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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개의 인간 Jan 18. 2023

김국

김이 나지 않는 김국

몸이라는 게 참 신기할 정도로 놀랍다. 먹는 대로 반응을 한다. 날씨가 추워지면 몸에 열을 낼 수 있는 식단으로 변화를 준다. 냉기는 덜고 김이 나는 것들로 식단을 꾸린다. 기름진 고기와 같은 무게 있는 요리는 가급적 최소화하고 주로 제철 맞은 채소와 과일로 장을 보고, 두부와 함께 볶고 끓여내는 방식으로 요리를 한다. 나는 이것을 겨울나기 차림상이라고 부른다.


겨울나기 차림상은 조리과정에서 손이 많이 타면 안 된다는 원칙이 있다. 이 원칙은 밥은 해 먹어야 하지만 밥 하기가 귀찮은 내가 스스로 정한 규칙이다. 여름에는 야채를 차갑게 생으로 먹을 수 있으니 딱히 조리과정이랄 것도 없지만 가을 겨울이 되면 원칙 안에서 이루어지는 조리과정 덕에 메뉴는 단조롭고 심심해진다. 상에 기교를 부릴 수 있는 것이라곤 본 재료의 천연색을 고루고루 식단에 넣는 일뿐이다.


나의 단맛은 배추와 시금치, 무, 김이 가진 단맛이 기준이다. 어렸을 적부터 그랬다. 친구들이 과자나 초콜릿을 먹고 있을 때 나는 여름에는 오이와 방울토마토를 겨울에는 무와 배추를 씹어먹었다. 집에 있는 날엔 심심하면 나와서 식탁에 묶음으로 있는 김 한 장을 들고 들어가 야금야금 뜯어먹다 다 먹으면 또 나와서 한 장 두 장 들고 들어가 뜯어먹기를 반복했다.


지금도 매년 겨울이 되면 김을 찾는다. 집 생활이 길어지고 배가 출출할 것을 대비해 김집에 간다. 가서 맛보기로 한 장 쥐어주면 먹고 최소 두 종류를 골라 각각 한 묶음씩 사 온다. 보통 내가 즐겨 먹는 김은 재래김과 곱창김이 있다. 재래김은 부드럽고 향이 짙다. 식감이 거칠지 않아 간식시간에 막김으로 먹기도 좋고 김국을 해 먹어도 좋다.


김국이라면 보통 굴을 넣고 끓이는 것을 떠올리지만 나는 냉국으로 먹는 것을 좋아한다. 김 4-5장 구워서 보리차에 잘게 부숴 넣고 고춧가루 수저 끝으로 살짝 넣어 소금으로 간을 맞춘 후 볶음 통깨를 뿌리고 휘휘 저어 흰쌀밥과 같이 먹는다. 흰쌀밥 반공기를 김국에 말아 김치 혹은 살짝 절인 오이지를 양념해 얹어 먹으면 입맛 없을 때 최고다. 밥은 꼭 반공기만 넣어야 한다. 밥을 많이 넣게 되면 밥이 수분을 빨리 흡수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죽처럼 밥이 퍼진다.


곱창김은 재래김의 일종으로 원초가 곱창처럼 엮여 있어서 재래김에 비해 식감이 거칠지만 씹을수록 단맛이 난다. 그래서 주로 나물밥과 함께 간장을 살짝 곁들여 풍족한 한 끼를 채운다. 나물밥을 지어먹으면 부드러운 나물이 곱창김에 거친 식감과 잘 어울린다. 곱창김에 간이 되어 있어서 간장은 필요하다면 살짝만 얹는다. 김을 보관해 놨다가 달래가 나오기 시작하면 된장국을 끓이고 남은 것으로 달래장을 만들어 상을 차리는 것도 좋다.


또한 곱창김은 1년 중 20여 일 정도 약 3주 동안만 생산이 되는 김으로 이때를 놓치면 맛보기가 힘들어서 귀하신 몸 맞이하러 매월 11월 초가 되면 부리나케 김집으로 달려간다. 김집에 가면 간혹 결이 비슷한 돌김과 곱창김을 혼동하시는 분들을 볼 수 있는데, 곱창김은 돌김보다 구멍이 크다. 고를 때 참고하면 좋다.


이외 김을 맛있게 먹는 방법은 김을 깔고 흰쌀밥을 넓게 펴서 묵은 김치를 씻어 참기름으로 조물조물 윤기를 입히고 돌돌 말아 김치김밥을 만들어 먹는다. 여기서 중요한 건 묵은 김치에 간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밥에 간을 따로 하지 않는 것이지만 입맛은 다 다르니 개인의 기호에 맞춰 간을 하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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