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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성 Jul 19. 2018

보통과 조금 다른 삶 #2

프로 혼밥러 여기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일주일 동안 스물한 끼를 먹는다. 야식을 즐기는 사람은 네다섯 끼를 더 먹고,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은 덜 먹기도 한다. 나는 평균을 지향하는 사람이라 스물한 끼를 꼬박 챙겨 먹는 편인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날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다.  


‘일주일 동안 혼자서 몇 번 정도 먹지?' 


몇 주 동안 꾸준히 캘린더에 기록해본 결과, 평균 열일곱 끼를 혼자 먹고 있었다. 이른바 프로 혼밥러였다. 평상시에도 홀로 보내는 시간을 피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이렇게까지 많을 줄은 몰랐다. 책바를 시작하고 독립까지 하면서 빈도가 절대적으로 늘어난 셈이다. 



독립한 지 일주일 뒤 모습. 이 때는 무려 스테이크에 샐러리를 곁들여 먹었다.



아침은 거의 백 퍼센트 확률로 혼자 먹는다. 독립을 시작하기 전에는 이런 예상을 했었다. 그 누구보다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할 수 있으니, 종종 써니 사이드업으로 계란 프라이를 하고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여가며 예쁘게 플레이팅 해서 먹을 것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전자레인지로 데운 즉석 밥에 김치 그리고 김이었다. 독립을 시작하자마자 몇 주 예쁘게 해서 먹은 뒤 청소의 귀찮음을 심각하게 깨닫곤 효율의 극대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사실 요리는 재미있는 점이 있는데 설거지가 너무 귀찮다. 안 그래도 책바를 하면서 매일같이 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플레이트를 하나 장만해서 밥과 반찬을 한꺼번에 담아 먹고 한 번의 쓱싹거림으로 설거지를 마친다. 최대한 신속하고 깔끔하게. 



신문을 읽으며 식사를 하면 어느 식당에 가든 한 번에 기억해준다.



원래 혼자 식사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은 예능을 보는 것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무한도전을 10년 가까이 챙겨봤고, (세상에서 제일 웃기다고 생각하는) 라디오 스타나 나영석 피디의 방송들을 종종 보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예능 대신 신문과 함께 한다. 어느 순간, 신문이 더 재밌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별게 아니다. 예능보다 신문이 재밌어질 때가 오는 것이다! 또한 예능을 보고 난 후 느끼곤 했던 막연한 허무함을 신문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스스로도 이런 변화에 새삼 놀랐다. 특히 점심을 먹으러 나갈 때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면 아직도 어색하다. 야구 모자에 후줄근한 츄리닝을 입고 슬리퍼를 신은 채 옆구리에 신문을 끼고 있는 모습은 그저 백수 한량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차피 현재 집도 그렇고 앞으로 살게 될 집에도 TV를 둘 생각은 없기에 예능을 보지 않는 환경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집에서 어떤 영상 콘텐츠를 꼭 보고 싶다면 노트북과 빔이 있으니 굳이 TV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없다. 



지난 주말은 갤러리아 백화점 고메 494에서 커플과 가족 사이에 껴서 혼밥을 했다.



종종 외로움을 느낄 때는 토요일 저녁이다. 사람들은 보통 토요일 저녁에 가장 신경 써서 차려입고 누군가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나 역시 회사에 다녔을 때는 그랬다. 그런데 책바를 하면서 상황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한껏 멋 부린 사람들의 틈에 앉아, 가장 일하기 편한 옷을 입고 혼자서 단출한 음식을 먹는다. 비빔밥과 된장찌개가 일반적이고 가끔 기분을 내고 싶으면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품인) 돈가스를 먹기도 한다. 어떤 공간이든 주말에 가장 붐비기 마련인데 책바 역시 토요일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만약 컨디션이 조금이라도 좋지 않으면 손님을 대하거나 술을 만들 때 자연스레 그 기운이 전달되기 때문에 온전히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컨디션으로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일부러 약속도 잡지 않고 소화가 잘되는 음식을 찾는 것이다. 비록 조금은 외로울 때도 있고 허기가 빨리 느껴지는 음식을 먹는 것이지만 일을 가장 잘할 수 있으면 그걸로 만족한다.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잔소리 중 하나는 ‘밥을 꼭꼭 씹어 먹어라’였다. 성격이 원체 급해서 밥을 씹는 둥 마는 둥 서둘러 먹은 뒤 만화를 보거나 놀이터로 달려 나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점차 소화기관이 식사 속도를 견디지 못하게 됐다. 급하게 먹으면 체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최소 다섯 번을 씹고 삼키는 등 나름대로 노력하면서 천천히 먹고자 했다. 하지만 학생과 직장인이 돼도 속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회사에 다닐 때는 열 명이 넘는 팀이 함께 먹곤 했는데 어쩜 말씀을 쉬지 않고 하면서도 빨리 잡수시던지, 오로지 씹는 것에만 집중해도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었다. 그리고 왜 암묵적으로 꼭 같이 일어나야만 했던 것인지는 아직도 궁금하다. 요즘은 어떻냐고? 내가 십 분 동안 밥을 삼키듯이 먹든, 한 시간 동안 밥알 하나를 천 번 씹어 먹든 아무런 상관이 없어졌다. 덕분에 오래 씹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맛을 되찾게 됐다. 


하지만 혼밥을 자주 하면서 가장 크게 깨달은 점은 (드물게 주어지는) 함께 하는 식사의 소중함이다. 함께 먹는 상황이 당연한 사람들은 쉽사리 알지 못할 것이다. 혼자 먹는 시간이 얼마나 운치 있고, 함께 먹으며 대화하는 시간은 또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항상 당연한 것으로 보이지만 당연해지지 않는 때가 언젠가는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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