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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Nov 03. 2024

이사 전 날

이사의 기억이 많지 않다. 이게 참 복 많은 일인 줄을, 요즘에야 알겠다. 나의 본 집은 용인에 있고, 그 집에선 2001년부터 살기 시작해 월드컵 여섯 번을 볼 만큼 오래 살고 있다. 지금 집은 엄밀히 말하면 딸의 집이다. 아직 경제적 독립을 하기 전이라 월세는 내 주머니에서 나가지만, 딸의 자취방에 내가 덤으로 살고 있다는 기분을 떨치긴 어렵다. 집을 구하는 과정도, 집에 관한 소소한 일들을 결정하는 것도 딸의 몫. 딸 방의 반만 한 문간방을 내가 쓰고 있기도 하고. 이따금 처신이 비루할 때도 있기에, 가끔 딸은 말한다.

“월세도 엄마가 내는데, 당당해져, 엄마!”


마포구 성산동, 이 집을 떠나는 게 적잖이 서운하다. 원래 정한 집에 가계약금을 보내기 직전,  맘에 쏙 드는 집을 기적처럼 찾아낸 게 이 집이었다. 고령의 노모를 모시려 딸들이 빌라를 사서 새로 싹 리모델링 한 후, 가구와 가전까지 골고루 채워 넣었는데, 두 달 만에 어르신을 요양 병원에 모시게 되었다고. 퀸 사이즈 침대와 큰 냉장고, 소파와 작은 식탁, 의자, 세탁기, 에어컨 등을 받아서 쓸 수 있었다. 대부분은 반짝이는 새 물건들이었다. 수납장은 또, 얼마나 잘 짜 넣었는지. 화사하고 쓸모 많은, 딸과 내가 함께 참 좋아하던 집이었다. 주인 가족이 들어온다 하여 2년 살고 내일 쫓겨날 예정.     




홍대입구역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라 역세권이라 할 수 없지만, 뺑 둘러쳐서 버스 노선이 참 좋았다. 이대 연대 사직터널을 지나 경복궁, 창덕궁까지. 601번, 710번 버스를 타고 노무현시민센터와 정독도서관을 향하던 시간은 나를 둥글게 만들었다. 공부를 마치고 말개진 얼굴이 되어(열공을 하면 탁한 얼굴이 조금 말개진답니다) 터덜터덜 독립문역까지 산책 삼아 걸어 돌아오던 길은 기분 좋게 슬펐다. 걸어오다 경복궁역 먹자골목 체부동잔치집에서 이따금 잔치국수를 먹기도 했다. 친구가 있으면 가끔은 곱창을 먹고 가끔은 쭈꾸미나 해산물을 먹었다. 골목은 늘 소란했고, 사람 숲을 헤지며 외톨이같이 걸어 나갈 때엔 혼자서도 잘 놀고 잘 먹는 내가 대견하면서도, 역시나 기분 좋게 쓸쓸했다. 밤이 되어 집에 닿았을 때, 불이 꺼져 있는 게 더 좋았다. 딸과 친구처럼 딱딱 잘 맞아도, 혼자 있는 게 더 편안하다. 열아홉 살, 덩치보다 더 큰 캐리어를 들고 혼자 런던으로 떠나던 순간 딸은 이미 정신적으로 독립했다. 딸을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이런 잡념이 모여 사는 게 무거워진다.     


역세권은 아니지만 공세권이라고 자부할 만큼, 공항에 드나들기 편했다. 홍대입구역도 가깝고 디지털미디어시티역도 이용할 만 하지만, 국내선을 탈 때엔 601번 시내버스를 즐겨 탔다. 제주에 가는 일이 쉬웠다. 동네책방이 많고, 독립극장이 서너 개가 지척에 있다. 극 내향인 ‘서로가 서로에게’ 책방 쥔장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고 싶었는데 결국 하지 못 했다. 나도 내향인이라, 가던 길을 돌렸다. 근 2년 만에 말 두어 마디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는데, 거기다 대고 ‘저 이사 가요’ 하기가, 머쓱하다.      




