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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애 Mar 20. 2021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을 때 나를 믿으며 사는 법

KBS 다큐인사이트 '성여' (스포주의)

We need contents!
Live better with contents!
콘텐츠 없이 살 순 없겠더라고요. 즐거움도 있지만, 콘텐츠 덕분에 비로소 인생이 인생답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가득하니까요. 우리 삶에 콘텐츠가 필요한 이유, 콘텐츠로 우리 삶이 변하는 모습, 콘텐츠가 삶과 이어지는 방법,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윤성여님께서 무죄 판결을 받고 밖으로 나와서 짤막하게 기념사진을 찍을 때였다. 모든 시선은 윤성여님으로 향했다. 나 또한 감히 짐작할 수 없는, 그의 표정과 말이 궁금했다. 그때, 인간의 시야가 180도인 덕분이었을까, 그 중요한 순간에 내 눈에 들어온 건 그의 주변 사람들이었다. 박준영 변호사님은 안다. '재심' 변호사로 유명하신 분이자 윤성여님의 진실을 믿고 세상에 입증하기 위해 노력하신 분이다. 그런데 그 옆의 다른 사람들은 누굴까. 누구길래 이 순간에 윤성여님과 함께 하는 것일까. 그들은 윤성여님의 진실을 언제부터 믿어온 것일까. 그날, 아니 그전부터 윤성여님과 함께한 그들이 궁금했다.


"수녀님,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살인자라고 해요. 그런데 수녀님 한 분만 내가 살인자가 아니란 걸 믿어주시면 저는 소원이 없겠습니다." (KBS 다큐인사이트 <성여>)

"1,000명 중 한 명도 믿을 사람이 없지만 형님은 믿어 주셨잖아요. 그걸 절대 말로 다 헤아릴 수 없어요. 난 여태까지 형님 덕에 살아있는 거예요” (채널A <아이콘택트>)


그날 윤성여님 주변을 지킨 건, 나호견 수녀님과 박종덕 교도관님이었다. 두 분은 아무도 믿지 않는 윤성여님을 어떻게 믿고 응원할 수 있었을까?


나호견 수녀님 (KBS 다큐 인사이트 <성여>)
"내가 윤 씨한테 그랬다. ‘나는 너를 존경한다’고. 무죄라고 주장해도 전과자 살인자인데 희망이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살았는지. 나는 그렇게 못 산다. 하나님이 있긴 한 건가? 할 거다"

박종덕 교도관님 (채널A <아이콘택트>
“무기징역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성실한 그는 교도관 생활 중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수감자였고, 그런 그를 만난 저는 ‘행복한 교도관’이다.”


두 분의 믿음은 윤성여님이 가진 삶의 태도에서 비롯됐다. 그는 죄가 없지만 죄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시지프스가 떠올랐다. 시지프스는 신의 비밀을 누설했다는 이유로, 매일 큰 바위를 산 꼭대기까지 굴려야 했다. 힘겹게 정상에 올라가면 바위는 다시 떨어졌다. 시지프스는 바위 굴리기를 포기할 수도 있다. 아니면 그렇게 성실하지 않고,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대충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꾸준했다. 떨어질 걸 알면서도 올라갔다. 카뮈는 이를 두고, 부조리에 맞서는 인간의 저항 정신을 얘기했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은 신들을 향한 승리였다.


다큐인사이트 <성여>편은 윤성여님을 안타까움, 억울함, 호소하는 이로 다루지 않았다. 짓지도 않은 죄의 형벌을 받는 동안 그가 얼마나 성실하고, 진실되게 살았는지를 보여줬다. 부조리한 상황에서 윤성여님이 선택한 삶의 방식은 성실함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의 무죄를 믿는 사람들이 생겼다. 세상은 그를 참혹한 범죄자로 생각했지만, 그를 직접 곁에서 오랜 기간 봐온 사람들은 그가 누구보다 '존경스러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윤성여님은 자신을 믿었다. 죄가 없음을 믿은 건 당연하고, 인간 윤성여가 가진 성실함을 믿었다. 그는 재판에 앞서 무죄를 받으면 어떻겠냐는 질문에 "똑같아서 달라진 것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똑같다는 말은, 그는 예나 지금이나 성실하게 살아갈 것이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건 윤성여님께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자신의 모습인 것이다. 내가 나를 믿는다면, 국가, 경찰, 법원 등 세상이 아무리 나를 믿지 않아도 나는 나대로 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나를 믿으며 살아가고 있을까. 윤성여님이 겪은 크기만큼의 고통은 아니지만, 삶의 도처엔 부조리가 가득하다. 직장인보다 직장이 우선이길 바라는 세상, 출발선이 달라 아무리 쫓아가도 아득한 순간, 가진 게 없어 구겨진 자존심, 노력으로만 달성할 수 없는 결과물까지. 길지 않은 삶이지만 무수한 순간들이 떠오른다. 나는 이런 어찌할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가. 어쩌면 그저 세상에 당하지 않고 살겠다며 계속 소리치거나, 부조리를 정상이자 상식으로 여기며 허무함에 빠져 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끝이 어딘지 모를 결론 속에서, 나답게 살고 싶다.


윤성여님은 자신의 무죄가 언제 입증될 것이라고 생각하셨을까. 그 순간을 계속 기다리면서 사셨을까. 잘은 모르겠다. 30년 만에 무죄를 받았지만 여전히 '나의 삶은 똑같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건, 그 순간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나답게 산다는 태도로 기다린 건 아닐까?


이건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람의 안타까운 이야기 이전에, 부조리에 맞서 스스로를 믿고 살아간 사람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다. 시지프스가 매일 바위를 굴리며 산을 올라간 것처럼 우리는 부조리를 향해 나를 믿고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갈 필요가 있다. 그런 시지프스의 모습에 카뮈는 '행복할 수도 있다'라고까지 말했다. 윤성여님께 감히 행복을 말할 순 없지만, 우리는 그에게서 존경심과 강인함을 느낀다.


우리는 부조리한 삶 속에서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믿으며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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