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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ealist Feb 07. 2021

떠나야 할 때

놈의 어머니는 췌장암 3기다.

작년 가을, 전화를 받고 가슴이 떨려서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어이없게도 먼저 보내고 노부부 둘이서 아들을 추억하며 살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암이라니.

전화를 받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이 모든 불행의 씨앗은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의외로 엄마는 덤덤하게 말씀하셨다.

췌장암 3 기면 살기 힘들 거라고, 살아 계시는 동안 가끔 전화도 드리고 찾아뵈라고.


지난 추석에는 놈의 제사 음식을 우리 집에서 했다.

생선과 떡을 제외한 나머지 제사 음식을 내가 했다.

그것을 제사상에 올리고 절을 하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제사상을 정리하고 아침을 먹는데 식사를 제대로 못 하시는 어머니 때문에 나도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말라버린 어머니의 식사하시는 모습은 마음 저 깊이 묻어두었던 죄책감을 다시 들춰냈다.

나는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재빨리 아침상을 정리하고 놈의 집에서 나왔다.

열린 창문으로 자주 전화하라는 아버님의 말씀, 조심히 가라는 어머님의 말씀.

나는 그 말씀들을 들으며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다짐했다.


부모님께 상황을 얘기하고 더 이상 연락하지 않겠다고 했다.

혹여 어머님께 전화가 오더라도 절대 받지 말라고 했다.

6년이나 했으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니 그 집과의 인연은 여기서 끝내자고 말씀드렸다.

두 분은 조용했다.

그렇게 우리는 소리 없는 동의로 모든 것을 끝냈다.

이후 딱 한 번 어머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지만 받지 않았다.

엄마에게도 두 번 걸려왔었다고 하는데 받지 않았다고 했다.


설 명절을 앞두고 있다.

어머님 몸상태는 어떤지 아버님도 건강이 썩 좋지 않은 편인데,

이번 제사는 어떻게 하실 건지 내가 왜 걱정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난 추석 때 식사하시던 두 분의 모습이 잊히질 않는다.


나는 이번 설 연휴 내내 부산에 있을 예정이다.

4박 5일이나 있는데 한 번은 가봐야 하지 않을까 양심이 자꾸 말을 건다.

하지만 나는 이건 양심과 상관없는 것이라고 계속 부정하고 있다.

나의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제 그만하라고 한다.

이제는 떠나야 할 때인가.

그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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