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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Nov 16. 2023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라고 오늘 말해요

직관적 영화 후기 13. 너와 나

딸을 작업실에 내려주고 오는 길에, 비가 오니 떠돌고 싶었다. 방랑하고 싶은 마음과 달리 신촌 한복판에 한참 묶여 있다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극장으로 핸들을 돌렸다. 뭐든 즉흥적인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중에도 즉흥적으로 보는 영화 보는 일은 가장 수월한 일이자, 가장 흔한 일이다. 그즈음 보고 싶은 영화를 대개는 두어 편쯤 품고 있는 편이니, 고민할 일도 없다. 신촌 언저리엔 취향 맞춤한 영화를 상영해 주는 극장이 서너 개가 있다. 오늘은 그중, 이화여자대학교 캠퍼스 내에 있는 '아트하우스 모모'로, 궁금하던 영화 '너와 나'를 보러 간다.




개봉 : 2023.10.25.

등급 : 12세 관람가

장르 : 드라마

국가 : 대한민국

러닝타임 : 118분

배급 :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주)


줄거리 : “오늘은 너한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수학여행을 하루 앞둔 오후, 세미는 이상한 꿈에서 깨어나 하은에게로 향한다. 오랫동안 눌러왔던 마음을 오늘은 반드시 전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넘쳐 흐르는 마음과 달리 자꾸만 어긋나는 두 사람. 서툰 오해와 상처를 뒤로하고, 세미는 하은에게 진심을 고백할 수 있을까?

-네이버 영화 소개-





영화는 내내 꿈 속인 양 빛을 사용한다. 어쩌면 누군가에겐 그 하루가 꿈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기 하루 전의 일을 꿈과 현실을 오가며 세밀한 디테일로 짜임새 있게 엮었다. 십 대의 언어, 감성, 감정, 고뇌가 이렇게나 진하게 다가오다니. 단 한순간도 감정의 선을 내려놓을 수 없다 못해, 주인공 새미가 노래방에서 '체념'을 부를 땐 주책맞게 눈물이 흘렀다.


설렘과 불안이 공존하는 나이, 진심을 전하는 것이 서툴고 '너와 나'의 경계를 규정하기 어려워 우정도 사랑도, 필요 이상의 무게로 지고 가는 나이. 상실에 대한 아픔을 아이처럼 꺼내놓을 수 없고, 어른처럼 삭히기도 어려운 나이. 몸집보다 큰 교복을 입은 새미의 모습이 마치 존재보다 큰 고뇌를 지고 있는 것 같아 웬지 짠했다. 교복을 입지 않았지만 나 역시 그때엔 모든 고뇌가 나보다 컸고, 지나고 보니 일상이 고뇌를 잡아먹는 지금보다는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 싶다.


영화의 배경은 안산이고, 배를 타고 수학여행 떠날 주인공들은 안산의 여고생들이다. 이쯤에서 영화의 모티브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조현철 감독은, '친구가 꿈에라도 찾아와 주면 좋겠다'는 세월호 생존 학생의 말을 새겨두었다가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그 마음을 영화에 풀어놓았다. 거울이 자주 등장하는데, 단원고 앞 공원에 걸린 거울을 소품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주인공 새미가 자주 지나치며 상이 맺히는 그 거울엔 아마도, 많은 단원고 학생들의 상이 맺혔을 거라는 감독의 말은 물리적인 디테일 그 이상이다. 감독이 천재가 아닐까 싶게, 천연덕스럽게 영리하고, 느슨한 듯 꽉 찬 영화. 전체적으로는 너무나 사랑스럽다.  




불안한 꿈을 꾼 후, 수학여행에 가지 못하는 사랑하는 친구 하은이에게 어떻게서든 진심을 전하려는 새미의 간절함은 어쩌면 내일이면 달라질 지도 모를 두 사람의 운명에 대한 무의식적인 예감에서 왔는 지도 모르겠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은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 말,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그 짧은 말을 전하지 못해 애도를 멈출 수 없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위로와도 같은 영화. 오후 네시의 비스듬한 햇살이 드리운 듯, 보는 내내 꿈처럼 느껴지기도 하던 영화는 유가족과 친구들이 원하는 딱 하루의 시간, 하루의 꿈을 표현했던 게 아닐까. 세월호 전 날, 이태원 참사 전 날의 하루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들은 무엇으로 시간을 보낼까. 진심을 전하는 게 어려워도, 또 아무리 서툰 사람이어도 내내 손 맞잡고, 부여 고 말하고 또 말할 것이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딱 하루만 주어진다면, 사랑한다 말할 사람, 미안하다고 말할 사람, 고맙다고 말할 사람.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다. 몇을 꼽을 수 있지만 그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꼽을 사람이 있다. 꿈에라도 찾아와 주기를 아주 오래 바랬더랬다. 그런 꿈으로 오진 않았다. 대개는 무참한 꿈이었다. 영화처럼, 햇살 드는 에서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꿈이 꿈인 줄 모르고 새미와 하은이처럼 우린 또 서툴고 어리석은 시간을 반복할지도 모르지만, 간절한 마음이 닿아 깨기 전 마지막 순간엔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미. 고. 사. ㅎㅇ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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