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4. 01. (월) 아쉬탕가
수리야로 몸을 데우고 블럭 두 개로 살람바 시르아사나2를 연습했다. 다리 위치를 상하로 바꿔보고 차투랑가로 연결도 하면서 팔의 힘을 길러 내는 몇 가지 움직임을 했다. 이어서는 짝과 함께 물구나무 연습을 했다. 짝이 나의 발을 잡고 올려주면 바로 서 보려고 스스로 노력해 보는 것이다. 나의 짝은 옆자리 S였다. 첫 번째 시도에서 곧잘 하길래 두 번째 시도까지 연달아 시도해 보겠냐고 권하니 흔쾌히 응했다. 주말에 수련을 해두어서 그런지 몸이 많이 힘들지 않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그녀의 그런 태도와 모습이 참 싱싱하고 귀엽게 느껴졌다.
핸드스탠딩 상태에서 다리를 뒤로 넘기며 브르스치카아사나 형태에 도전하는 것을 선생님이 도와주셨다. 팔힘은 당연하고 후굴력이 필요로 해서 등에 힘을 많이 주어야 하는데 힘이 잘 안 들어가서 후굴각이 순조롭진 않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보았고 그런 시도를 해볼 수 있게 도와주신 선생님께도 감사했다. 어떤 형태에서든 힘을 내어보고 균형을 잡아보고 에너지를 집중시켜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에 머무는 과정 자체가 요가를 통해 얻는 행복감의 한 면이다.
비틀기를 할 때 또 우드득 소리. 웃타나사나 할 때 좌우로 흔들리는 몸, 다리길이 조절에 실패한 길쭉한 세투반다, 무거웠던 나바아사나, 정렬이 맞지 않는 할라아사나, 갑갑하고 평화로운 요가무드라, 즐거운 우트플루티히. 몇 가지 장면이 지나간다. 장면들은 미련이 남은 게 아니라 내 몸에 기록된 여운이다.
벌써 4월이다. 내가 여의고 잃어버린 3월은 달력 속에서만 흑백사진처럼 웃음 짓는다. 급물살에 휩쓸린 일상을 돌아보니 어딘가가 망가지고 부상을 당한 것 같았다. 언제나 그렇듯 내 부상을 치유하는 일에는 다분히 게으르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하나 막막하지만 시간을 두고 이 마음을 관찰하고자 한다. 봄병이 생긴 것인가. 시멘트 사이를 뚫고 자라나는 초록 생동과 깅엄체크로 창가를 꾸며대는 햇살을 가만히 바라볼 마음의 여유를 끌어당겨 본다. 조그마한 틈을 벌려 호흡을 불어넣어 보자. 움직이고 숨 쉬고 맛있게 먹고 웃고 독서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에 마음을 할애하자.
선생님의 오늘 멘트를 기록해둔다.
요가를 수련하면서 힘을 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힘을 빼는 건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2024. 04. 02. (화) 복원
2분 전 도착. 분주한 마음이 딸려왔지만 수련을 시작하기 전 나눠주신 아로마 오일로 숨을 고르고 집중하기 위한 스위치를 켜 보았다. 시원한 도마뱀 자세, 프라사리따 파도따나, 워리어 시리즈를 거치며 여러 시퀀스를 반복하고 빠른 템포로까지 마무리해 보았다.
