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약 3개월 간의 회계법인 인턴이 끝나고, 나는 취준생이 되었다. 금융권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인턴을 끝내고 그 방향성이 조금 구체화되었다. 시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숫자를 다루는 업무를 해야겠다. 그래서 valuation, M&A, transaction, 투자 쪽으로만 지원을 했었다. 하지만 이 쪽은 금융권 중에서도 굉장히 들어가기 힘든 부서들이라 서류를 꽤 많이 썼던 걸로 기억하는데,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온 곳은 몇 군데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국내 기업 중에는 가고 싶은 곳이 하나도 없었고, 자기소개서 한번 써본 적 없었기 때문에 난 대부분 외국계로 지원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외국계가 아닌 전형적인 한국회사에서 일하는 내 모습은 잘 상상이 가지 않았고 가더라도 적응을 잘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 외국은 살아본 적도 없고 유일한 해외 경험이라곤 대학생 때 잠깐 다녀온 유럽 교환학생이 다인데 어떻게 이렇게 생각했을까? 하지만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바람과 다르게 취업 시장은 녹록치 않았는데 내가 레쥬메를 돌리던 21년은 코로나의 여파로 안 그래도 어려웠던 채용 시장이 더 얼어 붙고 있었다.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하는 곳이 이렇게 없다니... 취업이 쉽지 않다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그럼에도 그 와중에 드문 드문 면접을 보러 갔었는데, 콕 집어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냥 마음에 끌리는 곳이 없었다.
이런 취준생의 신분이었던 나날이 두 달 가까이 지속되었고 너무 힘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두 달은 그리 긴 기간은 아니다. 아무데도 취업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은 없었지만, 원하는 업무와 환경에 발을 디딜 수 없을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세상에 회사야 많으니 적당히 월급 받고 워라밸 챙기는 게 목표였다면, 갈 곳이야 많았다. 누군가에게 회사는 내가 제공한 노동 시간을 지불하는 곳일지 모르겠으나 나에게 일은 그 이상의 의미였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성장할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퇴근 시간만 기다리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원했던 것조차 잊고 있었던 한 외국계 상업용 부동산 투자 자문 회사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부동산 학과도 아니고 부동산에 대해서 문외한이었던 내가 지원하게 된 과정은 다음과 같다. 독일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던 중 만난 독일 친구가 학기를 다니면서 부동산 회사에서 인턴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었는데, 난생 처음 들어보는 회사였다. 업계에서는 가장 큰 회사라고 해서 그날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한국에도 지사가 있었다. 당시에는 서울에도 지사가 있는 걸 보니 꽤나 큰 회사인가보다 라고 생각을 하고 잊고 살던 차에, 레쥬메를 돌리면서 이름이라도 들어본 회사들을 검색하던 중 이 부동산 회사가 생각이 났다. 마침 회사 홈페이지를 보니 관심 있는 포지션이 열려 있었고, associate level 채용으로 되어있어 신입 포지션인 줄 알고 레쥬메를 넣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2-5년차 경력직을 뽑는 자리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경력이라곤 관련 없는 회계법인 인턴 3개월이 전부였으나 여차저차 면접을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