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리즈 발행 부수 1억 2천만 부가 넘었다는 소년 만화, 슈에이샤의 '주간 소년 점프'에 1990년~1996년 연재된 후 26년 만에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감독한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개봉했다.
정말 난리가 났던 만화였지만 나는 이 만화를 본 적이 없다. 만화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기에 친구들이 강백호니 채치수니 이야기할 때도 그 대화에 못 끼는 게 아쉽지도 않았었다. 나조차도 이런 내가 신기하다.
극장판 개봉 소식을 듣고, 역시나 화제가 되는 걸 보면서 한번 봐야겠다 싶어서 극장을 찾았다. <슬램덩크>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도 무리 없이 감동을 줄 것이라는 평도 한몫했다.
역시! 이래서 다들 슬램덩크, 슬램덩크 했구나! 이 콘텐츠를 처음 접함에도 강백호 때문에 웃고 울고, 송태섭 가족 이야기에 흐느껴 울고, 마지막 쫄깃한 승부에 심장이 터질 듯 긴장했다.
CG와 모션캡처, 거기에 2D 스케치까지 합쳐진 이 청소년 농구 애니메이션은 정말 대단했다. 북산고 농구부와 고교 최강 산왕공고 농구부의 대결을 중심에 두고 각 인물의 서사를 플래시백으로 보여주면서 <슬램덩크>의 팬이라면 익숙할 추억들을 배치했다.
나도 아는 강백호가 씬스틸러로 분위기를 잡아끌긴 하지만, 극장판의 실제 주인공은 송태섭이다. 팸플릿에 실린 감독 인터뷰를 보니 만화에는 담지 못했던 송태섭의 어린 시절부터의 이야기와 가족사를 마침내 풀어내면서 새로운 '슬램덩크'를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동갑내기인 산왕공고 에이스 정우성과의 라이벌 구도와 그 후 NBA에서 만나는 설정까지 온전히 송태섭의 성장 서사로 꾸려나간다. 이 콘텐츠를 처음 보는 나도 송태섭의 가족 이야기와 농구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고, 송태섭의 성장 스토리로도 충분히 감동을 받았다.
이 콘텐츠를 처음 보기도 한 것이고, 일본 캐릭터 이름도 우리나라 이름으로 소개된 것에 익숙하기도 해서 우리말 더빙판으로 관람했는데 이 또한 편안하게 몰입해서 볼 수 있었던 이유다. 강백호 목소리를 연기한 강수진 성우뿐만 아니라 송태섭 역의 엄상현, 서태웅 역의 신용우, 정대만 역의 장민혁, 채치수 역의 최낙윤, 이한나 역의 소연 성우 등이 맛깔난 목소리 연기를 펼친다.
엎치락뒤치락하던 승부를 결정짓는 마지막 1분, 아무 소리도 없이 이미지만 나오는 스크린과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의 숨소리와 침 삼키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던 짜릿한 순간은 이 애니메이션 관람의 절정이다.
작가의 펜그림체로 화면에 북산고 5인방이 한 명씩 등장할 때 흐르던 The Birthday의 'Love Rockets'와 엔딩 크레딧 때 심장을 뛰게 하는 10-FEET의 'Double Crutch ZERO'도 짜릿함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