수업 후반부에는 시르사아사나를 몇 호흡 유지했다. 하루 종일 가장 위에 있었던 나의 머리를 발바닥처럼 딛고 바르게 섰다. 바로 선 자세에서 열 호흡 정도 머무르다가 파드마를 짜고 다섯 호흡 정도 하고 나니 아쉽게도 아기자세로 돌아갈 시간이 왔다. 요즘 시르사가 편안한 아사나가 된 것에 감사함이 크다. 기술적인 면이나 체력적인 문제에서의 성취감이 아니라 어떤 자세에 머무를 때 어느 때보다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정말 감사한 일이다. 과거의 나는 오늘의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언젠가 내가 왜 요가를 지속하고 있나 스스로에게 질문해 봤던 적이 있었다. 대답을 찾기 위해 생각을 거듭하고, 서적을 사서 공부하고, 수련 횟수도 늘려보았다. 그저 몸을 움직이는 것이 좋아서, 요가는 예민한 나를 실컷 예민하도록 그냥 내버려두어 주어서, 내면의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서, 내 몸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건강해지기 위해서, 도전적인 자세들이 재미있어서, 명상하고 호흡하는 것이 좋아서, 이래서, 저래서, 그래서, 그러므로. 자꾸 의미를 찾아내고 만들어내기를 기대했지만 선명하게 찾은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게 된 것 같다. 꼭 대답이 있어야 지속가능성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
오늘처럼 시르사가 편안해짐을 느끼는 날, 매일 하는 다운독에서조차 정렬이 안 맞는 순간들, 쿰바카호흡을 하며 좁은 숨길이 들려주는 이야기, 바닥으로 땀이 뚝뚝 흐르는 어느 날들의 연결된 시간을 바라보면 대답을 들었건 듣지 않았건 상관없이 요가를 통해 나의 시간을 좀 더 일관되게 만들고 있음은 분명했다. 시간이 축적될수록 그 평균값은 점점 더 내가 듣고 싶은 대답에 가까워져 있을 것이다.
나는 그저 내 삶에 요가가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하다.
그분 이름이 뭐더라, 여성지도자의 책 제목이 떠오른다.
"Forever young, Forever Healthy."
2024. 04. 04. (목) Yin & Yang
새로 만난 새 선생님과 새로운 수업의 첫날이다. 준비물은 볼스터, 블럭 두 개, 마사지 볼, 담요, 그리고 양말. 인요가 수련 중에 손발이 차가워질 수 있어 발이 시릴 경우 양말을 신으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 덕분에 수업 시작과 동시에 다들 일어나 우르르 탈의실에 다녀와 양말을 들고 돌아왔다. 재미있는 장면이었다.
이 수업의 의도와 목적을 먼저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람들에게 이것저것을 질문하면서 입을 열게 했다. 다들 수업에서 어떤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해야 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기에 선생님의 질문에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지만 한 명 두 명 입을 열면서 차츰 편안한 공기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봄 계절과 관련된 경락은 간, 담 경락이라고 안내했다. 손가락 끝으로 선생님과 함께 경락의 경로를 짚으며 위치를 배웠다. 간, 담, 방광 경락 등 매번 수업 때 이렇게 배워도 다 경로가 비슷하게 느껴지고 헷갈린다. 발가락 어디에서 시작하여 머리를 향해 마커들을 연결하는 트위스트 된 선 같다. 선생님의 설명을 들어보니 몸의 내측과 외측을 늘려내는 동작들이 알고 보면 다 간, 담 경락을 자극하는 셈이었다.
yin. 마지막엔 리스토러티브 사바아사나를 하기로 했다. 다들 선생님의 시범을 보고 따라 하며 두 가지의 담요를 곱고 반듯하게 접었다. 앞에 선 선생님을 보고 고분고분 열심히 따라 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유치원생들처럼 귀엽다. 매트 밖에서는 어떤 모습이든 여기 오면 다들 이렇게 부들부들해지기 마련이다.
접은 담요를 머리맡에 약속한 모양으로 두고 누우면 선생님이 사람들마다 돌면서 담요로 몰딩을 만들어 목의 무중력 상태를 도와줬다. 목이 편안한 순간. 이러다가 잘 수도 있겠구나 싶었는데 누군가의 코 고는 소리가 일찌감치 들려온다. 차분하고 맑은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던 새 선생님과의 인요가 수련은 로카하 사마스타하 스키노 바반투, 옴 샨티, 샨티, 샨티히로 마무리되었다.
