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광고 두번째 이야기 : 마케팅 패러다임을 바꾸는 리마케팅 사례
"그만 좀 사라. 무슨 택배가 맨날 오니?"
출근시간. 집을 빠져나오는 문 뒤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잔소리 보단 사실에 가까웠다. '인터넷=최저가'라는 믿음과 함께 거의 모든 물건을 온라인을 통해서 구매한다. 특히 월급이 들어오는 매월 5일즈음 택배 아저씨의 왕래는 더욱 빈번해진다. 돈보다 시간이 더 빈곤한 마케터의 라이프스타일도 한 몫을 했으리라. 하지만 스스로는 알고 있었다. 이 택배들의 근본 원인은 바로 '시발비용'에 있다는 것을.
시발비용; 예상하는 비속어 '그것'과 '비용'의 합성어다. 스트레스 등으로 나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하여 불필요하게 지출하는 비용을 말한다. 출퇴근길 미드라도 보며 자기계발을 하면 좋으련만 업무시간 외에는 머리를 도통 쓰고 싶지 않다. 아니, 정확히 말해선 출퇴근 시간에도 업무를 하고 있다. 책상 모니터 앞에서 빠져나와 군중 속에 몸을 맡기며 내가 맡은 프로젝트나 클라이언트에 대해 생각해보기 더 좋은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마케터로서 직업병이다.
아침일찍부터 업무생각을 하다가 생각에 과부하가 걸리면 이 때 보상심리가 작용한다. 좋아하는 이커머스 앱을 키거나 SNS를 확인하며 머리를 식힌다. 클릭도 필요없는 페이스북 뉴스피드를 아래로 슉슉 넘기다가 만나는 제품광고 영상들 - 콘텐츠로 여겨질만큼 높은 주목도와 탄탄한 구성을 가진 광고 동영상을 보며 나름 마케터로서의 평가와 스크랩도 잊지 않는다. 다양한 마케팅 사례를 보고 제품을 경험하는 것 또한 마케터로서 좋은 배움이라고 이야기하면 핑계일까?
이런 나의 구매성향을 페이스북은 정확히 알고 있다. H&B(Health & Beauty) 카테고리에 관심이 많고 구매까지 쉽게 연결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난 자본주의 사회에서 마케터이자 동시에 마케팅 당하는(?) 이중적인 정체성을 갖는다.
최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만난 마케팅 사례들 중, 마케팅적 사고에 불을 켜는 사례들이 있었는데 바로 비타민샤워기와 베개다. 실제로 구매한 제품인데 두 제품 모두 SNS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그 광고물을 접했을만큼 유명한 아이템이다. 교정베개의 경우 '마약베개'라는 인상깊은 이름 뿐만 아니라 베개 위에 달걀 한판을 올려놓고 밟아서 안깨지는 영상으로 더 인상깊다. 심지어 타회사에서 '마약베개'에 반대되는 주장을 하는 '꼬북베개'까지 나왔는데, 그들은 계란을 처참하게 깨뜨리며 베개가 딱딱해야 목을 잘 잡아준다고 주장한다. 진실보다는 마치 마케팅의 힘이 진실인 것 같은 시대 - 어찌됐던 그렇게 난 마케팅의 힘에 이끌려 두 제품 모두 내 침대 위에 사이좋게 서식 중이다.
마약베개의 경우, 무중력으로 힘을 골고루 분산시킨다는 제품USP*를 '계란을 밟아서 깨뜨리는 실험'을 주제(Theme)로 제작한 기획력도 강력하지만 내가 주목하고 부분은 그들의 제품 상세페이지와 리타겟팅 광고다. 제품 상세페이지를 모두 읽어내려가는데 거의 3분이라는 시간이 걸릴 정도로 제품을 매우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제품 상세 페이지에 목숨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USP(Unique-Selling-Point) : 제품을 판매하는 데 핵심이 되는 소구 포인트를 의미한다.
베개에 서식하는 세균들로부터 안전하고 쉽게 세탁이 가능하다는 점, 무중력으로 목을 받춰준다는 과학적인 근거들, 타제품과의 비교와 소비자의 리뷰를 다양한 각도에서 상세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러한 제품 페이지는 소비자가 특별히 타제품과 비교하기 위해, 구매자의 리뷰를 확인하기 위해 검색을 해보거나 다른 페이지로 이탈할 요인들을 제거한다. 탄탄한 제품력과 그를 잘 설명하는 제품 페이지는 바로 구매까지 연결시키기 충분한 힘을 갖는다.
