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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 록 Mar 09. 2016

사계절을 맞은 파리 거리에서

아침 맑음 오전 비 내리다가 우박 그리고 함박눈으로 마무리 

파리에서 아침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남동생과 조식을 먹으러 갔다. 웬걸, 어제는 보이지 않았던 초코 스프레드와 버터, 요거트가 있다니. 나는 이 세 가지로 충분히 행복했다. 게다가 치즈라니, 아침만 먹어도 살 것 같다. 

빵 버터 요거트 우유 시리얼만 있으면 난 충분히 행복한 걸!
몽마르뜨 언덕에 올라가자

길거리에서 마주친 낯선 이라도 공통점을 발견해서 대화를 시작하는 게 어렵지 않은데 남동생이랑은 할 말이 없다. 조식을 먹는 데만 집중하다가 겨우 한마디 한다. 몽마르뜨에 가기로. 지난여름 파리에서 가장 좋았던 곳을 꼽으라면 난 주저 없이 몽마르뜨와 퐁피두센터를 고르겠다. 그중 하나인 몽마르뜨를 가보기로 한다. 다시 간 몽마르뜨는 이번에도 좋았다. 다만 저번에 만나지 못한 실 팔찌를 메주며 돈을 요구하는 흑인들을 만나 도망쳤지만 우리는 빨랐고 무리에게 잡히지 않았다. 날씨가 화창하고 하늘은 푸르러 기분이 좋아져 골목골목을 쏘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곤 배가 고파졌다.

몽마르뜨는 정말이지 최고.


지난여름 지수와 앉아서 한바탕 웃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동생이랑.


몽마르뜨 광장에는 그림 그리는 화가들이 많다

 

몽마르뜨 골목
파리에서 점심을

몽마르뜨에서 내려와 아무 식당에 들어갔다. 메뉴를 펼치니 프랑스어뿐이었다. 어쩌면 당연한데 글로벌한 도시에 기대하는 게 많아져서였을까, 어디를 돌아다녀도 영어는 항상 보여서 그랬을까, 당황한 나를 보고 당황했다. 어찌 되었든 영어가 없으니 프랑스어만 보고 메뉴를 골라야 한다. 복불복. 다행히 프랑스어에서 영어 단어를 유추할 수 있기에 고기 같아 보이는 거랑 생선 같아 보이는 걸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기까지 그게 뭔지는 정확히 모른다. 드디어 메뉴가 나오고 우리는 우리가 생각한 요리와는 전혀 다른 요리를 받았다. 그래도 요리가 나왔으니 먹어야지.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기회라 치고. 친구와 함께였더라면 대화를 하면서 먹고도 한참 앉아있었겠지만 남동생과 나는 먹자마자 나와서 무작정 걷기 시작한다. 딱히 힘들지도 그렇다고 힘이 넘치지도 않았지만 그냥 걷고 싶었다. 어쩌면 어색한 공기를 걸으면서 환기시키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걷고 걸어서 퐁피듀를 거쳐 Le Marais와 Les Halles를 지나갔다. 몽마르뜨와 함께 지난 파리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곳인 퐁피듀 센터를 지나면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바로 들어갈 수 있었던 저번과는 다르게 티비에 나온 어느 맛집처럼 길고 길었다. 맛집도 기다리는 법이 없는 내가 기다릴 리 없다. 깨끗하게 단념하고 걷다가 우연히 키코 매장을 발견하였다. 남동생은 여동생이 키코에서 유행하는 하트 립스틱을 사달라고 하였다며 들어가 보잔다. 그러나 여기는 파리. 한국 사람들이 여행으로 많이 오는 곳이다. 이미 다 팔리고 없다. 