2024. 04. 05. (금) 하타
식목일이었던 오늘, 날씨도 공기도 모두 상쾌하고 깨끗했다. 생명력의 농도가 짙은 계절, 뚫고 터트리고 기지개를 켜는 땅의 기운을 받은 덕분인지 오늘 하루는 대부분의 시간을 기분 좋게 보냈다. 저녁식사 때 생선을 굽고 나니 온 집안에 냄새가 들어차 인센스를 피워봤지만 소용이 없었고 왠지 내 머리카락에도 냄새가 잔뜩 따라다닐 것 같았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요가원으로 갔다. 최근에 새로 산 측백향 인센스 맘에 든다. 존재감을 크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지속력이 긴 것 같아 내가 좋아하는 면을 갖추었다는 생각을 했다.
호흡명상에서 선생님과 함께 바디스캔을 하고 남은 시간 동안은 스스로 속도를 정해 바디스캔을 하며 호흡을 유지하라고 하셨다. 피곤했는지 나는 자꾸 하품이 나왔다. 연신 하품을 하다가 눈물이 계속 고이고 그것들이 결국엔 무게를 못 이기고 턱으로 줄줄 흐르고 있었다. 마치 우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눈물이 흐르니까 울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엉엉 울어보고 싶었던 괴팍한 내 마음.
자누시르사로 수업을 열고 앞면과 뒷면을 펴내고 비틀고 뻗어나가는 여러 움직임을 연결했다. 수리야를 하는데 오늘은 몸이 굉장히 뻑뻑하고 질긴 느낌이 들었다. 횟수를 반복하면서 점차 몸이 조금씩은 열리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허리가 덜거덕거렸다. 아까 안 울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망상을 덤으로 가져가며 선생님들이 항상 주의 시키는 '허리가 집히는 느낌'이라는 게 이런 걸 말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낯선 감각.
부장가, 비라바드라, 스탠딩 스플릿 등 여러 아사나들에 다가갈 때마다 달구어지는 몸뚱이 덕분에 말랑한 편안함이 찾아오기는 했지만 몸 전체에 흐르는 기류는 좀 더 시간을 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긴 호흡이 필요한 날들이 있는 것 같다. 요가를 수련할 땐 어딘가 불편하고 뻑뻑하더라도 시간을 더 주면 되겠지 하는 여유로움과 그래도 괜찮아하는 너그러움이 기본값으로 깔려있다. 어떤 것에도 위협이 되지 않는 나의 부족함은 기다릴 줄 아는 여유와 아름다움으로 치환되곤 했다. 나에 대한 관대함을 배운다. 완벽하지 않아도, 유능하지 않아도, 야무지게 잘 해내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간다.
그렇게 살아야겠지. 어렵지만 그러하도록.
나 자신에게 관대한 사람이 상대에게도 넉넉한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매트 위에서 흘리는 땀줄기처럼 관용과 너그러움이 흘러내리면 좋을 것 같아. 나는 니가 요가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2024. 04. 07 (일) 빈야사
어제 언더드릴 원데이에서 무거운 것을 들어서 그런지 몸 후면이 전반적으로 당겼다. 쑤시긴 하지만 이런 상태로 빈야사를 하다 보면 뜨거운 불이 온몸을 훑는 느낌과 함께 마치 고름을 짜듯 근육통을 쥐어짜게 된다. 아프지만 기분 좋은, 변태적인 그 느낌이 좋다. 선생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니 어제 만났던 회원님과 Y도 있어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저들도 근육통이 있을까. 부지런한 사람들.
