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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하는 마음

by 김보리

다시 수영을 등록했다.

이번이 여덟번째 쯤 될 것이다.

여전히 자유영으로 25m 지점에 닿지 못한다.

발이 닿지 않는 곳에선 구명조끼를 입고도 놀지 못한다.


발리의 어느 호텔 수영장에선 (발 안닿는 데서 놀다가) 이러다 죽는 거구나, 싶은 경험도 해봤다.

그런데도 꼭 25m에 닿고 싶다.

발 안 닿는 곳에서 잠깐이라도 놀아보고 싶다.

가이드가 끌어주는 튜브 없이, 인도네시아 바다 밑을 보고 싶다.


이상하게도 내일은, 잘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물에 뜰 것 같고

튼실한 허벅지로 펑펑 물을 잘 눌러 가며

쭉쭉 전진할 것만 같다.


그러나 결론은 똑같을 것이다.

키판을 잡은 손끝부터 둥근 어깨에 둔한 허리, 짧은 다리, 뭉툭한 발목에 짧은 발가락까지 힘이 잔뜩 들어가

수십번의 발차기에도 고만고만한 자리를 맴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 또 두달이 되도록 끝끝내 자유영을 못배우게 되고 나면, 얼마간의 여행을 핑계로 강습을 관둘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어리석고 미련한 순환을 몇번이고 계속 해보고 싶다. 물에서 노는 맛을 알고 싶다. 아니, 적어도 물에서 공포를 느끼지 않는 사람이면 족하다. 두려움을 하나씩 깨고 싶다. 매사에 용감할 필요는 없지만, 매사에 그저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 부디 내일은, 물에서 억지 부리지 않는 가벼운 사람이었으면.


어쩌면 이 모든 것은, 대학 1학년 교양체육 수영시간에 부끄럽게 도망쳐 나오던, 그 시점의 수치심에서 왔을 지도 모른다. 무어가 됐든, 딱 한 고비만 넘어서고 싶다. 25m에 한번에 닿게 되고, 발 안닿는 곳에서 놀게 되자마자 관둘 지라도. 그 지점이 나의 결승점이다.


그래서 내일은, 여덟번 째 요이, 땅~!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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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팔이 닿는 건 물론이고 배도 닿을 만한 바다에서 구명조끼 입고 너무 잘 노는 내 모습. 부끄럽지만 그날 나는, 처음으로 바다에서 노는 맛, 바다에 안기는 맛을 알아버렸으니.ㅎ 그맛을 다시 느끼려 또 이렇게 또 한번의 시작을 하게 되는 것일 지도.


* "이그 바보야, 구명조끼 입으면 무조건 떠~!"라는 말로 흔히들 겁을 덜어주려 한다. 모르지 않는다. 머리로 아는 걸 바로 몸이 받아들인다면, 그건 공포가 아니지. 낙하산의 기능을 100프로 믿는다고, 모두가 스카이다이빙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공포는 내면에서 온다. 자기만의 싸움, 그러느라 애쓰고 있으니 바보라고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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