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번여사 May 22. 2023

금요시장에서 만난 바이링구어, 파란 눈의 일본인

고치시의 넷째 날, 금요 시장을 가다


고치시에서의 넷째 날은 실로 대단한 하루였다. 아침을 먹지도 않던 사람이 매일 똑같은 조식을 먹고 있다. 이것이 훗날 알게 되었는데 그때는 좀 힘들었지만 나의 아침 생체 시계 형성에 싹을 틔워준 계기가 되었다. 이 날도 호텔에서 자전거를 빌려서 타고 나왔다.


이번이 자전거를 호텔에서 세 번째 빌렸는데 직원들 마다 대응하는 방식이 다 달랐다. 어떤 직원은 룸 넘버만 묻고는 키를 건네줬다. 또 어떤 직원은 서류를 작성하게 만들고 또 다른 직원은 서류 작성뿐만 아니라 여권까지 제출을 원했다. 복사해서 붙여놔야 하는 것이 규정인가 보다. 하여튼 매번 서류작성과 여권 제시를 원하는 직원을 보며 장기로 호텔에 묶고 있는 걸 확인하면 그렇게 매번 안 해도 될 텐데 좀 고지식하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첫 번째 일정은 주말에 다카마스로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고치역으로 가서  티켓을 미리 구매해 놓는 것이다. 주말엔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 혹시 자리가 없을지도 모르니 미리 준비를 해 놓은 것이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지난번에 마쓰야마시에서 고치시로 넘어올 때 벌어졌던 일들이 또다시 발생하면 안 된다. 학습은 한 번으로 족하다. 티켓을 구입하며 날짜와 시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철두철미한 이런 확인 정신! 좋다.


다음은 이 날이 금요일이었기 때문에 금요시장을 찾아가기로 했다. 고치시는 특이하게도 요일마다 시장이 특정한 장소에서 지속적으로 열린다. 월요일은 월요시장이 열리고 화요일은 화요 시장이 열리는 식으로 시내 곳곳에서 겹치지 않게 장이 선다. 어제 목요시장을 우연히 지나치다 토마토를 사 먹었는데 얼마나 맛있었던지 그런 토마토가 있으면 또 사 먹고 싶어졌다. 구글 지도를 켜서 자전거를 타고 이리저리 골목을 돌다 보니 금요 시장이 보인다. 시장의 규모는 매우 작았다. 거의 먹거리 위주고 상인이 열명도 채 되지 않았다. 고치역에서 그다지 많이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토마토가 목요시장에서 사 먹은 것보다 금액이 더 저렴했다. 목요시장서 사 먹은 토마토는 나의 인생토마토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맛있었다. 우리나라 대저 토마토는 저리 가라 수준이라고 하려다 내가 우리나라 대저 토마토 중 진짜 맛있는 걸 못 먹어 봤을 수도 있으니 그 말은 취소해야겠다. 그래도 목요시장만큼은 아니더라도 금요시장 토마토도 제법 맛있는 수준이긴 했다.


딸기도 사고, 바나나도 사고, 당근도 사고, 어묵도 샀다. 이렇게 길거리 시장에서 장을 볼 때의 기쁨을 다른 사람들도 느끼나? 나는 유달리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 장을 볼 때보다 전통 시장이나 이런 소규모의 길거리 시장에서 장을 볼 때가 더 재밌다. 이유는 당연히 좀 더 자연 친화적이고 건강한 먹거리일 것 같아서이다. 그런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겠다. 그렇지만 내 손으로 음식을 직접 해 먹고 산지 몇 십 년인데 어느 정도는 좋은 것을 골라낼 좋은 눈과 실력을 겸비했다. 그래서 그다지 실패가 없다.


어묵을 사고 좀 걸으니 당근을 팔고 있던, 그냥 봐도 비주얼이 서양인인 남자가 서 있다. 단발의 노랑 곱슬머리, 파란 눈, 나보다 머리통이 두 개는 더 클 기다란 키의 남자는 나를 보자 일본말을 무척 유창하게 쏟아냈다. 그래서 나는 일본말을 못 한다 했더니 그럼 영어를 할 수 있냐고 묻는다. 어느 정도는 한다고 했더니 이번에는 영어를 마구 쏟아낸다.


나는 이렇게 이중언어 구사자들, 바이링구어들을 보면 그냥 무장해제로 부러움이 주체하기 어렵게 샘솟는다. 나는 영어 하나도 제대로 못해 쩔쩔매는데 저 사람들은 도대체 어찌하여 저리 될 수 있나 싶어서 그저 감탄이 나오는 것이다. 어디서왔냐길래 한국이다 했더니 오! 하고 놀란다. 그게 놀랄 일인가? 왜 놀라지?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론 이렇게 작은 일본의 시골 동네에 한국인이 많을 리 없으니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다.


예전에 마쓰야마의 호텔에서 지낼 때 어느 날 호텔에서 연락이 왔다. 며칟날 내가 묵고 있는 룸의 화장실 거울을 교체하는 공사를 해야 한단다. 그래서 자기 호텔 직원 중 누구를 찾으면 그녀가 한국인이라 나에게 도움을 더 잘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만난 한국인이 있는데 그녀는 나를 보고 엄청 반가워했다. 나도 일본에 와서 한국말로 함께 떠들 사람을 처음 만나 반가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참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일본인 남자를 만나 결혼해서 아이도 둘을 낳고 마쓰야마에 정착해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녀가 또 말하길 자신이 에히메현  마쓰야마시에 산지 십 년이 훨씬 넘는데 여자 혼자 한 달씩 이렇게 작은 일본 소도시를 여행하는 건 처음 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말 멋지다고, 자신도 나중에 꼭 나처럼 그렇게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여튼 다시 시장으로 돌아와서, 그 서양일본인이 나에게 지금 여기 살고 있는 거냐 묻는다. 아니다 나는 지금 여행 중이다, 내일이면 여기를 떠난다 했더니 내가 자전거를 타고 있길래 여기 살고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나는 이 자전거를 호텔에서 빌렸다고 말하니 그제야 아! 하면서 알겠다는 듯이 오케이 하며 고개를 끄덕 인다.


그러더니 이제는 화제를 바꿔 자신의 당근 하나를 들어 나에게 보여주며 열심히 설명을 한다. 어른 검지 손가락보다 살짝 통통하고 길쭉한 당근, 조금 과장한다면 통통하고 주황색의 인삼 같이 생긴 볼품없고 못생긴 당근, 그러나 한편으론 귀엽게 생긴 당근에 대해서 뭐라고 열심히 말하는데 잘 못 알아듣겠다. 가느다란 잔뿌리를 만지며 이렇게 잔뿌리가 많은 것이 어디에 좋다고 하는데 정확히 못 알아 들어서 그저 알겠다고 말을 하고 한 봉지를 샀다. 잔뿌리가 많아 몸에 좋은 당근인지 어쩐 지는 모르겠는데 맛은 영 별로였다. 아무래도 생식용보다는 요리용으로 쓰면 좀 더 괜찮게 먹을 수 있었으려나?


그렇게 느긋하고 여유 있게 금요시장에서 장을 봐서 자전거 바구니에 잔뜩 실어 놓으니 흡족하다. 자신만만하다. 오늘 하루 어디로든 여행을 떠날 수 있을 듯하다. 든든한 먹거리와 두 개의 바퀴만 있으면 어딘 들 못 갈쏘냐! 용기백배한 햇번 여사, 다음 여정을 향해 신나게 출발한다.











작가의 이전글 히쓰잔 공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