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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성 May 29. 2018

보통과 조금 다른 삶 #1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때로는 제목만으로 취향을 저격하는 노래들이 있다. 그런 노래들은 대개 제목이 길거나 구체적이어서 읽는 순간 감정 이입이 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대표적인 노래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와 가을방학의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 질 때가 있어’. 특히 '서른 즈음에’는 서른이라는 단어만 읽어도 뭔가 울적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제목이다. 신기하게도 삼십 대에 진입하는 순간 그 울적한 힘은 사라지지만.   


 

우린 오늘 아무 일도 없겠지만



최근 몇 년 간의 내 상황을 표현하는 노래는 코나의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다. 사실 가사를 보면 상황과 전혀 관련이 없다. 어떻게든 뜨거운 밤을 보내기 위해 상대방을 살살 구슬리는 내용이니까. 그런데 제목만 읽어도 괜스레 마음이 끌린다. 그 누구보다도 긴 밤을 지새우며 살고 있고, 낮과 밤이 바뀐 삶을 산다는 것은 익숙하면서도 때로는 생경한 느낌을 주는 매력이 있다. 


못 믿는 사람도 있겠지만, 회사에 다녔을 때는 철저히 새벽형 인간이었다. 아침 운동을 좋아해서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 여섯 시 반 즈음 회사에 도착하곤 했다. 그렇게 운동을 한 시간 정도 하고 사내 식당에서 아침 먹는 습관을 좋아했다. 매일 건강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당연히 잠은 열두 시 전에 잤다. 심지어 학부 시절 시험 기간에도 공부량과 상관없이 아무리 늦어도 세시 전에는 잠들곤 했다. 물론 학점을 잘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잠도 그만큼 소중했으니까. 그렇게 평생 살 줄 알았다.  


어느 주말의 퇴근 시각, 샤워를 하고 나오니 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책바를 운영하면서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평일 마감이 새벽 한 시 반이기 때문에 아무리 빨라도 세시에 자고 아홉 시 반에서 열 시에 일어난다. 주말에는 무려 네시가 넘어 잠들기도 한다. 다들 묻는다. 생활 리듬이 무너지지 않았냐고. 건강 관리는 문제없냐고. 간단명료하게 답하자면 그다지 지장이 없다. 사람은 적응의 생물이라던데, 나도 이렇게 완벽하게 적응할 줄은 몰랐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삶에는 예전보다 길어진 하루를 자유롭게 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회사를 다녔을 때는 하루가 지극히 짧았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 여덟 시 즈음 퇴근하면 주어진 자유시간은 두세 시간뿐이었다. 심지어 회식을 하는 날이면 자유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아침 열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자유롭다. 물론 사업을 하기 때문에 이 시간 동안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은 일이다. 웬만한 직장인은 비교도 안될 정도로 많은 일을 한다. 공간의 매력을 꾸준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일들이 정말 많다. 하지만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시각에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효과와 효율적인 측면에서 모두 좋다. 일하다가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식사하고, 놀고 싶으면 논다. 허투루 소모되는 시간이 거의 없다. 


또한 회사에 다니면서 아쉬웠던 점이 낮잠을 마음껏 잘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식곤증이 있는 사람은 식사 후에 잠깐이라도 자야 한다. 그래야 집중해서 일할 수 있다. 하지만 도무지 그럴 수 없는 환경이었고, 화장실 변기에 앉아 고개를 수그리고 쪽잠을 자는 것이 일상이었다. 회사에서는 변기에 앉아 자는 사람에게 임원이 물을 뿌렸다는 풍문이 들리기도 했다. 그래서 자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가수면 상태에서 수시로 '음-! 음-!' 하고 소리를 내기도 했다. (노력이 통했는지, 물을 맞아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지금 생활에 단점들도 꽤 많다. 지인들과 반대의 삶을 살기 때문에 마치 재입대를 하듯 인간관계가 정리됐다. 아니, 대부분 멀어졌고 몇몇 소중한 친구들만 남았다. 결혼식도 거의 가지 못한다. 토요일 낮에 열리는 결혼은 몇 차례 갔다가, 웬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닌 이상 가지 않게 됐다. 결혼식이라는 행사 자체가 기가 빨리는 경향이 있고, 그러다 보면 가장 바쁜 토요일 업무에 지장이 간다. 조금만 피곤해도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드라마틱하게 달라진다. 식사도 대부분 혼자서 한다. 보통 일주일에 스물 한 끼를 먹는다고 보면, 대략 열일곱 끼니를 혼자서 먹는다. 혼자 먹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누군가와 먹게 될 때 나도 모르게 혼자 먹는 것처럼 행동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얼마 전에 찍곤 너무 좋아서 환호성을 질렀던 사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유롭게 전시와 영화를 볼 수 있고 맛집을 줄 서지 않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자유로운 낮을 보낼 수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다. 만원 버스 걱정 없이 출퇴근하는 것도 큰 행복이고.


무엇보다도 밤이 아름다운 것은 얼마 주어지지 않는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두 번 자유로운 밤을 보낼 수 있는데, 하늘에 떠 있는 별과 달만 봐도 행복하다. 물론 책바에서 보내는 시간도 못지않게 아름답다. 좋아하는 재즈 음악을 마음껏 들으며, 여유로울 때는 책을 읽고 바쁠 때는 술과 책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는 직업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책바에서 일할 때는 일하는 나름의 낭만이 있고 휴일일 때는 희소성의 가치가 있으니, 어쨌든 내가 보내는 밤은 그 누구의 밤보다 꽤나 아름다운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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