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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고슴도치 Apr 09. 2024

[2015도6809] 세월호에 탄 사람들

[족함에 닿아가는 法]  선택이 만드는 파도의 파고와 선형에 관하여

2021년 4월 16일, 형법총론 강의 시간에 이 판례를 다루게 되었다.

살인죄와 같이 일반적으로 작위를 요하는 범죄가 부작위에 의하여도 성립할 수 있는지 여부 및

그 부진정부작위범의 고의가 인정되려면 어떠한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지 등을 배우는 중이었다.

개념 및 요건 이해를 위해 다뤘던 판례였고 사건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에

사실관계를 지나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2022년 봄, 형법각론 시간에 살인죄 및 업무상과실치사죄를 다루면서 이 판례를 다시 꺼내보게 되었고

이번에는 범죄 성립 여부 등을 살피기 위하여 강의에서 사실관계를 꼼꼼히 읽었다.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들도, 소외인으로 표기된 사람들도,

모두 세월호에 탄 사람들이거나 세월호에 탄 가족・동료・제자를 떠나보낸 이들이었다.


판례를 읽어보면서 사건 발생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당시 나는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는 고3이었는데,

사건 발생 당일에는 학교에서 인터넷도 쓸 수 없고

선생님들도 잘 알려주지 않아서 전원 구조된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이자 내 생일날,

많은 사람들이 아직 구조되지 못했고 현장은 난리 북새통이 되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 세상에 온 날 그리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뜨다니,

학업과 교우 관계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있던 나는 목숨이라도 대신 주고 싶었다.

삶이 간절할 물속의 누군가가 더 열심히 살아준다면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직 어린 친구들이 살아서 나오길 간절히 바랐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의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 매년 생일 전날만 되면 세월호 사건이 떠올랐고,

생일 당일에는 (내가 생존자도 아니면서) 그 사람들 몫까지 열심히 행복하게 살고 있나 반추한다. 



세월이 지나 그런 감정들이 조금 희석되어 갈 때쯤

법조인이라는 직업을 눈앞에 둔 사람으로서 보다 이성적으로 사실관계를 살폈지만,

여전히 질책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판례 표현을 빌리자면 선장은 안전에 대한 총책임자로서 위험 상황 발생 시

그 사실을 당국에 신고하거나 구조세력의 도움을 요청하는 등의 기본적인 조치뿐만 아니라

실현가능한 구체적인 구조계획을 신속히 수립하고,

선장의 포괄적・절대적 권한을 적절히 행사하여 선박공동체 전원의 안전이 종국적으로 확보될 때까지

적극적・지속적으로 구조조치를 취할 법률상 의무가 있다.

설령 그러한 법률상 의무가 없다 해도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사회 조리상,

즉 인간이라면 마땅히 승객들에게는 가만히 있으라 지시하고 본인만 살아나오는 선택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내가 선장의 자식/배우자/막역한 친구였다면,

그렇게라도 살아나온 나의 소중한 사람을 마냥 질책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스친다.



선택이 만드는 파급력, 그 파도의 파고와 선형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를 위하려는 잔물결이 궁극적으로 타인과 사회에 매서운 파도로 덮친다면.

혹은, 타인을 위하려는 완만한 파도가 궁극적으로 나의 세상에 날카로운 선형으로 덮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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