞이를 했다고 한다.
이미 꽃은 다 졌는데요, 기사님의 담담한 말과 상관없이 화개로, 악양으로 대형 관광버스가 계속 밀려들었다.
비록 내가 내려간 그날엔 꽃이 절정의 순간을 지나
거의 나무에 남아있질 않았지만,
유난한 햇살과 아직 흔적을 남긴채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이 있어 마지막 상춘객으로서 썩 나쁘지 않은 기억이었다.
몇시간 전만 해도 빽빽한 서울의 빌딩 사이에 있던 내가 무엇하나 시야에 걸리는 것 없이 환히 펼쳐진 산과 하늘, 그리고 길 한 가운데 있자니
외국보다 더 외국에 있는 거 같은 아득함이 밀려온다.
사람들이 왜 봄에는 꽃보러, 가을에는 단풍보러 갈까 생각해보니
땅에서 하늘에서 생동하는 에너지를 얻고,
또 땅으로 수렴하는 에너지를 얻으려는 지극히 '동물적인' 행동이 아닌가 싶다.
물론 예쁘고 고와서, 날이 좋아서, 몸속의 세포를 들뜨게 해서, 어울리기 좋아서라는
여러 '인간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문득, 꽃보고 단풍보고 하는 것 모두 제철채소 찾아 먹듯, 제철 에너지를 제대로
느끼려는 생명의 몸짓일듯.
젊어서야, 나 스스로 봄이고 꽃이라 굳이 멀고먼 길 위를 헤매며 꽃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겠지만
나이들수록 줄어드는 '기운생동'을 위해 전국 곳곳으로 길로 나서는 것이리라.
문득, 병실에서 여러개 호스에 의지해 계신 어머님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는,
분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80대까지도 정정하게 운전을 하고,
인텔리 여성답게 아프시기 전까지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세상에서 가장 높고, 단단하고, 아름답던 어머니였는데..
벚꽃이 너무 아름답게 휘날리니, 그 벚꽃러럼 고우셨기에 생동하셨기에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시다고 했다.
지는 것을 겁내어
지금 내눈에 쏟아지는 이 아름다움을,
피부를 간질이는 이 생기를 외면할 수는 없다.
봄날 꽃철이 아쉽고, 절절한 것은 그것이 영원하지 않아서, 한철이라서일 것이다.
내게 소중한 사람들도 이 봄과 같을 것이다.
다른 것을 생각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우리에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