하지만 이 제품을 [구매]한 시점은 제품을 알게 되고, 몇주 후 우연히 만난 리타겟팅 배너를 통해서라는 사실에 핵심이 있다. 콩이 발효되어 된장이 되기까지 숙성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제품을 구매하는 데에도 숙성시간이 필요하다. 영상을 통해 제품을 알게되고 상세 페이지 방문을 통해 좋은 제품력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 것과 실제로 구매를 하는 것은 마케터에겐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영상이 화두가 되고 그만큼 홈페이지로 유입이 많이 되더라도 구매가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영상조회나 클릭 등 소비자의 반응은 상대적으로 낮았음에도 의외로 높은 구매율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영상이 좋은 반응이 있다고 해서, 혹은 홈페이지로 많은 트래픽이 왔다고 해서 항상 그만큼의 구매율을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리타겟팅의 힘은 바로 이 점에 있다. 마케팅 앞단에서 제품에 대해 인지, 긍정적인 평가를 쌓은 소비자를 실제 구매로 전환시켜내는 최종 전환자(Conversion), 부스터(Booster) 역할을 한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 할지라도 소비자입장에서 제품을 구매할 준비가 되어 있는 시점을 기다려야 한다. 리마케팅은 그 시간의 간극을 이어붙여서 구매를 일으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월급이 들어온 그 다음 주 날 따라다니던 리타겟팅 배너로부터 결국 베개를 구매했다. 이미 제품에 대한 [인지-흥미-고려단계]가 끝난 상태였다.
전세계 마케터들이 그들의 마케팅 전략을 수립할 때 사용하는 구조도가 있다. 바로 마케팅 퍼널(Marketing Funnel)이다. 소비자가 특정 제품과 서비스를 인지하는 순간부터 구매까지의 과정을 단계별로 나누어 놓은 것인데, 각 단계별 소비자의 상태를 고려하여 적절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짜는 데 유용한 접근법이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제품을 고려(Consideration)하는 단계에서 소비자는 제품에 대해 이미 인지하고 있고 제품에 흥미를 가진 상태다. 이 단계에서는 제품을 타브랜드와 비교함으로써 제품력을 강조한다든지, 혹은 샘플링을 통해 제품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최종 구매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는 플랜 등을 수립할 수 있다. 물론 정답이 없는 마케팅의 세계에서 단계별 접근방식은 업종과 상품, 그리고 마케터의 스타일에 따라 천차만별임을 잊지말자!
이 다이어그램은 소비자가 하나의 제품을 알게되고 구매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프로세스를 설명한다. 마케팅 퍼널이 깔데기 형태를 갖는 이유는, 제품을 안다고해서 모두가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것처럼 더 발전된 단계에 이룰 수록 소비자의 볼륨은 적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SNS를 통해 만났던 제품과 마케팅 사례들 중에서 이러한 개념이 무색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영상이라는 마케팅 소재가 제품을 인지하자마자 호감과 긍정적인 평가를 일으켜내기도 하고, 구매를 고려하는 단계에서 필요한 타제품 비교라든지 구매자의 리뷰들이 모두 담겨있는 상세페이지로 하여금 제품을 접하자마자 바로 구매까지 전환되기 때문이다. 해당 사례들의 경우 마케팅 퍼널 중 [인지-흥미-고려] 단계가 하나로 통합되며 깔데기의 각도 또한 완만해진다. 이러한 현상들은 특히 가격대가 낮은 소비재(CPG, Consumer Packaged Goods) 섹터에서 빈번하게 나타난다. 어쩌면 우리가 통용하고 있는 마케팅 퍼널은 더이상 오늘날 마케팅 생태계를 온전히 해석하기 어려운 개념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더 발전시켜서 이야기해본다면 제품력이 있다면 브랜드 파워가 크게 중요하지 않는 소비성향도 발견한다. 가치관이나 라이프스타일과도 관련이 있는 이 소비성향은 오히려 남이 알지 못하는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시도해보고 경험하는 것에 매력적으로 삼는다.
최근 인스타그램 뉴스피드를 보면 화장품은 [브랜드]와 [저렴이] 그리고 [논브랜드]의 카테고리로 세분화된 양상을 보인다. 논브랜드란 구체적으로 정의한다면, 브랜드 인지도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인플로언서에 의해 소개되는 브랜드 인지도가 없는 제품들을 말한다. 특히 인플로언서는 해당 제품의 마케터이자 동시에 판매채널로서 활동하며, 팔로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인플로언서가 추천하는 제품을 적극적으로 구매한다.
