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일을 기다려 영화 보기는 오랜만이다. 감독 빔벤더스, 배우 야쿠쇼 코지, 배경 도쿄, 타이틀 '퍼펙트 데이즈' 까지. 모든 게 꼭 맞춤한 것이, 단번에 알아보겠더라. 너무 좋을 거야, 이 영화는.
도쿄 시부야 공용 화장실 청소부 하리야마. 화분에 물주기, 현관문 열고 하늘 보며 미소 짓기, 자판기 커피, 카세트테이프로 듣는 출근길의 올드 팝, 신사 마당에서 샌드위치로 점심 먹기, 필름 카메라로 나무 찍기, 잠들기 전 문고판 중고책 읽기. 정해진 분량의 일상을 묵묵히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단정하고 단단하다. 일상에 예술을 품고 가는 그의 모습은 영화 ‘패터슨’의 버스운전사 ‘패터슨’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 ‘스토너’의 스토너, ‘써칭 포 슈가맨’의 로드리게스도 함께 떠올린다. 평범함이 숭고함을 품고 있다.
인화한 사진 앞에 무릎을 모으고 앉은 그의 모습은 숙연하다. 사진 속엔 나뭇잎 사이로 빛이 잔잔하게 일렁이는 모습이 담겨져 있다. 순간에만 머무는 빛 ‘코모레비(木漏れ日)’. 가끔 나타났다 사라지는 빛이 있어, 사는 게 살만하단 뜻일까. 영화 전체가 이 단어 하나에 모인다.
무분별한 소통이 너무 많거나 진실한 소통이 단절된 세상을 사는 중에, 영화에서 보이는 특별한 소통은 저으기 다정하다. 친구의 귀를 만지고, 때론 모르는 이와 종이에 낙서를 주고받거나, 혹은 누군가의 좋은 음악을 훔쳐 들으며 가만히 웃는다. 스카이 트리 전망대가 기세를 뽐내는 화려한 대도시 도쿄에서 조그만 삶이 모여 있다. 그나저나, 도쿄에 가고 싶다.
퍼펙트 데이즈. 그런 날이 있을까. 과거의 잔상이 현재를 흔들고, 내일에 대한 걱정이 오늘을 잠식하는데 완벽한 하루라는 게 과연 있을까. 격정이 있었을 법한 그의 과거는 영화에 드러나지 않는다. 일상에 끼어든 조카가 ‘지금’에 균열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이라고 하리야마는 답한다. 과거는 또, 그저 과거일 것이다.
출근길 운전대를 잡은 하리야마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마지막 장면에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그의 얼굴에 내 얼굴이 보였다. 나이 들며, 웃음도 늘고 눈물도 늘었다. 눈물과 웃음이 만나는 시간도 어색하지 않다. 나도 딱 그만큼만 살고 싶다. 담담하고 담백하게. 매일 같은 곳에서 같은 것을 먹고, 예술과 책을 가까이 하고, ‘코모레비’를 모으며. 조용조용 가만히. 숭고해져도 놀라지 마세요.
영화가 만들어진 배경 역시 특별하다. ‘도쿄 화장실 시민 연대 모임’같은 단체에서 영화 제작을 의뢰했나 싶을 만큼 시부야의 공공화장실이 근사하더라니, 비슷한 얘기가 숨어 있다.
링크를 걸어두었으나 연결되지 않는군요. 복사-붙이기 해서 꼭 읽어봐 주세요. (빔벤더스 감독이 주인공에게 보내는 편지도 담겨있습니다.) 아. 영화가 끝나면 자막이 다 올라갈 때까지 기다려 주시고. 스포가 있을까 싶어 걱정했는데, 알고 보니 스포할 게 없는 영화였네요. 다행입니다.^^ 음악이 너무 좋은 건 미처 말할 틈이 없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