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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개의 인간 Jan 06. 2023

양배추 쌈밥

양질의 배추 양배추

해가 바뀌었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5년 동안 이어진 나의 새해맞이 한 줄 소감이다. 20대가 저물고 많지도 적지도 않은 고작 해봐야 모호한 30대로 걸음을 옮긴 해부터 체감이 명확한 건 내 몸이 나의 실제 나이보다 5년을 앞서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예상하는 5년 보다 더 앞서 나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체력저하는 이제 불평 축에도 끼지 않는다. 저하 기능에 가속도가 붙은 이후로 빠르게 추락 중이다. 비해 면역은 균형 잡힌 식습관의 도움을 받아 상승곡선을 달리는 중이었지만 단 하루의 일탈로 하락세를 타고 말았다. 


12월의 마지막 날, 아침 점심 저녁 코스로 한동안 이유 없이 줄였던 음주와 함께 과식이 이어졌다. 하루의 일탈로 마감할 줄 알았던 나의 배포는 생각만큼 이나 쓸모 있진 않았다. 다음날 아침, 무지성으로 계획한 과식으로 인해 나의 위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몸안에서는 전과는 차원이 다른 괴성이 들리는 듯했다. 1-2시간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위와 장에게 화해를 요청했지만 한번 돌아선 이들을 제자리로 돌이키는 건 쉽지 않았다.


이들의 저항에 굴하지 않고 힘겹게 씨름을 한 결과 결국 평온을 되찾았다. 이때 탄산과 이온음료 같은 즉각적인 당분이 부리는 유혹은 뿌리치기 힘들다. 하지만 난 버거울 만큼 쓰린 속에 기름을 붓는 행위는 하고 싶지 않았기에 방바닥을 가로질러 기어가 냉장고로 가서 야채칸을 열었다. 


몸이 음식을 거부할 때는 액체로 된 주스나, 즙으로 식을 대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와 같은 식습관은 속은 편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공복감이 심하게 오고 충분하지 않았던 영양소를 채우느라 다시 과식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나는 조금은 힘겹더라도 음식을 씹는 과정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한다. 이럴 때 내 몸에 좋은 음식은 양배추다. 양배추는 샐러드로도 먹고, 염증제거에 삶은 물을 활용하기도 하고, 볶아서, 쪄서 쌈으로 먹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요리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양배추로 식단을 짤 때는 증기로 쪄서 그 위에 현미 콩밥과 두부쌈장을 올려 쌈밥으로 먹는 게 가장 편하다. 다른 국과 반찬이 없어도 한 끼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쉽고 빠르고 영양가도 있어서 몸 안에서 임계점을 찍고 겉으로 올라온 염증을 가라앉힐 때는 이만한 게 없다. 식후 번거로운 설거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없다. 


곁들임으로는 양배추 샐러드를 주로 먹는다. 양배추를 가늘게 채 썰어 각자의 기호에 맞게 참깨소스와 유자소스를 뿌려먹어도 좋지만 먹고 난 후에 입에 남는 단맛이 개운하지 않아서 소금으로 3분 정도 절이고 두 손을 포개어 꾹 짠 다음 식초를 한 두방을 떨어트려 조물조물해서 먹는다. 양배추는 씹을수록 단맛이 올라오기 때문에 최대한 인공적인 단맛을 최소화하려고 한다. 그래도 좀 더 자극적인 맛을 원한다면, 채 썬 양배추에 올리브유를 듬뿍 뿌리고 소금과 후추를 뿌려 간을 맞추고 향을 입힌다.


입맛에 따라 양배추가 가진 특유의 비린맛이 먹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는데, 이때는 올리브유와 굴소스를 소량 넣어 볶아서 먹으면 비린 맛이 덜하다. 또한 양배추 한 통 가격이 3천 원이 넘지 않아서 가격대비 양질의 식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시중에 유통되는 음식에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져 있다면 복합적인 간을 덜어낸 삼삼한 맛을 즐기기가 처음에는 어려울 수 있지만 먹다 보면 반대로 자극적인 맛이 부담스러워 멀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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