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소파도 샀다.
미쳤다.
우리 집은 좁다. 좀 심하게 비약해서 "우리 집은 고시원이나 별반 다를 게 없어"라고 나는 말하곤 한다.
8평 정도 되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시선이 뻥 뚫리는 전망과 마주한다. 다행히 창문이 크다. 이건 때로 단점이다.
그리고 두 세 걸음 안으로 들어서면 양 옆 벽에는 책이 가득하다.
왼쪽은 내 책, 오른쪽은 놈의 책이다. 아, 한 칸은 내 책이다.
내 책은 부산 집에 보내고도 차고 넘쳐서 이제는 테이블 위에 쌓이고 있는 중이고,
오른쪽은 손을 대지 않으니 계속 먼지만 쌓여가는 중이다.
이번에 오른쪽 책장의 책들을 전부 버리려고 한다.
그래서 책장 2개를 샀다.
그리고 오른쪽 책장이 있던 자리에는 소파를 넣을 예정이다.
처음에는 1인 소파를 쓰다 버렸기 때문에 비슷한 것을 살까 하고 인터넷을 열심히 뒤졌지만
결국 앉았을 때 나를 안아주는 느낌을 주는 2인용 소파를 샀다.
소파는 인기 품목이라 한 달을 기다려야 해서 다행히 그동안 오른쪽의 책을 몽땅 묶어서 버리면 되고,
왼쪽의 책들은 테이블을 옮겨서 그 위에 몽땅 쌓아두려고 한다.
아, 그런데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고도 전공을 살리지 못한 이유는 먼지 알러지 때문이다.
피부가 먼지에 노출되면 순식간에 벌게지면서 나도 모르게 벅벅 긁고 있다.
그래서 오래된 책을 만질 때에는 우습게도 비닐장갑을 끼고 만진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책을 버린다는 것은 무척 가슴 아픈 일이다.
그리고 큰 죄를 짓는 기분이다.
차라리 6년 전에 짐 정리할 때 다 버릴 걸 나는 왜 챙겨 왔을까.
어제는 바닥에 주저앉아 아래에서부터 차근차근 책들을 보았다.
녀석의 연대가 보이는 듯했다.
아, 녀석이 이때에는 이런 일을 했구나,
어, 이걸 한 때도 있었나?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한 번씩 다 만져보았다.
(물론 욕실로 바로 달려가 손을 씻었다. 심지어 세수까지 했다.)
녀석과 내가 생각하기에 책은 우리에게 공기와 같은 것이었다.
항상 채워져야 하는 것.
없으면 세상 텅 빈 것 같은 형체만 남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
무엇보다 내가 활자중독이라 읽지 않으면 불안해서 대학 생활 내내 월간지를 사서 가방에 넣어 다녔다.
녀석의 깊이를 알 수 없는 통찰은 나의 질투의 대상이었고,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나중에 헤어질 때 되레 녀석이 내가 생각했던 것을 말해서 놀라긴 했다.
우린 같은 것으로 서로를 질투하고 시기하고 부러워하면서 싸우고 싸우다 헤어지게 된 거다.
책은 이번 주말에 버릴 예정이다.
그 날의 기분이 어떨지는 예상할 수가 없다.
숨은 쉴 수 있을까.
또 한 번 나는 녀석에게 죄를 짓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