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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식 Oct 10. 2015

맛있는 맥주와 통계학

맛있는 맥주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스타우트라고 볶은 맥아로 만든 쌉싸름한 검은색 맥주가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일랜드의 기네스에서 나오는 것인데, 이 회사는 1759년에 설립돼서 무려 256년이나 되는 긴 역사를 갖고 있다. 원래 가족기업이었던 기네스는 1870년대에 처음으로 런던 주식시장에서 기업을 공개하고, 가족 외의 경영진이 참가하면서 맥주 생산의 과학화를 추진했다. 똑똑한 화학전공 학생들을 뽑아서 공장과 연구소의 높은 직위에 임명하고, 당시 흑마법이나  다름없었던 맥주 제조법을 좋은 맛과 일정한 품질로 대량 생산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최고의 맛을 내는 맥주를 가장 싸게 만들어서 가장 오랫동안 보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을 위해 기네스의 똑똑한 화학전공 양조공들은 여러 정량 조건들과 정성적 요인들을 시험해 봤다. 보리의 질소 함유량, 수분, 원산지, 보리알 크기, 홉의 질감, 원산지 등 관련 있는 여러 가지를 모두 바꿔가며 시험해봤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결론을 내리기 힘들었는데, 측정치는 너무 퍼져있었고 (분산이 컸고), 시간과 돈 문제로 실제로 실험을 해 볼 수 있는 횟수는 적었다.


지금과 같이 통계학이 발달하기 전인 1907년, 이 까다로운 문제를 옥스퍼드에서 화학과 수학을 전공하고 기네스에 입사한 Gosset이 깔끔히 해결했다. Gosset은 2년 동안 잠시 Pearson의 연구실에서 분산과 샘플 수, 연관성에 대해 공부하며 연수휴직 기간을 보냈는데, 돌아와서 적은 샘플 수로도 맥주 맛이 좋아지는지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분포와 검정법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곧, 기네스는 한꺼번에 한 보리 종자 1000통을 사서 계약 농장에 모두 뿌리고 전부 수매하는 계약을 하는 등 과학적인 근거로 과감한 투자와 결정들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당시 어떤 맥주 회사보다도 품질과 수율이 안정적인 공정을 만들 수 있게 됐다.


기네스가 맛있는 맥주를 잘 만들기 위해 개발한 이 검정법은 바로 Student’s t-test라고 부르며, 이후 세상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과학적 가설검정법 중의 하나가 된다. (기네스는 직원들이 실명으로 논문 내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에, Gosset의 이름 대신 필명인 Student로 이름이 알려졌다.) Gosset은 그 이후에도 30년간 기네스에서 양조 공정을 개선하는 통계 기법들을 개발했다.


밤의 음료 맥주를 위해 t-test가 생겼다면, 낮의 음료 차(tea)를 맛보기 위해서도 멋진 가설검정법이 개발됐다. 영국에선 한국의 부먹/찍먹 논란 만큼이나 호불호가 갈리는 것으로 "밀크티를 만들 때 차에 우유를 부을까, 우유에 차를 부을까"가 있다고 한다. 어느 날, 수학을 잘 하는 한 생물학도는, 옆에 있던 동료가 우유에 차를 부은 것과 차에 우유를 부은 것의 맛을 구분할 수 있다는 주장에 회의주의적 과학자의 본능이 꿈틀댔다. "아 나는 아무리 마셔봐도 모르겠는데 무슨 소리!"하고 즉석에서 가설검정법을 만들어 시험한 것이 역시 t-test만큼이나 사랑받는 통계적 가설검정법인 Fisher’s exact test라고 한다. 그 생물학도는 물론 이후에 현대 통계학의 아버지로 보통 알려지게 되는 R. A. Fisher다.


그런데, 그 동료는 차에 우유를 부은 것과 차를 우유에 부은 것이 구분이 가능했을까? 놀랍게도 정말로 잘 구분했다고 한다. -ㅁ-


참고문헌

1. Box, J. F. (1987). Guinness, Gosset, Fisher, and Small Samples. Statistical Science, 2(1):45-52.

2. Box, J. F. (1978). R. A. Fisher: The Life of a Scientist. John Wiley & Sons, Inc., New York.


제목 배경 사진 라이선스

by Kacper Gunia, CC BY-NC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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