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roy about coincidence #2
그렇게 시간이 지나 어느 날, 날이 아직 무덥던 날, 나는 그녀를 우연히 보았다.
내가 버스에 오른 순간 그녀는 버스 창 밖에 기대앉아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눈이 마주치진 않았다. 나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앉았다. [그런데 뭐라고? 다행이라고?]
그때부터 나는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했고 눈은 책을 향해 있었지만 머리는 갖가지 경우의 수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너무나도 자동적이어서 나의 눈이, 심장이, 뇌가 그저 이 일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나는 온몸으로 그것에 저항했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될 수 없다. 우연히 만나면 서로 인사하자던 그녀의 마지막 말은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서로 눈치는 채고 있지만 입 밖으로 내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긴장상태를 완화하자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발발하지 않은 전쟁에 대비해 미리 평화협정을 갖자는 말이다.
약자에게 평화협정이란 영원한 침묵을 의미한다. 현재의 역학관계를 고착하고 다시는 어떠한 긴장상태도 만들지 말라는 명령이다. 그래서 오직 두 가지 선택지만이 강제된다. 저항하느냐 침묵하느냐. 그리고 나는 저항만이 내 진심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우연이 다리를 놓아줘도 나는 그것에 저항해야만 한다.
애매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사이가 되느니 나는 다시 철저한 타인이 되겠다.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할 무렵, 나는 수십 가지 경우의 수중 하나를 선택했다. 그녀를 못 본 체 하는 것.
밀란 쿤데라는 사랑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선의와 자비에 자신을 내던지고 싶다는 욕구였다. 마치 포로가 되려면 먼저 자신의 모든 무기를 내던져야 하는 군인처럼 타인에게 자신을 방기 하고자 하는 욕구.
나 역시 나 자신을 버리고 모든 것에 대한 그녀의 처분만 기다리고 싶은 격렬한 충동이 일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만큼 매력 없는 것은 없다.
다시 무기를 들자. 저항하자. 그럼으로써 다시 긴장상태를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