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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Oct 08. 2023

가을 맞춤 영화 2 ; [이터널 메모리]

직관적 영화 후기 10.

다큐멘터리 영화 [이터널메모리]를 보았다. 밀린 공부를 하던 중 어느 순간 눈이 시길래 산책을 나갔고, 즉흥적으로 영화관으로 걸음이 닿았다. 모교 안에 예술 영화 전문 극장이 생겨 이따금 가게 된다. 학창 시절보다 지금 더 학교를 좋아하게 됐다. 좋은 극장이 있어서.


여느 때처럼 혼자 보았다. 혼자 보기 맞춤한 영화다. 가을에 보기에도 괜찮은 영화다.




개봉 : 2023.09.20.

등급 : 전체 관람가

장르 : 다큐멘터리

국가 : 칠레

러닝타임 : 85분

배급 : (주)엣나인필름     


소개 : 시간마저 뛰어넘은 영원한 사랑, 이토록 위대한 기억의 재구성! 칠레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이자 피노체트 정권의 범죄를 기록한 작가 아우구스토와 배우이자 활동가이며 문화부장관을 역임한 파울리나는 25년간 사랑을 이어온 백발의 연인이다. 8년 전 아우구스토가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은 이후, 악화되고 있는 병세 앞에 무기력함을 느낀다. 그러나 파울리나는 아우구스토가 끝까지 스스로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타협하지 않는 헌신으로 함께 치열하게 싸우고자 한다. 서로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손길을 따라 주름 하나하나에 애정과 슬픔의 기억들을 채우고, 인생이라는 극에서 천천히 퇴장하고 있는 그들의 깊고 진한 사랑은 절찬리 진행 중이다.


- 네이버 영화 -




칠레 역사 변혁의 중심을 지켜온 저널리스트이자 군사정권의 범죄를 기록한 작가인 아우구스토와 문화부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던 배우 파울리나.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남편 아우구스토와 기억을 지켜주려는 아내 파울리나의 노력을 그대로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20년간 연애를 하고 뒤늦은 결혼을 한 커플이라서일까. 그들의 일상은 사랑으로, 사랑의 표현으로 가득 차있다. 질병이 가로막지 못하는 사랑. 오래된 부부여도 가능할까. 오래된 부부는 모르긴 몰라도 의리가 사랑을 대신하겠지. 질병이 때로는 사랑을 혹은 의리를 공고히 해주는 접착제가 되기도 한다는 건 서글프면서도 고귀한 이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파울리나의 웃는 얼굴, 눈웃음, 웃음소리가 오래 귀에 울리고 눈에 남았다. 중후한 백발의 노미남 아우구스토는 병이 깊어가며 아이 같은 순수한 면면을 더해 애절함을 불러일으킨다. 칠레를 대표할 만한 선남선녀의 일상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픽션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기억은 또 하나의 정체성이다. 책이 모두 사라질까 애타는 아우구스토의 눈물은 기억이 사라지고 동시에 세계가 소멸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기억을 잃은 나를 '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이를 먹으며 지켜야 할 것은 몸이지만 그보다 더 먼저 지키고픈 것이 기억임을 목도하며, '인생의 가장 짓궂은 장난이 치매'라는 씁쓸한 말을 떠올렸다. 남편을 돌보는 파울리나를 지켜보며 사랑은 키스가 아니라 오래 손잡고 다정하게 얼굴을 쓰다듬는 것임을, 함께 한 기억의 파편 하나하나를 소중히 하는 것임을 먹먹하게 실감하고 나왔다.




울림이 큰 영화였다. 답을 주기보다는 질문을 길어 올리는 영화. 질문을 던지고 답을 궁리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묻고 기억하고 수양하라. 읽고 쓰고 살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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