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디스크 재활치료를 받고 병원 근처 '힙'하다는 맛집을 찾았다. 대학교 캠퍼스 근처에 생긴 집이었는데 겨울방학임에도 불구하고 맛집답게 식당 앞에 줄을 길게 섰다. 이 상황이 당연한 듯 직원은 3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며 투박하게 대답했다. 테이블 상황에 따라 시간은 더 걸릴 수도 있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기다릴까 그냥 갈까 고민하는 찰나 - 줄을 서있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맛있는 설렘이 느껴진다.
무려 40분의 기다림 끝에 만난 일본식 덮밥은 참 정갈하고 맛있었다. 그런데 내가 눈여겨본 것은 그 식당의 인테리어였다. 나무로 짜인 일본식 ㄷ자 바 테이블은 눈 앞에서 음식을 조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구조였다. 골동품처럼 느껴지는 턴테이블이 있고, 작은 모니터로 일본 방송 프로그램을 켜놓았는데 이것도 인테리어 요소였을 거라 생각한다. 들어가자마자 마치 일본에 여행 온 것 같은 느낌을 내기에 충분했다. 일본의 장인정신까지 느껴지는 요리사들의 복장과 요리하는 모습이 마치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공연을 보는 것만 같았다. 나중에 검색을 해보니 오후 2시~5시까지는 직원들이 잠깐 휴식을 갖고 재료를 준비하느라 문을 닫기 때문에 20~30분씩 대기하는 것은 기본이라고 한다. 재료가 다 떨어져도 일찍 문을 닫는다.
맛있는 음식과 개성 있는 인테리어. 그리고 함께하는 직원과 음식에 대한 철학. 학생들이 좋아한 것은 바로 이런 요소들이 아니었을까? 대기시간은 어쩌면 이러한 즐거움을 극적으로 만드는 조미료가 된다.
마케팅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중심축이 되는 세대,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을 살펴보는 두 번째 글이다. 밀레니얼 세대들의 가치관은 그들이 태어났던 시대의 사회적 배경을 반영하며 형성되었으며, 그것은 순환되어 다시 우리 사회에 새로운 다이내믹스(Dynamics)로 작용한다.
마케팅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 두 가지 (이전 글)
1. "Brand-friendly" : 브랜드에 친숙한 세대
2. "Practical mindset" : 허세보단 합리성, 실용성을 중시하는 세대
자, 밀레니얼 세대가 지닌 또 다른 두 가지 특성을 알아보자. 지금부터 설명할 밀레니얼 세대들의 특징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마성의 매력'을 가졌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모바일 앱으로 주문을 하면 사람과 대화 없이도 몇 초만에 사이렌이 울리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시대.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비행기로 2시간이면 넉넉히 도착해 국수도 먹는 사회 - 우리는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하는 데 장애물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를 살아간다. 또한 물리적인 오프라인 공간에서 '온라인(Online)'이라는 비현실적인 차원으로 국가의 인프라와 비즈니스 시스템, 인간적 교류가 옮겨감에 따라 초 단위로 내가 원하는 것을 찾고 구매하고, 경험하며 교류할 수 있는 초고속 사회를 살아가는 중이다. 편리함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시대 - 오히려 과한 편리함과 빠른 속도가 우리를 더 불안케 하는지도 모르겠다.
밀레니얼 세대에게 편리함은 태어났을 때부터 주어진 당연한 것이었다. 사실 아날로그 감성을 그리워하는 세대란 오프라인과 온라인 두 가지 채널을 모두 경험한 세대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편리성'이라는 가치는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편리함 보단 '펀(Fun)함', 곧 즐거움(Entertainment)이 더 중요한 사람들이 바로 밀레니얼 세대다.