몽마르뜨 언덕 아래 식당. 우리가 주문한 고기와 생선은 다른 형태로 있다, 저기에.
퐁피듀 센터와 키코 매장


에펠탑이 보이면 

그러다 조그마하게 에펠탑이 보였다. 그곳을 따라 가보자고 하자 동생은 단번에 그러자고 한다. 에펠탑이 내 눈앞에 보이니 지척에 있다고 착각을 했나 보다. 걸어도 걸어도 좀처럼 에펠탑이 바로 앞에 나오지 않는다. 멀었다. 걷고 또 걸어서야 에펠탑 아래에 왔다. 다시 보아도 에펠탑은 낭만적이고 환상이다. 에펠탑에 대한 환상은 동시에 에펠탑에 대한 매력을 떨어뜨렸다. 다들 파리에 가면 에펠탑을 본다는 그 진부한 여행 루트를 난 따르지 않으리라. 생각만 했을 뿐 난 자의든 타의든 에펠탑을 봤고 큼큼한 냄새를 풍긴다고 질색했던 파리가 좋아졌다. 에펠탑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영화 속 반짝이는 장면들이다. 라따뚜이 그리고 어느 한 프랑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새벽에 지붕에서 보았던 에펠탑. 그 영화를 보고 난 화려한 에펠탑도 쨍한 하늘 아래 있는 에펠탑도 아닌 이른 새벽에 해가 뜰 때 조금은 어두운 에펠탑이 가장 보고 싶었다. 홍콩이 왕가위 감독이 만든 공간이라면 파리도 꼭 홍콩 같다고 생각한다. 달콤한 사랑이 있는 파리는 영화에서 심어준 환상이니까.

에펠탑이 저렇게 빼곰.


점점 가까워 지는 에펠탑


뭘 발라 놓았길래 이렇게 가까이서 봐도 매력적일까
샹젤리제 거리에서 우박을

에펠탑을 본 우리는 샹젤리제 거리와 개선문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몇 발자국 갔을 뿐인데 우연히 목적지가 같은 프랑스 모녀를 만나 졸졸 따라갔다. 명품 거리에서 우리는 알지 못하는 유명한 프랑스 연예인을 보고 프랑스 모녀는 연신 사진을 찍었다. 우린 그 장면이 신기했다. 가다가 50유로가 살짝 보이는 지폐를 들고 자신의 차에 자그마한 쇼핑백을 놓아준 직원에게 팁을 주는 우리 또래의 여자를 보고 신기하면 신기했지. 우리는 잠시 쉬어가자며 맥도날드에 들어가 맥플러리를 주문했다. 맥플러리라 비싸다. 4유로라니!


맥플러리를 먹고 네스프레소에 가서 부모님 선물도 사고 나니 거짓말같이 미친 듯이 비가 쏟아졌다. 갑자기 비가 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가만히 보고 있었더니 거리엔 우리 둘 뿐이다. 사람들은 모두 매장으로 몸을 피하고 있다. 그제야 우리도 거센 비를 뚫으며 달려갔고 곧이어 우박이 떨어진다. 조금 더 기다려보니 함박눈까지 내린다. 함박눈이 내리자 비나 우박처럼 심하게 젖거나 아프지 않으니 기꺼이 눈을 맞으며 샹젤리제 거리를 구경한다. 나는 동생이 축구화를 보고 신나는 것처럼 눈을 보고 웃음이 났고 신나고 즐거웠다. 비 맞는 것을 생각보다 좋아하나 보다. 많이 걷고 웃었던 하루가 지나갈 무렵 저녁 시간에 맞추어 배가 고프다. 

사계절 날씨를 겪은 파리 거리에서 

비가 살짝 오기 시작할 때는 걱정이었지만 거세게 내리자 포기했다. 이미 맞은 걸. 눈이 내리자 다행이라 여겼고 날이 맑아오자 행운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날씨를 예측할 수는 있어도 확신은 하지 못한다. 아마 평생 그렇게 주어진 날씨에서 살아가겠지. 오늘 변화무쌍한 날씨를 맞이하다 보니 날씨는 그냥 날씨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함박눈을 맞으며 웃었던 걸 보면 분명 궂은 날씨에도 웃을 일이 생기는 걸. 물론 태풍은 예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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