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마케팅 교육 행사에 참여하여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강연 후 현장 스케치 영상에 필요한 인터뷰 질문이 '마케터를 어떻게 정의하냐'는 것이었다. 부끄럽게도 한 번도 깊이 고민해본 적이 없던 터라 당황스러웠다. 그 당시 순발력을 발휘해 짧게 대답하고 넘어갔더랬다. 강의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 안 - 가을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이었는데 빗소리와 함께 마음을 가라앉힌 후 마케터에 대한 정의를 머릿속에 내려나갔다. 마치 시간을 돌려 인터뷰하는 그 장소로 돌아갈 수 있을 것처럼.
다시금 누군가 나에게 마케터를 한마디로 정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마케터는 서퍼(Surfer)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마케팅에도 큰 흐름, 물결이 있는데 내 앞으로 다가오는 크고 작은 물결을 타며 그 안에서 중심을 잡으며 자신만의 물길을 내는 전문가 말이다. 물결은 그 마케터가 속한 사회의 시대상, 소비자의 특성으로 하여금 쉴 새 없이 만들어진다. 물길을 잘못 타서 설령 떨어지더라도 괜찮다. 다시 보드 위로 올라가 다시금 무게중심을 잡고 끊임없이 다가오는 새로운 물결을 타면 그만이니까. 오히려 많이 떨어져 본 서퍼가 파도를 탈 때 더 여유 있는 법이니까.
중요한 건, 중심을 잃지 않고 파도를 이리저리 타며 자신만의 물길을 만들어 나아가는 것이다.
<일상에서 발견하는 마케팅 이야기> 매거진을 통해 마케팅스러운 생각들을 하나씩 단편적으로 그려나가는 것도 좋지만 좀 더 앞단에서, 그 변화를 일으키는 배경을 한번 정리하고 넘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마치 서퍼가 파도 한 줄기 한 줄기를 보기도 하지만 저 멀리 파도를 만들어 내는 바람을 이해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 글은 마케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사회와 시대적 동인을 하나씩 짚어보는 이야기로 준비해보았다. 또한 그 변화의 중심이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전제 또한 말씀드린다. 이는 내가 속한 세대를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케팅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야기할 때 소비자의 특성, 그 소비자가 처한 사회의 현상을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마케팅을 하는 시공간이 바로 그 마케터가 속한 사회이자, 마케팅이 대상이 그 사회를 살아가는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대와 사람이 변했기 때문에 마케팅이 변화하는 것일까? 아니면 마케팅이 새롭게 변화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그에 상응하여 변화하는 것일까?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문제처럼 마케팅이 먼저인지, 시대상이 먼저인지를 두고 싸우는 과정이 내 안에 존재한다.
이전 글들을 통해 마케팅 패러다임의 변화를 일으킨 사례들을 다루면서 수레바퀴처럼 맞물려서 이야기되는 것이 바로 '소비자의 가치관, 성향의 변화'다. 그렇다면 마케팅에서 소비자의 변화란 무슨 의미일까? 두 가지 종류의 소비자의 변화를 말한다. 첫째로, 자신의 브랜드가 타겟으로 하는 연령대는 고정되어 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비자가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프리미엄으로 포지셔닝하는 코스메틱 브랜드의 메인 타겟 소비자가 2535 여성이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이 타겟으로 하는 소비자층이 달라진다. 임산부를 타겟으로 제품이나 서비스의 경우 이러한 변화는 더 다이내믹해진다. 일생에 한두 번 맞이하는 임신이라는 라이프 모먼트(Life Moment)를 가진 소비자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브랜드가 인기 있었던 시대 및 해당 세대의 소비자의 연령대가 노후화되는 경우다. 관련하여 훌륭한 사례가 바로 이탈리아 스포츠 브랜드 휠라(FILA)다. 1990년대 사랑을 받았던 휠라는 점차 타겟 소비자 세그먼트가 나이를 먹음에 따라 브랜드 노후화가 발생했다. 그러나 지금 휠라는 대한민국에서 1020대를 중심으로 브랜드 리뉴얼에 완벽하게 성공했다. 모나미의 경우도 두 번째 케이스에 해당한다. '국민볼펜'으로 사랑받았던 모나미 역시 시대가 지남에 따라 브랜드를 선호하는 연령대가 노후화되었다. 모나미 역시 1020대를 대상으로 한 브랜드 리뉴얼 전략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사회의 변혁을 이야기할 때 해당 사회에 살아가는 젊은 세대를 제외하고 이야기하기가 어렵듯, 마케팅의 변화를 이야기할 때 그 사회의 젊은 소비자를 제외하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들은 유행을 만들어내고 선도하며, 새로운 변화를 일으켜 기존의 가치를 변형시키거나 무너뜨리는 힘을 가진 세대이기 때문이다. 연초마다 비즈니스·마케팅에서 발간하는 컨슈머리포트의 대부분이 밀레니얼 세대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참고로 밀레니얼 세대란 198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세대를 가리킨다.