로우런지에서 뒷다리 발등을 누른 상태에서 다리를 바닥에서 띄웠다. 그 상태에서 하이런지로 올라와 후굴도 시도했다. 뒷다리의 발등을 눌러 몸을 일으키는 것이 생소하게 느껴졌지만 새로운 경험이라 흥미로웠다. 한 다리로 서서 균형 잡는 자세에서 어제 운동의 여파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엉덩이와 골반부 근육통들이 요란한 신호를 보낸다. 사이드 플랭크는 몸통과 팔의 힘이 함께 협응 하니 그나마라도 무사히 지나갔는데 다리 힘이 압도적으로 사용되는 극락조 자세에서는 오늘따라 더 휘청거리며 마치 매트에 뜨거운 것이라도 깔린 듯 촐싹맞게 폴짝거렸다.
짝과 함께 브릿지, 우르드바에서 골반을 더 밀어낼 수 있도록 돕는 연습을 했다. 서로 치골을 눌러주며 강하고 바르게 버텨내는 훈련을 하는데 나의 짝은 세게 눌러도 잘 버티며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SNS였는지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우르드바하는 수련자의 치골 위로 누군가 완전히 올라타서 발바닥으로 누르고 있는 모습을 봤던 적이 있다. 그 장면이 기괴할 만큼 대단해 보였지만 운동 역학만 잘 이해하고 몸을 잘 단련하면 그런 무게도 얼마든지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오늘 모인 우리에게도 아주 먼 이야기는 아닐 것 같았다.
시르사2에서 우르드바 쿡쿠타아사나로 전환하는 것을 시도했다. 파드마 짜고 골반 접어 상완에 다리를 얹는 것 까지는 순조로웠지만 머리는 간신히 들게 되었고 조금 더 나아가 팔을 펴는 건 도저히 힘이 달려 온몸에 지진이 발생하고 포기해야겠다 싶었는데 선생님이 얼른 와서 도와주셨다. 선생님의 구조 손길은 페이드아웃으로 떠났고 다시 역순으로 시르사를 향해 돌아가는 길은 무척 힘겨웠다.
하누만과 살람바시르반가사나로 정돈하고 시원한 비틀기 후 사바아사나. 개운하고 후덜덜한 구간을 잘 이어서 사바아사나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어느 구간 모른척하지 않고 성실하게 연결한 나 자신의 엉덩이를 토닥거려주면서 마무리. 콧노래를 부르며 귀가했다.
2024. 04. 08. (월) 아쉬탕가
거실에서 대화 중인 H와 선생님 사이에 끼어들어 다짜고짜 내 다리에 있는 의문의 피멍 두 군데를 보여주면서 어제의 언더드릴 운동모임이 너무 재밌었다는 감상을 전했다. 나는 어쩌다가 멍이 든 건지도 모를 정도로 몰입하고 흥분된 상태로 풋살을 했던 것 같았다. 엉덩이가 제일 아프다. 엉덩이 바깥 라인과 햄스트링이 무지 당겨서 스퀘어 포즈와 이것저것을 시도하며 짧게라도 다리를 풀었지만 영 시원하지는 않았다. 수리야 A 후 잠깐의 선생님 설명. 스스로 수련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 익숙해지기 위한 노력들에 대한 것.
복부반다도 잘 안 잡히고 전굴도 뻑뻑했지만 몸에 열을 내면서부터는 서서히 침착함을 유지하며 반다를 잡아보려고 애를 썼다. 휘청이고 바들거리게 하는 엉덩이 근육통의 존재감. 등 통증 때문인 건지 스탠딩에서 파리브리타 자세들이 날이 갈수록 힘들어진다. 비트는 것 자체도 힘들지만 좌우 방향 간 차이도 상당하다. 골반의 방향을 인지하지 못하고 놓치는 일도 허다해졌다. 파리브리타가 내게 필요한 자세라는 뜻인지, 이 자세와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것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트리앙무카에서 선생님이 발등 누르고 힙힌지 교정해 주셨다. 무릎이 뻗어나가는 감각이라는 것은 도무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는데 뻗어나가는 것 같지는 않아 궁금증이 풀리지 않는다. 피니싱 시르사아사나를 시작할 때 애초에 팔꿈치 포지셔닝이 잘못된 건지 몸이 스크루바처럼 꼬인 기분이 들었다. 선생님도 뭔가 상당히 이상했는지 발목을 잡고 잠시 위로 뽑아주셨다. 그 덕에 팔꿈치 위치 조정하고 다시 섰지만 오늘은 영 바르지 못한 기분이다. 몸이 아래에서 위로 나사처럼 트위스트 된 기분.
