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연주

나도 로맨틱 연주를 하고 싶다

by 휴식

아이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워킹맘이라 아이의 비는 시간을 채우는, 보육의 용도로 피아노학원을 등록했다. 도레미를 배우고 뚱땅뚱땅 피아노 건반을 누르며 알아듣지도 못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계명을 배웠다며 집에서 나를 가르치는 모습에 피아노선생님의 모습이 투영되어 더 귀여웠다. 그렇게 1여년 시간이 지나고 양손치기도 할 수 있어 내가 아는 몇 몇 곡을 연주하는 등 이제는 피아노를 배웠다고 말해도 될 정도의 실력을 보이는 아이가 대견하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가급적 해주고 싶은 일은 다양한 것의 노출이었다. 세 자매의 둘째였던 나는 학원 노출이 아예 없었다. 언니는 피아노학원을, 동생은 미술학원을 다닐 때 나는 학원간 친구들이 마칠 때를 기다리며 딱지접기를 부지런히 했다. 학원이 끝난 친구들과 골목 어귀에서 딱지치기를 할때 단연 내 딱지가 대장이었다. 종일 공들여 접고, 혼자서 접은 딱지를 대결해보며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살아남은 1등 딱지를 막을 자는 없었다. 매일 언니나 동생, 친구들이 마치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가 그들과 함께 해가 질녘까지 동네 골목에서 노는 일이 그 시절 나의 반복되는 일상이자, 하루 중 제일 중요한 일정이었다.


피아노학원에 다녔던 언니는 한번씩 집에서 꽤나 멋진 피아노솜씨를 뽐내곤 했다. 그 시절 언니의 양손이 다른 건반을 부지런히 눌러대면 젓가락 행진곡, 엘리제를 위하여 등 어린시절에도 귀에 익숙한 곡들이 연주되는 것이 신기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긴 손가락을 가진 언니가 부러워 동경으로 바라보곤 했다. 언니는 초등학생임에도 158센치나 되는 교내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꼽힐 만큼 큰 키의 소유자였다. 무릇 키가 키면 손과 발도 크다하지 않았는가? 손이 큰 언니는 공도 한 손바닥으로 다 감쌀 수 있어 피구도 잘했고 길쭉길쭉 손가락 덕에 피아노도 곧잘 쳤다. 지금이야 피아노, 미술, 체육학원들이 저학년 필수 코스이지만, 그 당시 우리 아버지는 "학원은 바보들이나 가는 곳이야" 라는 이상한 교육관을 가지고 있어서 엄마는 감히 아버지에게 피아노학원 등록을 허락받지 못해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고, 엄마와 언니 둘만의 비밀로 피아노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던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나면 엄마는 언니와 같은 시간에 둘만 손 잡고 집을 나섰다. 나도 가겠다고 따라나서면 엄마는 돌아올때 핫도그를 사다주겠다며 나를 설득했고 둘이 나간 후 나는 그림을 그리거나 딱지를 접으며 엄마가 사올 핫도그를 기다렸다. 핫도그는 그 당시 나에게 최고의 간식이었고, 언니에 대한 궁금함과 모녀간의 소외감을 달래줄 최고의 음식이었다. 핫도그 약발이 옅어질때 쯤 아빠도 언니가 피아노를 친다는 걸 알았고 딸아이의 재능을 키워주고 싶어하는 엄마와 공부 잘하는 딸을 의사로 키우고 싶어하는 아빠의 대 격돌 끝에 결국 언니는 피아노학원을 당당히 다니게 되었다.


어린 나는 피아니스트 언니도 좋고, 의사인 언니도 좋을 것 같았다. 그때는 언니가 피아니스트나 의사 둘 중 하나는 되는 거 구나 하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고 나니 그 당시 우리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기대가 한도없이 높았음을 알 수 있었지만, 첫 아이가 보이는 약간의 재능이 어린 부모에게 얼마나 대견했을지 내 아이를 낳고 나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 피아노에 재능을 보였던 언니는 집안의 경제적 몰락을 후 찾아온 격심한 사춘기를 겪으며 피아노 열정이 사그라들었고, 입 댈거 없이 적당히 공부하는 무난한 아이로 자라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유튜브에서 피아노연주자의 손을 보면 아직도 피아노를 치던 언니의 긴 손가락의 자신있던 움직임이 기억난다.


