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난향

by 어린 왕자
난향_브런치_리뉴얼.png

한동안 많이 외로웠었나 싶다.

나는 다시 향수를 한 병 샀다.


사람들이 끊고 사는 술, 담배처럼

해서는 말아야 할 짓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었다.



아침이면 늘 쏟아붓듯이

온몸에 향수를 뿌리던 날이 있었다.


그러면 그날 아침부터 외출한 내내

내 몸에서는 ‘내 향기’가 났다.


난 내 향기를

그다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면

내 향기는 예전 ‘네 향기’로 변해 있었다.


침대에 누워 있으면

깨끗이 씻었는데도 몸 군데군데서

내 향수의 끝 향인

예전의 네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네 향수이지만,

나는 이 향수를 뿌리는 방법을 깨우치는 데

꽤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너는 늘 잠들기 전,

향수를 몸 구석구석에

뿌리고 잤었나 싶다.

너에게서는 늘 그 향수의

끝 향이 나왔으니 말이다.


바보 같은 나는

인터넷 이곳저곳을 뒤지며

네가 준 내 향수가

왜 네 것과 향이 다른지

향수에 대한 이모저모를

알아보았다.


같은 향수임에도

향수를 뿌린 시간 기점으로

첫 향(TOP NOTE),

중간 향(MIDDLE NOTE),

끝 향(BASE NOTE)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내 베개와 이불에서 나는 향기가

내 코에 익숙한 향임을 깨닫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너의 몸에서는

늘 향수의 끝 향이 났다.


‘얼마큼 이 향수를 오래 사용하면

그런 향이 몸에 배는 것일까.’


‘뿌리고 나서 몇 시간이 지나야

그런 향이 배어 나오는 것일까.’


네가 준 그 향수를

수없이 사 오면서

나는 마치 중독자처럼

하루하루 향수를 달고 살았다.



오늘도 여기저기 사람들에게

향수를 너무 많이 뿌린 것 아니냐는

잔소리를 들었지만,

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모든 일과를 마친 뒤에

집으로 와 잠을 청할 무렵

내 침대 위, 내 몸뚱이에서는

어느새 네 향이 나고 있었다.

아침의 독한 첫 향과는 사뭇 다른

은은한 끝 향이 배어 나왔다.


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참 오랜만에 깊은 단잠을 잘 수 있었다.


미지근한 커피도 필요 없었고,

수면제, 책, 티브이 소리, 조용한 음악,

그 어느 것도 필요치 않았다.




너는 기억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네 향을

‘난향’이라고 불렀었다.


난초 같은 은은한 향기…


그것은 무겁지도 않았고

너무 달지도 않았으며

특별하지도 않았다.


그 향은 단지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 줄 뿐이었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3화지하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