오늘의 비틀기나 시르사처럼 몸의 느낌이 이상한 날이 며칠간 지속될 땐 몸에 변형이 일어난 기분이 든다. 의식하고 주시하며 더욱더 바르게 세워야 할 타이밍인 것 같다. 바로 선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의 기준으로 바로 섰을 땐 상당 부분 착각이었던 적이 많았다. 그래도 바르게 쓰려는 의식이 무의미하게 휘발되지 않도록 항상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우트플루티히 쥐어짜기 후 마지막 빈야사로 가다듬고 옴 챈팅을 하는데 호흡이 다소 거칠었다. 침착하게 호흡을 가다듬어 보니 다시 서서히 얌전해진다. 이거면 될 것 같다. 나의 상태를 인지하고, 바라보고, 가고자 하는 방향을 알고 뭔가를 해보거나 시도했다. 원하는 방향으로 다가갈 수 있는 것. 이것으로 충분하다.
2024. 04. 09. (화) 복원
오늘은 근막을 자극하고 측면을 테마로 몸을 써보기로 했다 딱딱한 검정색볼로 발바닥 아치를 중점으로 이리저리 굴리고 체중을 실어 지압했다. 발바닥을 누르는 순간 통증 버튼을 누르기라도 한 듯 무지 고통스러웠다. 호흡이 딱 멈추면서 비명도 안 나왔다. 내 몸에 전체의 면적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부분의 자극이 정수리 끝까지 울려 퍼지니 자동적으로 고개가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곳을 쳐다보면 마치 통증이 줄어들기라도 하는 듯 나는 발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선생님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러분 고개를 들고 먼 곳을 바라보세요. 보지 않고도 느낄 수 있습니다.
다운독부터 로우런지와 하이런지로, 팔을 뻗어내고 몸통을 비틀며 옆면을 쭉 길게 늘려내는 움직임들을 반복했다. 와일드띵으로 연결하고 아르다찬드라와 차파아사나도 연결했다. 방향을 이리저리 바꿔가면서 큐브를 맞추듯 팔과 다리를 다양하게 돌려가며 사용했다.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고 따라가다가 다리 방향이 너무 헷갈려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고 멍청 타임이 찾아와 다소 헤맸지만 태연하고 능청스럽게 흘러가는 나의 몸뚱이. 다분히 바쁘게 움직인 연결들이 나를 귀엽게 만들었다.
시르사아사나 시간. 양측 방향으로 파드마를 짜서 골반을 쫙 펴보고 천천히 내려왔다. 시야에 들어온 내 뒷줄 사람들은 선생님이 자세를 자세하게 열심히 도와주었다. 사람들은 구르고 넘어져도 다시 시도했다. 사실은 넘어지지 않게 단계적으로 접근하도록 도와주시고 계셨지만 사람들은 큐잉의 담을 야금야금 넘어 도전적으로 임했다. 두렵고 어려워도 완성을 위해 다시 시도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나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나는 내게 어려운 과제들에 어떻게 임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봤다.