육아를 하며 나를 위한 시간은 단 한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기에,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하는 시기를 기점으로 이전과는 다른 생활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얼굴을 들이밀기 시작했다. 나를 누르며 지낸지 오래라 하고싶은 일도, 할수 있는 일도 없었지만 다른 생활! 전과 다른 나!에 대한 욕망이 고개를 들기시작하면서 일상을 보내는 일이, 겨우 하루를 살고 있다는 생각으로 가득찼고, 힘들 일이 없었음에도 힘들었다. 아이를 통해 느꼈던 기쁨은 더이상 새로울 것도 없었고 감사함도 너무 뻔한 인사말같았다. 오로지 정확한 형체도 없으면서 막연히 전과 다른 나! 전보다 나은 나!로 살지 못하는 부족함과 허전함에만 집중했다.


주변의 엄마들은 자기가 귀찮더라도, 힘들더라도 자신을 누르고 아이에게 집중을 하는사람들이 대부분임에 비해 나는 아이보다는 나의 존재여부에 집중하려는 자체만으로도 내가 부족한 엄마로 느껴져 나에 대한 한심함, 좋은 엄마가 될수 없는 미안함에 쉬이 잠들지 못하는 밤들이 여러 날.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고루하고 이 곡이 저곡 같이 느껴지던 클래식이 나의 널뛰는 마음을 잡아주는 방편이 되어준 것이... 그것이 유일한 낙으로 자리잡으며 그때부터 집착적으로 클래식 곡들을 듣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곡을 듣기만 하였다. 나중에는 열정적으로 연주에 정신을 놓다시피 하는 연주자의 표정에, 최근에는 건반 위를 미친 속도로 움직여대는 손가락에 눈을 뗄수가 없었다. 소파에 누워 편하게 음악을 듣다가 자세를 고쳐 앉아 화면을 가득 채운 피아니스트의 가늘고 긴 손가락의 움직임에 집중하였다. 가늘다 못해 뼈마디가 그대로 드러나는 손가락은 그가 얼마나 섬세하고 예민한 감정으로 연주하는지 보여주는 듯했다. 나도 저렇게 피아노를 연주하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곡들을 나도 연주하고 싶다. 나도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랫만에 느껴지는 강한 욕망에 나는 아이가 다니는 피아노학원을 등록했다. 아이도 엄마가 함께 피아노를 배운다고 하니 자기도 나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겠다면 엄청 설레했다.


생애 처음으로 피아노를 접해본 나는 건반의 위치도 악보를 볼 줄도 모르는 어려움에 맞닥뜨렸다. 나는 좋아했던 지브리ost나 요즘 꽂혀서 매일 듣던 볼콤의 '우아한 유령', 영화 장화,홍련의 ost '되돌이킬수 없는 걸음' 같은 연주를 기대했던 나의 현실은 동요모음집이었다. 도레미 건반을 누르고 소리를 내고 솔솔라라솔솔미를 누르며 건반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치는 동안 나의 강렬 욕망은 빠르게 식었다. 재미없다고 느낀 다음부터는 학원이 가기 싫어졌다. 이미 지불한 학원비의 아까움은 내 시간이 더 소중하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합리화했다.


그런데 참 웃기다. 아이에게는 학원 빠지면 안된다. 습관이 중요하다. 학원 빠질 것면 차라리 관둬라. 이렇게 아이를 쪼아대놓고... 정작 나는 1학년 아이보다 버텨내는 힘이 약했다. 매일 아파트 입구 앞에 있는 피아노학원을 지나쳐 집으로 퇴근하며 "오늘까지만 쉬고 내일은 가야지" 라는 뻔한 핑계를 대며 결국 피아노학원을 마무리지었다. 학원에서 마주쳤던 아이들의 엄마들이, 나의 도전을 응원한다던 엄마들을 마주칠 때면 관뒀다는 진실을 입에 담기 부끄러워, 연말이라 회사가 바빠서 수업을 빼먹는다며 넉살 좋은 웃음으로 어색함을 대신한다.


상상속의 나는 슈베르트의 마왕을 연주하는 홍민수의 격렬한 전쟁같은 손움직임을 따라한다. 캐논을 연주하는 조성진의 부드러운 몸놀림에 나를 투영한다. 눈으로 건반을 누르는 나는 능숙하고 섬세한 감성을 가진 연주자이다. 현실은 곰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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