마케팅의 패러다임을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세대는 그 사회의 젊은 층이다.
아침에 일어나 센카 폼클렌징으로 세수를 했다. 기초화장 후 지난주에 인터넷으로 구입한 3CE 쉐도우로 아이 메이크업까지 완성! 학교 등교 길, 에어팟을 귀에 꽂은 채 음악을 들으며 교실에 도착했다. 팀 과제가 있어 카카오톡을 열어 그룹채팅방을 만들었다. 모든 과제는 구글 드라이브를 사용해서 진행한다. 점심을 먹은 후 학교 근처 스타벅스 카페에서 책도 보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 팔로잉하는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메이크업 영상을 시청한다. 집에 도착하기 20분 전 배달의 민족에서 치킨을 시켰다. 저녁식사 후 취침 준비 중, 얼굴에 바른 러시 팩을 씻어내고 온라인으로 구매한 바디럽 베개를 베고 누웠다.
밀레니얼 세대 스물네 살 여성의 하루 일과를 그려보았다. 충분히 있을법한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다. 말 그대로 브랜드와 먹고 자고 노는 삶의 모습이다. 마치 모든 행동이 이 브랜드에서 저 브랜드로 옮겨가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들은 갓난아이였을 때부터 브랜드 - 좀 더 정확하게 부모님이 선호하는 - 를 경험하며 소비하며 자라온 세대이다. 밀레니얼 세대의 삶에서 브랜드를 제외하고 하루 일과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마도 어려울 것 같다.
물론 특정 브랜드를 선호하거나, 명품 브랜드와 같이 선망의 브랜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2030대 소비자가 브랜드에 갖는 인식과 4050대 그 이상의 기성세대가 갖고 있는 그것은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밀레니얼 세대에게 브랜드란, 자신의 삶에 도움을 주거나 즐거움을 주는 '도구'이자 '일상의 부분'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브랜드는 그들에게 삶을 영위하는 유용한 수단이자 재미있는 친구이며, 일상 속 평범한 조각으로 자리한다. 이는 이전 세대들이 가진 브랜드에 대한 생각 - 자신의 신분과 위상, 아이덴티티를 반영하는 브랜드라는 생각과는 거리가 있다.
따라서 밀레니얼 세대에게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하고 소비하는 것은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일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성향이 가장 크게 발현된 디지털 마케팅 채널이 바로 '인플로언서'다. 새로 나온 제품을 구매해보고 제품을 직접 써보면서 느끼는 생각과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출, 서로 공유하며 좋은 제품은 서로 추천한다. 그들에게 이러한 활동은 '일'이 아니라 삶의 일부이고 즐거운 놀이이자 취미생활이다. 꾸준히 활동을 하다 보면 점점 자신만의 전문영역과 컨셉이 형성되고, 자신만의 커넥션과 더 나아가 팬덤을 형성한다. 그들의 활동은 축적되어 강력한 콘텐츠로 변환되며 어느 순간 그들의 계정은 하나의 1인 매체(Media)로서 급부상하게 된다. 어쩌면 모두가 인플로언서라고 여겨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세대다.
마케터 관점에서 인플로언서를 활용한 마케팅이란, 1인 매체로서 힘을 가진 인플로언서를 활용하여 자신의 브랜드나 제품을 홍보하는 마케팅을 말한다. 화장품·패션·전자기계 등 특정 영역에서 지속적인 콘텐츠를 축적하여 전문성과 팬층을 확보한 인플로언서는 하나의 1인 매체가 되어, 소비자의 관점에서 마케터로부터 의뢰받은 제품을 솔직하고 긍정적인 보이스를 만드는 중심점으로 작용한다. 이로써 팔로워들이 해당 제품을 접하게 되고 긍정적인 시선을 갖게 되며, 궁극적으로 제품을 구매하는 액션(마케팅효과)까지 발생한다. 이러한 채널력으로 인해 유명한 메가 인플로언서들의 경우, 자신의 브랜드를 직접 런칭해서 제품을 생산, 유통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기존의 마케팅채널과 유통채널이 생산자에 속해 있어 소비자가 접근할 수 없었던 경계와 체계를 철저히 파괴한다.
