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박사의실험실
경북 왜관에 있는 성베네딕도수도원에서의 가을 문화피정을 마침내 모두 마쳤다. 다른 출장까지 겹쳐 11월은 매주 금토 금토 ktx를 타야했다. 기차 타고 어디 가는 걸 원체 좋아하지만 수도원에서의 행사는 의미도 깊고 개인적으로도 참 귀한 일이라 가는 길도 오는 길도 행복하고 감사했다.
성베네딕도수도원에 새롭게 지어진 문화영성센터의 개관을 기념하면서 문화계 인사들의 좋은 이야기를 청하는 자리였다. 건물의 설계를 맡은 승효상 건축가님과, 왜관 수도원을 배경으로 <높고 푸른 사다리>라는 아름다운 소설을 쓰신 공지영 작가님, 그리고 <사랑과 혁명>을 통해 정해박해를 중심으로 천주를 믿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 김탁환 작가님까지. 수도원과 인연이 깊으신 공지영 작가님의 주선으로 이 행사는 시작되었고, 나는 엉겁결에 실무자가 되어 여름부터 준비를 해왔다.
작가님들의 북토크와 기존 수도원의 피정 프로그램이 조화롭게 이루어지는 자리였는데, 나도 피정은 처음이어서 호기심과 조심스러움 두 가지가 공존하는 시간이었다. 비가톨릭신자인 사람들 앞에서 이래 뵈도 나도 세례받았는데, 하던 교만한 마음은 가톨릭의 '본진'에 와서는 오히려 쑥스럽고 죄송한 일이 되어, 세례명을 입밖으로 내는 것도 어색했다. 어제는 절에 갔다 오늘은 수도원에 가는 기묘한 양다리가 조금 민망하기도 했지만 고요함 가운데 기도하고 묵상하는 영성의 뿌리는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자기 합리화를 하곤 했다.
왜관 수도원이 특별했던 것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직후 세례를 받고 하는 짧은 시간 속에 처음으로 ‘피정’이란 단어를 알게 되었을 때,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첫번째 순례길에서 머물렀던 라바날 델 카미노란 작은 마을에 있던 베네딕도 수도원이 왜관수도원과도 깊은 인연이 있는 곳이라 더욱 특별했다. 40여일의 순례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라바날이고 그곳애서의 피정이었으니! 한국인들이 워낙 많이 찾는 곳이다 보니 왜관 수도원에서 한국 수사님을 파견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출장을 빙자하여 수도원에 내려왔지만, 나는 때때로 참으로 귀했던 젊은 날의 어느 시점으로 마음이 달아나곤 했다. 모든 이에게 산티아고 순례란 특별하겠지만, 특히 한달 이상의 시간을 비워야 해서 최소 휴직을 하거나 하던 일을 그만두고야 갈 수 있는 한국인들에게 이 길은 그 의미가 더욱 특별할 테다. 8년간 무지막지하게 나를 닦아세우며 일했고,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어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을 때, 우유부단한 나를 이끌었던 것은 바로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다. 그만큼 절실하게 걸었던 40여 일이 끝났을 때, 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거라는 바람은,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해서도, 묵시와와 피니에스테라를 열흘이상 돌아다니고 와서도 채워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안전하고 충만했던 순례길이 한순간 눈앞에서 사라지고 거칠고 사나운 일상 (배경만 스페인인)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큰 맘먹고 온 스페인이니 그라나다는 가봐야할 거 같아, 밤기차를 타고 가보았지만, 가슴에 숭숭 바람이 드는 듯 허전하고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나는 공중전화기를 붙들고, 순례길 위의 작은 수도원으로 전활 걸었다. 간신히 연결된 통화, 더듬더듬 "저 거기에 가서 좀 머물러도 될까요?"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고, 수화기 저편의 스페인 신부님은 "물론!"이라고 흔쾌히 대답하셨다.
마드리드를 거쳐, 아스토르가로, 그리고 라바날로... 마침내 수도원에 도착하고서야 혼란스럽던 마음의 파도가 잔잔해졌다. 그리고 하루는 '안토니오'라는 신부님께 상담을 청했다. 너, 왜 이 길 위로 다시 왔지? 무엇이 문제야, 라고 묻는 그분에게 울먹이며 "아직 집에 돌아갈 준비가 안 되었어요..."라고 말했다.
왜관에서 아침기도를 올리며 문득 그 순간이 떠올랐다. 팍팍한 현실로 돌아가기 두려웠던 그때의 나는 지금은 얼마나 달라져 있는 걸까.
출장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며, 미세한 저항감 같은 것을 느꼈다. 이번 왜관행이 출장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그때처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을 주저했을 것 같다. 많이 지쳐 있고 가라앉아 있어서 그랬다. 단정하고 검박한, 수도원의 일상과 너무 많은 일과 목소리를 해결해야 하는 복잡한 일상의 대비가 엄청나게 크게 다가왔으니.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진정한 피정과는 조금은 거리가 먼 일인지도 모르겠다.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는, 이곳의 철학은 현대인의 영성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기도하면 일하기가 싫어지고 일하면 기도하는 것을 망각해버리는, 영글어지지 못한 내 모습도 뒤돌아보고, 삶속에서 일상과 영성의 공간이 통합되지 않고 분열되는 순간들도 떠올랐다.
한 세계를 일궈온 작가님들의 말씀을 들으며, 원하는 삶을 살고, 가치를 따른다는 것은 나를 온전히, 전적으로 바치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글 따로, 삶 따로가 아닐 때 비로소 힘이 생기는 것. 누군가를 눈물짓게, 누군가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생기는 것일 테니. 천 포기 김장을 하면서도 다시 고요한 모습으로 기도시간을 엄수하는, 수사님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불쑥, 너는 이대로 계속 살아갈 텐가, 하는 질문이 마음 속한구석에서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이런 사심을 채운 일련의 출장이 모두 마무리되고, 다시 거친 일상으로 돌아간다. 무거워진 발걸음과 숙제들을 또 통과해 나가야겠지. 딱히 바쁠 것은 없었는데 여유가 있던 것도 아닌 시간들이었지만 몇 가지 깊숙이 가슴속에 담아온 것들을 더듬어본다. 나는 조용히 말해보았고, 그분은 그 이야길 들으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