더이상 유명한 브랜드가 제품력을 대변하는 시대는 지났다. 소비자가 인정하는 제품력이 곧 좋은 제품을 의미한다. 어쩌면 최고의 마케팅은 좋은 제품력이라는 제품 본연의 가치가 다시 중요해지는 것은 아닐까? 제품력과 그것을 잘 표현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해지는 시대다.
이러한 사례들은 더이상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마케팅과 유통 채널이 이동하는 것을 넘어서, 온라인이 세분화되어 소셜미디어(SNS)가 마케팅과 유통채널의 경계선을 무너뜨리고 심지어 통합시키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즉, 마케터들은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그들의 제품을 집중시키고, 긍정적인 평가를 양상, 제품판매에 필요한 모든 세일즈리드(Sales Leads)*를 축적한 다음 자사몰을 중심으로 제품 구매를 일으킨다.
* 세일즈리드(Sales Leads) : 판매의 가능성이 있는 잠재고객 혹은 세일즈 기회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회원가입을 통해 이메일 뉴스레터를 신청한 고객은 판매 가능성이 있는 세일즈 리드라고 할 수 있음
이는 기존에 마케터들이 SNS, 동영상채널, 검색광고, 써드파티 유통채널 등 다양한 채널을 운영함으로 발생하는 비용부담을 줄일 수 있게 된다. 여러 채널을 운영함으로서 발생하는 비용을 덜어내고, 한두가지 채널과 콘텐츠에 집중함으로써 채널당 더 높은 효과를 도모한다. 특히 SNS채널은 콘텐츠의 형태로 제품을 경험하으로써 제품에 대한 높은 흥미와 긍정적인 평가를 수월하게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 그 힘이 있다.
최근 린 스타트업(Lean Start-up)이 신규 사업을 개발하는 접근법으로 화두가 된 적이 있었는데 마케팅에서의 '린(Lean)함'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중요한 핵심 - 여기서는 제품력과 중요 커뮤니케이션 채널 - 에 집중하고 나머지를 과감히 포기하는 접근방식, 그리고 판매전환에 날카롭게 그 초점을 맞춘 마케팅 방법이다. 결국 다양한 요인이 결합해 하나의 제품, 마케팅의 성공사례를 만들지만 구매가 마케팅의 궁극적인 성과지표임을 고려한다면 리타겟팅을 빼놓고 설명하긴 어려울 것 같다.
나비효과일까. 출근시간 엄마에게 들은 잔소리가 내 마음에 울림이 되어 마케팅 패러다임을 고민해보는 폭풍이 되어 돌아왔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글로벌 클라이언트나 유명 브랜드를 담당하는 것은 AE* 혹은 해당 마케터로서 매우 훌륭한 기회였다. 큰 규모의 마케팅 예산을 운영해볼 수 있기에 가시적인 효과를 확인할 수 있고, 마케팅 선진국들의 노하우라던지 글로벌 에이전시의 업무 체계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 또한 그렇게 배우고 성장한 케이스였다.
* AE(Account Executive) : 광고회사에서 광고/마케팅 기획자를 일컫는다.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마케팅 방향과 전략수립부터 실제로 운영까지 담당함으로써 '광고 회사의 꽃'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타국가와 동일하게 적용할 수 없는 유니크함이 대한민국에 존재한다. 스타트업도 투자를 받고 큰 규모의 예산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는 것을 보며, 혹은 작더라도 린(Lean)하게 보다 강력한 마케팅 전략으로 전체 시장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소비자도 더이상 비싸고 유명한 브랜드가 좋은 제품력을 보증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렴하면서도 좋은 제품을 찾아내고, 나에게 맞는 제품을 선택하며, 사회에 의미있는 제품을 적극적으로 구매하기도 한다. 소비자가 먼저 바뀐 것인지, 혹은 마케팅에서 새로운 시도들이 있어 이러한 변화를 견인해왔는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변화의 굴곡점이 최근 1-2년 사이 있었음을 체감한다. 시대가 변화하고 있다.
정답이 없기에 더욱 재미있고 그렇기에 변화무쌍한 마케팅의 세계 - 내가 마케팅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아닐런지.
* 현재 <일상에서 발견하는 마케팅 모먼트> 브런치북 내용은 디아이매거진 과 디지털 인사이트(Digital Insight) 페이스북 채널에도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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