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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운박사 Aug 09. 2023

내가 통과해야 할 인생의 숙제

브라운박사의 실험실

몇 년전, 여름 휴가 때였다.

지금 정도였을까, 옷을 뚫고 등으로 쏘아대는 한여름 태양빛이 법당 안에도 들이쳤다.

다행히 나는 앞줄에서 세번째 쯤이라 '태양의' 화상은 입지 않았지만, 수인을 한 손바닥이

마치 백록담이나 된 듯, 땀이 고일 정도였다. 대웅전 법당이 상당히 넓었지만 빽빽하게 앉은 사람들의 열기가 이미 다 장악해버린 뒤였다.

그만큼 밖이 더웠는데, 사실 내 마음속은 더 더웠다.

들끓는 망상으로 숨이 턱턱 막혀올 지경이었고, 과장을 보태면 반가부좌를 풀고 뛰쳐나가고 싶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 수록 망상의 색깔이 진해졌다. 두서없이 떠오르던 생각은 점점 더 하나의 이야기로 모아졌고, 그것은 최근까지도 나를 괴롭히던 아주 구체적인 상황이었다.


"아니야!, 아니야! 그것도 다 내가 했다고!"


조금만 더위가 더 강했다면, 조금만 더 마음속 소란함이 강했다면

모두가 고요한 가운데 나는 저 소리를 입으로 뱉을 뻔 했다.


나는 그때 많이 억울하고 답답했다.

온 시간을 바쳐 부산스럽게 애를 썼다고 생각했다. 나를 최대한 낮추고, 맞추고, 잰 걸음으로,

무거운 엉덩이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 눈엔 다른 이들은 그래 보이지 않았고, 내가 이렇게 애를 써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몫까지를 해야했기 때문이라는 피해의식이 아주 깊이 자라 있었다.


다 내가 했을 리 없다. 독고다이 예술가가 아닌 다음에야, 다 내가 하는 일이란 현실에 존재하기 힘들고

특히 조직이나 단체에선 그렇게 일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건 독재이거나 나의 망상일 것이기에.

그러나 그런 망상까지 뇌신경이 뻗칠 만큼 나는 무거운 짐을 진 채 코너에 몰려 있었고,

구체적인 도움과 나눔의 손길을 찾기 어렵다 판단했다.

입밖에 내어 말하지 못했다. 이건 너희의 몫이라고. 그들에게 해야할 말이 막히자,

화살이 나에게로 쏟아졌다. 그런 말도 못하다니.

나는 그런 말을 할 수 있고, 아니 해야만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인데. 주어진 권한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다니.


나에게 과중하게 주어지는 일과 책임을 당당하고 담담하게 나누지 못했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을 것이다.

현실속의 잡다한 이유를 거두고 보면, 아주명확하게.

나는 싫은소리를 하기 두려웠다.

좋은 선배로 기억되고 싶었다.

그들의 원망어린 눈빛과 사나운 에너지를

슬금슬금 피하고 싶었다. 그 팽팽한 신경전 속에 그들이 떠날까봐,  걱정됐다.

대신, 왠만한 사람보다는 튼튼한 내 체력과 인생의 시간을 제물 삼아 메워보자 생각했다.

갈등을 피하는 대신, 역할을 피하는 대신, 나는 표피적인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대신 속엔 분노가 차올랐다.삶은 좀 심하게 기울었다.


다행히 명상수련이 며칠 지나자,

답답함도 미움도 조금씩 녹았다.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것이 나의 현재가 아니며

나와 동일시할 필요가 없는 것이란 알아차림이 조금 더 성성해진 까닭이었다. 마음 한가운데 맑고 둥근 에너지 같은 것이 자리잡은 듯했다. 그들도, 일도 들이비 않고 그저 나의 들숨날숨과 집중만이 존재했다.


역대급으로 덥다는 올 여름, 또 내 마음은 열기로 차오른다. 다행히도 그해보다는 약하지만, 뿌리는 깊다.

한 선배가 말한다.

해야할 소리를 눈치보지 않고,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하는 것

당장은 상대가 싫어하고, 원망하더라도

그 반응에만 미리 걱정이 되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피해의식을 키우고

결과적으로 일을 그르치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지금 통과해야 할 인생의 숙제라고.

슬금슬금 피하지 않는 것..!


나는 이제 그 숙제를 더는 미루지 않고

서툴러도, 완전하지 않아도 조금씩 해보려 한다.

일에서 뒷걸음치는 순간 나는 삶에서도 그러고 있었던 것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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