우리는 어쩌면 마케터의 목소리보다 소수의, 힘을 가진 소비자의 목소리가 더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브랜드에 대해 끊임없이 생성되는 소비자의 의견을 관리하고 대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복잡성(Comflexity)이 브랜드가 가져야 할 정직성과 투명성 등 가장 핵심적인 가치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자, 여기서 독자 여러분들께 퀴즈. 위 사진은 어떤 행사일까? 오늘날 밀레니얼 세대가 브랜드에 친숙하다는 것은 앞서서 이야기했으니 휠라(FILA)의 행사라는 것까지는 힌트를 줄 수 있겠다. 바로 휠라와 '우왁굳'의 콜라보레이션 제품이 런칭하는 매장 앞 전경이다. 전날부터 노숙을 하며 제품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 콜라보레이션은 런칭하자마자 15분 만에 완판 되고 2차 '콜라보'까지도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고 하니, 제품을 구하려는 사람들의 바이럴 효과와 발생한 기사의 양 등을 고려해보았을 때 마케터로서 성공한 콜라보레이션이다.
그렇다면 휠라가 콜라보레이션 했던 '우왁굳'은 누굴까? 게임방송을 하는 스트리머다. 아마 휠라가 우왁굳에게 선제안한 콜라보레이션이었을 것이다. (우왁굳 팬들은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일반 사람들이 보았을 때) 우왁굳 캐릭터가 이쁘기 때문에 휠라가 콜라보레이션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우왁굳을 사랑하는 10대20대 초반의 팬층을 타겟으로 휠라를 알리려는 목적이 크다. 이 스트리머, 캐릭터가 가진 B급감성과 톡톡 튀는 개성을 휠라라는 다소 딱딱한 브랜드 레거시*에 입히려는 노력도 있었을 것이다. 우왁굳의 팬들에게는 자신이 좋아하는 스트리머의 굿즈(Goods)* - 무려 휠라(FILA)와 콜라보레이션 - 를 구매할 수 있는 이벤트 자체가 즐거운 축제다.
* 레거시(Legacy) : 정보기술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프로그래밍 언어, 플랫폼 그리고 기술 등에 있어, 과거로 부터 물려 내려온 것들을 의미한다. 마케팅에서는 특정 브랜드가 과거로부터 쌓아온 브랜드에 대한 컨셉, 스토리 등을 의미한다.
* 굿즈(Goods) : 그대로 해석하면 '상품'이란 뜻이지만 최근 문화 장르 팬덤계에서 자신이 좋아하거나 기억하고 싶은 콘텐츠가 담긴 상품은 모두 굿즈라는 개념으로 재정립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브랜드를 좋아하는 성향에도 밀레니얼 세대와 기성세대 간 차이가 존재함을 발견할 수 있다. 기성세대에게 브랜드는 나에게 더 높은 우월성을 부여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명품 브랜드를 좋아하고 입었을 때 내가 남들보다 우월해 보이는 느낌을 갖기 위해 브랜드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브랜드란 자신이 '추구하는' 아이덴티티를 반영하고 있다. 브랜드에 계급성(Hierchy)이 존재하며, 미래지향적이다. 한편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브랜드란 '개취(개인의 취향)'의 성격이 더 강하다. 특정 브랜드를 좋아하는 것은 자신의 개성과 취향을 표현하기 적절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계급(Hierchy)의 속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수많은 옵션 중 내가 좋아하는 하나를 선택하는 개념이다. 그렇기에 브랜드는 현재진행형이자 수평적 구조를 갖는다.
이러한 브랜드에 대한 개념은 실용성을 더 중시하는 소비패턴으로 연결된다. 좋은 제품이라면 명품 브랜드뿐만 아니라 '저렴이'라고 불리는 중저가 브랜드를 소비하는데 적극적이다. 인지도가 제로인 브랜드를 경험하는데 주저함이 없으며 이를 즐거운 놀이로 여긴다. 이러한 소비자의 성향은 새로운 브랜드와 제품을 출시하는데 좋은 기회로 작용하고 있으며 핵심 성공요인은 인지도 제로라는 장애물을 뛰어넘는 높은 실용성과 가성비, 좋은 제품력이 중심이 된다.
이러한 밀레니얼 세대의 실용적인 소비성향을 잘 활용하고 있는 마케팅 사례가 있다면? 바로 다이소를 하나의 좋은 사례로 꼽고 싶다. 다이소는 경제력이 낮은 밀레니얼 세대들에겐 놀이터와 같은 곳이자 그들의 삶의 많은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다이소 역시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밀레니얼 세대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과 프로모션을 진행 중이다.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밀레니얼 세대의 또 다른 두 가지 성향을 고찰하면서 관련 마케팅 사례를 함께 들여다보자.
* 현재 <일상에서 발견하는 마케팅 모먼트> 브런치북 내용은 디아이매거진 과 디지털 인사이트(Digital Insight) 페이스북 채널에도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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