나를 포함하여 어떤 과제 앞에서 사람들은 머무름보다는 나아감을 많이 선택하게 되는 것 같다. 머무른다는 것은 때때로 편안함이 아니라 불안함과 조바심을 불러들인다. 때로는 그것이 오늘의 족저근막 자극 때처럼 통증으로 다가올 만큼 피하고 싶은 내 문제를 크게 인지시켜주기도 했다. 수련에선 틈이 필요하다. 날숨 후 다음 들숨 전까지의 pause처럼 틈을 주고 기다리는 것은 애씀보다는 자연스러움에 가까운 것인데도 삶의 많은 장면 속에서 우리는 그 틈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어쩌면 자연스러움에 다가가는 것이 가장 어려운 과제가 아닌가 싶다. 요가는 자연스러움이 체화될 수 있도록 다듬고 매만지고 다독이는 과정들에 더 많은 투자를 요구한다. 머물러야 나아갈 수 있다. 머물러 봐야 나아갈 타이밍을 알게 된다.
2024. 04. 11. (목) Yin flow
준비물은 볼스터1, 블럭4, 두꺼운 담요1. 살림이 많은 날이다. 오늘의 주제가 되는 경락은 위, 비장 경락이었다. 선생님과 함께 손가락으로 경로를 짚어보고 손가락 또는 마사지볼로 족삼리 혈자리를 마사지했다. 비장과 위 경락의 기능과 의미도 설명해 주셨다. 경락의 경로들을 자극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하고 몇 분간 머물렀다. 두 경락 모두 골반과 가슴 앞 면을 지나갔다. 그곳을 활짝 여는 후굴 자세를 몇 차례 했다. 속이 시원.
이어서 옆구리가 늘어나는 사이드밴드, 허벅지 앞면이 늘어나는 자세도 했다. 한쪽 다리만 뒤로 접어 눕는 숩타 비라아사아나 같은 구간에선 허벅지 앞면이 시원하게 늘어났다. 잠들기 전에 내가 애용하는 스트레칭이다. 후반부에는 볼스터를 이용한 낙타자세도 했다. 정강이 위에 받친 볼스터를 손바닥으로 아래로 밀면서 앞면을 펼쳤다. 세 번 정도 반복한 것 같은데 나는 자극이 느껴지지 않아 볼스터를 치우고 마치 우스트라 하듯 활짝 펼쳤다. 낙타자세에서 머무는 동안 너무 열심히 했는지 아기 자세로 돌아오니 허리가 뻐근하고 허벅지도 아팠다. 선생님이 오셔서 허리 꾹꾹이를 해주셨다. 사바아사나 20분 정도 유지했다. 목과 머리가 편안하게 유지되어 무척 편했다.
마치고 사람들에게 접은 담요를 그냥 한쪽에 모아두면 선생님이 직접 정리하시겠다고 말했다. 매트를 정리하며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는 동안 선생님이 담요를 하나씩 손수 정리하셨다. 어쩐지 담요가 장 안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더라니.
2024. 04. 12. (금) 하타
저녁이 되어도 날씨가 더운 날이다. 실내에 들어서니 벌써 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시나브로 계절이 흐르고 있었다. 엎드려 어깨를 열었다. 오른쪽 어깨에 압력이 가해지니 무척 당겼다. 오른쪽 방향은 언제나 당김이 세다.
한 다리만 접은 비라아사나로 앉아 사이드밴드, 발등과 정강이를 밀면서 몸을 들어 골반도 펴냈다. 그러고 나서 앞선 사이드밴드를 다시 해보니 이전보다 더 편하게 내려가지는 것을 느낀다. 재미있는 골반의 세계. 그러고는 이어서 하타 수리야나마스카라를 하니 골반의 워밍업 덕분인지 앞면을 펴 내는 게 훨씬 수월했다. 기분 같아선 머리가 종아리에 닿을 것 같지만 그건 훌러덩 넘어간 모가지가 주는 착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가슴은 언제 열리는 걸까. 곧고 굳은 나의 흉추. 어제에 이어 오늘도 낙타자세를 했다. 앞면의 개방. 이 계절에 필요한 움직임들.
저절로 눈이 가는 손톱달. 날마다 변하는 저 달을 보면서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굴려 집으로 달렸다. 일정하게 흐르는 시간. 나도 차오르고 비워내고 다시 차오르며 일정하게 흘러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