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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Dec 13. 2023

아버지 책, 지못미. 아버지, 보고 싶어요.

 

아버지의 책은 나의 집에,

일부는 큰 책장 한가득 잘 정리돼 있고

일부는 사진처럼, 작은 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어느 기한까지 방을 정리하기로 하고

일단은 그대로 두기로 약속했는데

요즘 들어 기억력이 왔다 갔다 하시던 어머니가

어느 날 헌책 수거 아저씨를 불러

흔적도 없이 이 책들을 싹 다! 처분해 버리셨다.


분명 머리끝까지 화가 나야 할 일인데,

순간 머릿속이 그냥 하~얘지며

'미리 정리하지 못한 내 탓이지, 내탓일 거야'

행여나 울기라도 할까 봐, 애써 나를 단도리 했다.


버릴 책이 태반이지만 개중에는

나의 책꽂이에 꽂고 싶은 책,

언젠가 책방을 연다면

내 가까운 자리에 꽂아두고 싶은 책도 몇 권 있었다.

(예를 들면, 요하네스 힐스베르그의 서양철학사 상/하)


늘 일이 느리고, 데드라인 코 앞까지 일을 미루는 내 탓이라고 시종 생각은 하면서도

이따금 아버지의 책이 사라진,

지나치게 깨끗해진 그 방을 생각하면 화가 난다.


#헌책방기담수집가 는 은평구의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하는 윤성근 님의 체험기 모음이다.

사연이 있는 헌 책을 찾아주고, 그 대가로 사연을 모은다. 그리고 그 사연을 책으로 엮어낸다.

이따금, 아버지 같은 사람을 책 속에서 만난다.

그러면 다시금 책이 사진 그 방을 떠올리고

그러다 순간적으로 #피꺼솟 ~


나는, 화를 안 내거나 못 내는 사람이 아니라

화를 표현 못하는 사람이고

그 화는 아주 오래 딸그락거리며 나를 괴롭힌다.


불경 읊듯 책 읽던 새벽녘 아버지의 목소리가 그립다.

아버지, 책 #지못미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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