최근 '뉴트로(Newtro)*'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른 배경도 편리함보다는 개성, 색다름에서 오는 즐거움을 더 추구하는 가치관이 새로운 문화·비즈니스를 발현시킨 것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옛날 7080년대 유행한 옷들을 사서 입고 익선동 거리를 활보하는 학생들 - 어디서 그런 옷들을 구했는지 신기하기까지 하다 - 모습 속에서 옛 것들은 불편한 존재가 아닌 독특한 경험이자 즐거운 요소로 작용한다. 불편했던 한옥집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배바지와 같은 복고패션은 나라는 사람의 개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선택적 요소일 뿐이다.
* 뉴트로(Newtro) : '새로운(New)'이라는 뜻과 복고를 의미하는 '레트로(Retro)'가 합쳐진 신조어로, 과거 복고적인 요소를 현재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편리함. 그것은 밀레니얼 세대들에겐 항상 주어져왔던 것이기에 어떤 행동을 선택함에 있어 크게 인지되거나 작용하지 않는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밀레니얼 세대가 추구하는 가치란 편리함(Easiness)에서 기인하지 않는다. 편리함보다는 '얼마나 더 즐겁고 재미를 줄 수 있는가'가 그들의 행동을 결정하는 중요한 지표로 작용한다. 오히려 사소한 불편함과 불친절은 자신이 얻게 될 즐거움을 더 극적으로 만들어주는 요소가 된다. 어쩌면 기성 시대가 추구했던 '빨리빨리' 문화는 밀레니얼 세대를 맞이하면서 '더 재밌게, 더 즐겁게'로 전환된 것은 아닐지? 모가 없고 둥글둥글해서 누구에게나 가치를 전달할 수 있음을 편리함이라 비유한다면, 그들에게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은 '뾰족한 것'이다. 개성이 넘쳐서 한번 경험해보고 싶은 대상, 뾰족하기에 모든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고 그래서 나만의 희소한 경험이 되는 것들 말이다.
앞서 토로했던 맛집에서 내가 느낀 불편감 - '우리 가게는 항상 30분 대기시간이 있어요'가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잘 먹히는(?) 이유가 아닐지. 그렇다고 불편함을 일부로 만들진 말자! 불편함을 감수할만한 강력한 개성, 그로 인해 발생하는 더 큰 즐거움이 먼저니깐 말이다. 편리함을 최고의 가치로 전달하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덕목이 되진 않았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밀레니얼 세대를 타겟으로 하는 제품 기획과 사업모델, 마케팅 전략에서 핵심가치가 변화되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밀레니얼 세대의 가치관을 온전히 반영한 마케팅 사례로 무엇이 있을까? 최근 흥미롭게 찾아보았던 사례 '괄도 네넴면' 케이스를 공유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팔도에서 35주년 기념으로 이번에 출시한 기획상품은 제품부터 마케팅, 유통까지 모두 1020대 밀레니얼 세대의 가치관을 꼼꼼히 반영한 성공적인 사례로 꼽고 싶다. 자신이 밀레니얼 세대를 타겟으로 상품기획이나 마케팅을 하는 소비재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면 이번 팔도의 사례를 팀원들과 함께 공부해볼 것을 추천한다.
위 이미지는 팔도에서 35주년 기획상품으로 출시한 '괄도 네넴면'이다. 1020대들에게 인기 있는 삼양의 불닭볶음면을 경쟁 제품군으로 인식하고 출시한 것으로 보인다. 상표명을 바꾼 것 같진 않고 10대들의 표현법을 사용해 패키징을 리뉴얼했다. 멍멍이를 '댕댕이'로 표기하고 말하는 것처럼 하나의 대상을 비슷하게 보이는 다른 단어로 대체해서 표기하는 방식인데, 자신의 제품을 '비표준어'로 표기했다.