2년 전 단칸 자취방 계약이 끝나고 다른 방을 구할 때, 딸은 방 두 칸 집을 얻어 엄마도 같이 살자고 권했다. 시어머니가 집안을 잘 건사해 주시니 못할 일도 아니었다.

“엄마도 서울 살아보고 싶잖아. 나도 엄마랑 같이 서울에서 살고 싶어.”

용인에 살면서도, 줄기차게 서울을 드나들었었다. 평생교육의 아이콘이 되겠다고 큰소리 칠 만큼 가지가지로 배우러 다니고, 강의를 주워듣고, 저녁 술자리도 마다하지 않고. 왕복 네 시간의 오가는 거리를 겁내지 않았다. 그 시간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우긴다. 그러다가 서울에 살게 되었고, 서울살이를 충만하게 누려 왔다. 이 집은 그러기에 부족함 없이 좋은 터였다.


이사 가는 일이 낯설다. 2년은 너무 빨리 지나갔다. 이사에 관한 소소한 모든 일 역시 딸이 알아서 잘 진행하고 있다. 마포를 떠나고, 성산을 떠난다. 마포중앙도서관에도 정이 많이 들었는데. 응암동에도 도서관이 있겠지. 전철역까지 7분 거리이니, 공세권은 아니지만 역세권은 된다. 방은 똑같이 두 칸이나, 여기보다 비좁다. 이사를 준비하며, 책의 자리를 고심했다. 책은 지금 책상 위에, 침대 밑에, 허름한 회전식 책장에 무질서하게 던져져 있다. 나란히 책을 꽂을 내 방이 필요하다. 길 잃고 두서없이 쌓여있는 책들을 잘 꽂고 나면, 복잡한 마음도 가지런해지지 않을까.      




책을 핑계로 방 한 칸을 따로 구했다. 딸이 잘 손봐주고 있다.(수고료 드림) 작업할 게 없는데 작업실을 먼저 구한 웃픈 현실. 살림을 줄여야 할 듯해 십 년 넘게 이어 온 해외 아동 후원을 끊고, 의미를 잘 모르겠다 싶었던 다른 후원도 끊었다. 당분간은 나를 먼저 살피기로 했다.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는 편인데, 불쌍한 얼굴로 딸에게 말했다.

“있잖아, 엄마, 공간으로 위로받고 싶어.”


이사 준비와 공간 매니저, 두 가지 일을 하느라 딸은 요 며칠, 정신없이 분주하다(그래야 다 손바닥만 한 공간들이지만). 마지막 날인데, 같이 저녁 먹자고 연락이 왔다. ‘조쿤’이었다가 ‘소란한 밤을 지나’였다가 며칠 전 돈가스 전문점 ‘가람’으로 바뀐 식당에서 함께 먹기로 했다. 아기자기한 식당이나 카페도 참 많은 동네. 최후의 만찬을 한다 생각하니, 서운하다.      


내일, 이사 간다. 정독도서관과 노무현시민센터로 가는 노선을 살펴야겠고, 근처의 도서관을 찾을 것이고, 불광천도 걸어볼 것이다. 공세권이 아니니, 달랏 가는 길도 미리 알아놔야 한다. 책방을 찾아 자주 산책해야지. 내 책은 한 구석에 쌓아 놨다 달랏에서 돌아온 후 갈 때마다 조금씩 옮기면 되겠구나. 용인에 있는 책은 트럭을 쓸 수밖에 없겠고. 작업보다 작업실이 먼저 왔으니, 절실하게 일거리를 구하러 다닐지도 모르겠다.


서운하고 설레며, 이사를 준비하는, 이사 전야. 저녁부터 든든히 먹고 와야겠다. 오늘은 음주 금지. 아니지. 그래도 건배는 해야지.

안녕, 성산! 헬로우, 응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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