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직장생활을 돌이켜보면 나는 단 한 번을 제외하고는 늘 생퇴사를 했었다. 사실 1번의 환승이직도 탈출 자체가 목적이라 3개월 정도 다닌 후 다시 퇴사를 했었으니 이 또한 생퇴사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까지는 보통 6개월 정도의 공백기가 소요되었고, 나는 그 기간 동안 다시는 재취업이 되지 않을 사람처럼 불안해하곤 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점프업 해서 이직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부러움 반 신기함 반의 감정을 느꼈고, 그럼에도 이건 개인의 운에 달린 문제겠거니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최근 환승이직 가능여부는 운이나 타고남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또한 알고 준비하느냐 모르고 안 하냐의 문제였다. 그렇지 않으면 정작 이직을 해야 할 순간이 와도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채 생퇴사라는 현실을 마주해야 할 것이다. 오늘은 나처럼 생퇴사로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들을 위해 환승이직을 위한 마인드셋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첫째, 미리 끝을 보고 시작한다.
첫 직장에 들어갔을 때야 말할 것도 없고, 경력직으로 이직을 하고 나면 누구나 앞으로의 새로운 회사생활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으로 열심히 일해보겠노라는 의지가 뿜뿜한 채로 시작하게 된다. 그러니깐 입사하자마자 퇴사할 날부터 생각하면서 회사생활을 시작하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환승이직러가 되기 위해서는 입사 때부터 내가 언젠가는 이 회사에서 퇴사할 날이 올 거라는 팩트를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그 회사와 내가 너무나 잘 맞고 운과 때도 맞아서 임원까지 승진하고 정년퇴직까지 할 수 있다면 정말로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이럴 확률은 대기업은 0.83%, 중소기업은 5.6%에 불과하다.*
그러니 약 95%가 넘는 사람들은 짧게는 1~2년, 길게는 5~6년 혹은 10년이 넘어가면 한 번은 내가 있는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될 거라는 말이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새로운 환경에서 금세 적응을 하고 매너리즘을 장착하는 상태에 돌입하게 된다. 백수 신분에서 탈출했다는 안도감, 하루하루 출퇴근하는 행위 자체에 대한 만족감, 한 달에 한번 계좌에 꽂히는 월급에 익숙해져버리게 된다. 이번달에 월급이 들어오면 뭘 살지부터 생각하지 이번달에는 어떤 성과 목표를 잡아서 내 이력서의 한 줄을 만들어야 할지를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나는 당장 담달에라도 이직을 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시작하지 않는다면 환승 이직을 위한 준비가 세팅이 되지 않는다. 마음먹고 어느 날 갑자기 시작한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회사에서는 아무도 나의 다음 커리어를 챙겨주지 않는다. 내가 앞으로 이 회사에서 할 일들이 나의 넥스트 스텝(즉 다음 이직처)을 만들어줄 거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당장 이직 의사가 있든 없든 내 직무의 포지션 공고에서 JD를 확인하면서 점검해봐야 한다.
이직은 이직을 마음먹었을 때 준비하는 게 아니라 입사 때부터 항상 준비해야 하는 것임을 기억하자.
둘째, 분기별로 업무를 정리한다.
회사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회사들은 연초에 직원들에게 자신의 업무목표나 KPI를 정하게 하고 이를 상반기, 하반기에 걸쳐 평가를 한다. 그래서 회사를 다니다 보면 단순히 내가 회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매몰되기 쉽다. 하지만 회사의 성과 평가 기준은 상사와의 궁합이나 조직의 목표에 따라 들쑥날쑥하다.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내가 회사에서 인정받고 못 받고는 별개의 영역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업무 역량과 경험은 오롯이 내 것으로 남는다. 그러니 KPI나 업무목표가 아니더라도 업무 퍼포먼스를 기록할 수 있는 기준을 찾아보고 나의 업무 목록과 내가 한 일, 성과를 차곡차곡 쌓아나가자. 한 번 이렇게 기록하기 시작하면 평생 가져갈 나만의 든든한 데이터 자산을 얻게 된다.
가능하면 매월초에 스스로 의미 있는 업무 목표를 세워보고 이를 의식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게 업무를 해나가보자. 그리고 월말이 되면 얼마큼 달성했는지 확인해보고 이를 이력서의 한 줄로 바꾸는 것이다. 매월 하는 게 여의치 않으면 최소한 분기별로 내 업무를 수치화해서 정리해보고, 내가 했던 작은 역할이라도 이를 성과로 표현해서 기록하는 습관을 기른다.
이게 습관이 되면 꼭 이직이 아니더라도 나의 직무 커리어에 대한 거시적 관점도 키울 수 있고 이는 실무에서 다른 직원과는 차별화된 퍼포먼스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올인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 이직은 연봉과 커리어를 상승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 준다. 나 역시 이직을 하면서 연봉 1200만 원을 상승시켜본 경험이 있다. 그런데 꼭 이와 같은 이유가 아니더라도 회사와 나의 상황은 당장 내일이라도 바뀔 수 있고 원치 않아도 이직을 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평소 이직에 대한 생각 없이, 심지어는 내 업무에 대한 회고와 정리 과정 없이 오로지 진심 100%만을 가지고 일에 올인하고 있었다면? 갑자기 전력질주를 하는 사람이 멈추면 어떻게 될까? 더구나 높은 확률로 회사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일을 주기 마련이다.
그러니 항상 내 에너지를 30% 정도는 비축해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회사란 나의 몸과 마음을 바쳐 올인해야 할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파트너 관계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상태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에너지를 비축하면서, 내 커리어를 잘 챙기고 채용시장에 대해서 깨어 있어야 한다.
나 또한 매번 번아웃이 올 정도로 일하다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카드인 퇴사를 선택하곤 했었다. 번아웃이 오면 이를 정상 궤도로 회복시켜놓기까지 꽤 많은 에너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커리어를 관리해야 하는 직장인들에게는 너무나 큰 손실이다. 그리고 열심히 일해서 번아웃이 왔다고 회사가 이를 알아주지도 챙겨주지도 않는다. 차라리 평소 내 에너지를 비축하면서 평범하지만 꾸준한 퍼포먼스를 내는 게 훨씬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