회사에서 마케팅 전략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사람은 그 회사의 대표 또는 최고경영자임을 고려했을 때 최소 4050대 연령층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팔도에서 결정한 이번 '괄도 네넴면' 패키징 리뉴얼은 대단히 파격적인 수준의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대기업·중견기업 마케팅 부서들이 제품 기획 단계에서 그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어려운 조직구조와 업무 분배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품 기획은 제품기획팀에서, 마케팅은 마케팅팀에서 진행한다. 회사 규모가 클수록 이러한 업무 분할은 각각의 직원마다 더 잘게 쪼개진다. 이로 인해 마케팅 부서는 제품 기획부서에서 만든 완제품을 받아다가 홍보 단계에서만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실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 뿐만이 아니다. 설령 마케팅 단에서 타겟 소비자의 감성, 업의 트렌드를 잘 반영해 마케팅 전략을 기획하더라도, 그러한 감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층에서 최종 의사결정이 내려지기 때문에 실제로 전략이 수행되지 못하고 타협점을 찾는 것이 흔한 일이다. 이러한 사내 마케터의 노고와 현실을 개인적으로 너무 잘 알기 때문일까? 제품 기획 단계부터 10대 20대의 감성을 반영하고, 최종 의사결정자들의 승인까지 통과해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이행한 팔도가 놀랍기까지 하다.
이 뿐만 아니다. 11번가에서 한정상품으로만 판매하는 유통채널 전략 또한 신의 한 수였다. 물론 신제품을 파일럿 테스트할 목적으로 소량만 출시하여 먼저 소비자의 반응을 보는 경우도 있지만 - 마케팅이란 것이 포장하기 나름이니깐 - 한정물량을 특정 채널에서만 판매함으로써 그것을 경험하고자 하는 소비자에게 '희소성'을 부여했다. 제품을 구매하는 행위조차 또 하나의 모험이 되고 즐거움의 대상이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형성한 강력한 제품력을 마케팅 효과로 전환, 확장시킨 것이 바로 밀레니얼 세대가 중심이 되는 '인플로언서'들이다. 괄도 네넴띤은 많은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먹방' 인플로언서들에게 새로 나온 재미난 제품을 경험하는 '후기 콘텐츠' 주제로 활용되기 충분했다. 먹방계 대표 스트리머인 '밴쯔'가 시식하는 영상이 올라왔는데 무려 영상 조회수가 86만 회를 넘어섰다. 마케터가 홍보의뢰를 한 경우였는지 내부 담당자가 아니라서 모르지만 만약 오가닉*하게 밴쯔가 리뷰를 한 경우라면 이 영상으로 하여금 팔도와 팔도비빔면 브랜드에 대한 마케팅 효과는 엄청나다.
* 오가닉(Organic)하다 : 마케팅 비용을 지불하는 경우(Paid)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순수하게 홍보효과가 발생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내가 밀레니얼 세대를 '마성의 매력'을 지닌 세대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들이 개인주의적이면서도 동시에 사회를 생각하며 의미 있는 일들에 참여하길 원하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관심사와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자신이 관심 있는 사회문제에 다양하게 참여하고 있다. 성평등 문제에 대해 어느 세대보다 치열하게 고민하며, 과거 일제시대 성노예 피해자에 대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관련 시위에 참여하기도 한다. 대학교 동아리 활동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와 환경문제를 해결하고자 채식주의(Veganism) 삶을 실천한다. 이들은 세월호 사건을 통해 자신도 얼마든지 사회의 부조리로 인해 비참한 죽음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세대이자, 촛불시위에 직접 참여하며 나라의 정권을 교체한 세대이기도 하다.
