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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e Jun 07. 2022

오카방고 델타에 가다. 제 3편

보츠와나의 추억 vol.43


오카방고 델타에 가다. 제3편



작열하던 태양이 나도 모르는 사이 지평선에 가까워졌을 때쯤 하마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우 듬직하고 강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피부가 연약한 하마들은 프리카의 뜨거운 태양과 건조한 공기를 피해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물속에서 지낸다.



오카방고 델타로 들어오기 위한 배를 타는 이 시작되는 곳. 그 길목에서 만났던 두 마리의 하마 뒤로하고 초원 깊숙 굽이 굽이 들어오니 '오카방고에 있는 하마들은 다 여기 모여있 건가?!'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하마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하마들 사이에 저 멀리 지구 반대편에서 누가 놀러 왔다는 소문이 퍼진 걸까?

처음엔 저 눈과 귀만 빼꼼 내밀고 있는 하마 한 두 마리만 이는 게 다였는데 어느 순 물속에서 수많은 하마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하마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하마들이 잔잔한 수면을 뚫고 나오는 와중에 덩달아 숨을 쉬러 수면 위로 나오던 하마 한 마리는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낯선 생명체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걸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다가 고개를 돌려 를 발견하자마자 갑자기 물 한가운데로 폭풍 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하마가 이렇게 날렵한 동물이었나 싶을 정도 빠른 속도로.


그동안 용히 하마들을 바라보면서도 '혹시라도 하마에게 공격당하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던 내 마음이 무안해지는 순간이었다. 돌이켜보니 를 보고 놀랐을 하마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저 멀리 자리를  피한 하마는 다른 하마들과 모여 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하마들갑작스러운 눈싸움이 시작됐다. 이렇게 많은 하마를 야생에서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신기함과, 이곳 자체가 주는 신비로운 분위기에 사로잡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해를 보고서도 차마 눈길을 거두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다 문득 '이곳의 주인은 저 하마들이니 오히려 구경거리가 되는 신기한 존재는 바로 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그 후로도 우리는 서로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 까,

가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걸 느낀 하마들은 더 이상 나를 구경하는 게 신기할 것도 없다는 듯 다시 이전 생활로 하나 둘 돌아가고 있었다. 물속으로 잠수를 하고, 다른 하마와 장난을 치고 이리저리 헤엄치며 노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어느덧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이젠 정말로 텐트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됐다.

해가지면 빛이라곤 없을 이곳은 조만간 암흑 그 자체가 될 테니 서둘러 돌아가야 할 때라는 걸 알면서도 저 풍경을 보고 있자니 발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다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을 까? 

하는 생각이 실시간으로 들 정도로 광활한 대지  수많은 야생동물들 뒤로 해가 지는 모습은 평생을 가도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아, 나는 이 순간을 앞으로 평생 잊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실시간으로 드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위대한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거대함 앞에 한 없이 작아지는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환경오염으로 인해 밀림의 면적이 계속 줄어들고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 없이 많은 동물들이 죽어가 멸종 위기에 처한다는 뉴스를 때때로 보면서도 크게 마음이 동하지 않았던 내 모습갑자기 너무나 부끄러웠다.


아프리카에는 늘 물이 부족하고, 바다는 늘 오염되어 있었고, 숲은 늘 산불이 나고 나무가 불타고 동물들이 사라지고,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원래 그런 모습인 것처럼 너무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건 아닐까.



이런 생각들과 동시에 내가 하는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환경을 오염시키고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내가 먹고 마시고 쓰고 버리는 모든 것들이 환경을 오염시키고 지구를 아프게 할 수도 있겠구나. 아니, 나라는 존재 자체가 도시에서 살면서 당연하게 누려온 모든 것들이 지구를 아프게 하고 병들게 하는 것이 었구나.  후대의 사람들이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없게 되면 어쩌지?


이곳을 지키고 이곳의 모든 존재들을 보호해주고 싶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도 그 질문에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지구를 병들게 하는 하나의 작은 먼지로 살아가고 있지만, 언젠가 머지않은 시일 내에 기필코 이곳과 이곳의 모든 존재들을 지키는 데 작은 힘을 보태는 방법을 찾아내 해내고 말겠다. 는 다짐을 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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