밀레니얼 세대의 사회참여적 성향은 개인이 사회에 참여하는 활동의 단위, 즉 '소비'를 통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행위는 하나의 소비자로서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자 핵심적인 활동이라는 사실을 태어났을 때부터 체득하고 있는 세대다. 그로 인해 밀레니얼 세대들은 좋은 제품과 의미 있는 소비활동을 적극적으로 공유하며 타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이러한 밀레니얼 세대의 성향에 발맞추어 다양한 브랜드에서 관련 마케팅 활동을 벌이고 있다. 미국 패션 브랜드 라카이(lAKAI)에서는 지난 3·1절을 맞아 태극기 신발을 판매했다. 신발에는 무궁화가 그려져 있고 태극기도 신발 양쪽에 박혀있다. 업체는 "3·1절은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한국의 독립의사를 세계만방에 알린 날을 기념하는 국경일입니다"며 "일본은 239개 판매 국가 중 하나일 뿐 저희는 그저 진실을 알릴 뿐이다"라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자신이 소비하는 제품을 통해 사회를 돌아보고 변화에 참여시키는 대표적인 브랜드가 바로 영국 핸드메이드 코스메틱 브랜드 '러쉬(Lush)'다. 개인적으론 러쉬와 같은 브랜드가 대한민국에서도 과연 나올 수 있을까 내심 기대를 하는 중이다. 전 세계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그들은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매장에서 선보이기도 하고,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고자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재활용된 플라스틱 용기를 그들의 제품 용기로 사용하기도 한다. 인기 제품 중 하나인 '체러티 팟(Charity Pot)'은 제품 구매 시 부가세를 제외하고 전액을 각 국가에서 의미 있게 활동하는 사회단체를 엄선하여 기부하고 있다. 선별기준은 각 국가별로 동물보호나 인권, 환경보전에 지속해서 공헌하는 소규모, 비영리 시민 단체를 대상으로 한다. 250g 한 통에 45,000원이라는 결코 녹녹지 않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채러티 팟은 며칠만 늦게 가도 살 수가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핸드크림이기도 하다. 제품으로서 특별한 것은 전혀 없다. 단지 그 브랜드, 제품이 가진 의미가 특별할 뿐이다.
밀레니얼 세대에게 사랑받고 싶은 브랜드가 되고 싶다면 제품과 사회적 가치를 연결시켜보자. 제품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기회'를 사게 하는 힘 - 이때 제품의 품질, 가격은 오히려 사소한 요소가 돼버리는 무시무시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난다.
출근시간.
야근으로 몇 시간 쉬지 못한 몸을 이끌고 버스에 몸을 싣는다. 버스 안에서 만나는 중고등학생들의 가방에 달려있는 세월호 리본을 종종 만난다. 고등학생 시절, 입시로 고통스러웠던 시간은 더 이상 뇌리에 남아있지 않은 '직딩'인 나에게도 노란색 리본은 불현듯 세월호 사건 때 느낀 씁쓸함을 상기시킨다.
그때마다 스쳐 지나가는 이름 모를 학생은 '어른'인 나에게 무언의 외침을 하는 것만 같다.
'세월호를 잊지 말아 주세요'라고.
1985년 이후 태어난 사람을 '밀레니얼 세대'라고 규정하는 틀로 인해 나 또한 밀레니얼 세대가 되었지만 5~6살 차이만 나도 세대차이를 느끼는 형국에 2000년대에 태어난 지금 대학생이 된 친구들은 또 얼마나 다를까 싶다. 하지만 '요즘애들'을 규정하거나 선을 긋는 어른이 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태어난 사회적 배경을 이해하며 그것으로 인해 발현된 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포용력 있는 자세. 그 다름 속에서 공통점 또한 찾아낼 수 있는 '어른'이고 싶다. 그렇게 늙어가는 올드한(?) 밀레니얼 세대가 되어야겠다. 적어도 오늘날 마케팅 다이내믹스를 만들어내는 주인공, 밀레니얼 세대를 파악하고 소통할 줄 아는 역량 있는 마케터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마케팅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 (요약)
1. "Brand-friendly" : 브랜드에 친숙한 세대
2. "Practical mindset" : 허세보단 합리성, 실용성을 중시하는 세대
3. "Entertainment experience" : 편리성보단, 즐거움을 찾는 세대
4. "Social-value pursuit" :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을 참여하길 원하는 세대
* 현재 <일상에서 발견하는 마케팅 모먼트> 브런치북 내용은 디아이매거진 과 디지털 인사이트(Digital Insight) 페이스북 채널에도 연재 중입니다.
* 더 많은 이슬아 작가의 글을 보려면 [구독하기]를 꾸욱 눌러주세요.
* 작가의 생각과 글에 대한 무단 도용은 저작권 위법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