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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e Sep 20. 2017

오카방고 델타에 가다. 제 2편

보츠와나의 추억 vol.42


오카방고 델타에 가다. 제 2편 



아무것도 없던 숲 속에 

텐트를 치고 모닥불을 피우고 나니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마다 서로 다른 푸르름을 뿜어내는 나뭇잎들 사이로 눈 부시게 새파란 하늘과 그 아래 펼쳐진 드 넓은 평원.



수풀이 우거진 이 공간 너머에는

바로 야생의 들판이 펼쳐진다. 우리는 그저 그들의 보금자리에 잠시 머물렀다 갈 뿐.


보츠와나에서는 오카방고 델타의 자연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계속해서 모니터링하고 있는데 연구결과 우리처럼 여행객들이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머물렀다 가는 행위가 이곳의 환경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에 여행을 허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 곳에 와서 오카방고 델타의 아름다움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나니 이 곳에 들어올 수 있는 총인원을 제한하고, 반입이 가능한 물품을 관리하는 등 오카방고 델타를 위한 일련의 모든 과정과 방식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문득

모코로를 타고 들어온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스마트폰을 꺼내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쉴 새 없이 울려대던 SNS의 알림이 사라지고,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매 순간 공유하던 행위를 멈추고 나니 수풀을 헤치며 달려오는 바람의 거센 숨소리가 들려오고,  텐트 주변을 흐르는 물소리가 피와 닿았다.


그 순간 함께 간 일행들은 캠핑의자를 펼치고 가지고 온 짐 속에서 와인과 치즈를 꺼냈다.



이 순간을 기념하기 위한

그 어떤 말도, 음악도 필요치 않았다.

나뭇잎 사이를 간지럽히는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과 발 밑에서 들려오는 풀 벌레의 이야기 소리, 그리고 입 안에 퍼지는 와인 향기를 오롯이 느끼며 의자에 깊숙이 앉아 등을 붙이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마치 내가 이곳에 왔다는 것을 이 숨을 통해 이 공간의 모든 존재들에게 인하는 기분으로.



와인을 마시고 나니 금세 허기가 졌다.

조금 이따 오카방고 델타의 구석구석을 돌아보기 위해 워킹 사파리를 떠나야하니 그전에 모코로에 싣고 온 짐 속에서 먹을 것들을 하나 둘 꺼내 모닥불 주변에 간이 주방을 마련했다.


단출한 이 재료 만으로도 꿀맛 같은 샌드위치가 만들어질 수 있는 이유가 오카방고 델타의 공기 덕분인지, 방금 마신 와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간신히 허기를 달래고,

큰 물통에서 작은 물병으로 물을 옮겨담아 가방에 넣고 발걸음을 옮겼다.


드디어 진짜 오카방고 델타의 품 안으로 들어온 기분이다.

작은 언덕 하나 없는 드 넓은 대지위에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지평선 만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직 중천에 떠있는 저 해가 지기 전에만 돌아오면 되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찰나 탈무드에서 읽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해가 지기 전까지 걸어 돌아오는 땅의 넓이만큼 너에게 주겠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욕심을 부린 나머지 뙤약볕 아래를 하루 종일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다니다 결국 출발지로 돌아오자마자 숨을 거두었다는 그 이야기를 떠올리니 괜스레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가련하고, 측은해졌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한 10분쯤 걸었을까?

눈 앞에 커다란 바오밥 나무가 저 멀리 우뚝 서있었다. 너무 교만한 벌로 위와 아래가 뒤집힌 채 땅에 박혀 버렸다는 바오밥 나무에 가까이 다가가니 말로만듣던 그 웅장함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근처의 나무들도 사람키를 두 세배는 훌쩍 뛰어 넘는 나무들 이었지만 바오밥 나무 곁에서는 그저 작은 새싹처럼 보일 정도 였다.



바오밥 나무에 감탄하던 사이

반대로 고개를 돌려보니 한 무리의 누우와 얼룩말들이 보였다. 오카방고 델타는 이렇게 한 시도 쉴틈을 주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광경을 선보인다. 얼룩말은 귀가 밝고 성격이 좋아 다른 어떤 동물들과도 함께 잘 지내는 동물이라고 한다. 덕분에 기린 무리와 함께 다니기도 하고, 코끼리들과 함께 있기도 한 모습을 이후에도 계속 볼 수 있었다.




겁이 많은 얼룩말들은

나와의 거리가 조금이라도 가까워졌다 싶으면 하나 같이 '얼음' 한 상태로 나를 주시한다. 이렇게 서로 한참을 마주 보며 누가 먼저 움직이는지 얼음땡을 하다보면 으레 내가 먼저 지쳐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그러다 다시 멈춰서 고개를 돌려 얼룩말을 바라보면 또다시 우리의 얼음땡 놀이가 시작된다.


얼룩말과 한참 얼음땡을 하다 걸음을 옮기니 기린 가족들이 모여있는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기린은 얼룩말 보다 더 겁이 많은 동물이라 좀처럼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

한걸음 다가가면 한 열걸음 물러서는 모습이니 그저 가만히 바라 볼 수 밖에.


동물원의 기린들은 사람이주는 풀도 잘 먹고 사파리 버스에도 가까이 오는 데, 오카방고 델타의 기린들은 인기척이라도 들리면 우선은 달아날 준비부터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저 기린들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보게될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멀리서 바라볼 수 밖에 없지만 저기 먼 곳 기린들의 모습은 동물원의 그것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성스럽기까지 했다.





이렇게 한 장면 한 장면에 감탄하며

초원을 걷다보니 어느새 뉘엿뉘엿 해는 기울어 가고 이제 다시 텐트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정표도 없고 가로등도 없는 들판에서는 길위의 나무 한그루, 돌 부리 하나를 이정표 삼아 왔던길을 되돌아 갈 수 밖에 없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고 까만 밤이 오면 온 몸의 모든 방향감각을 곤두 세워도 텐트로 돌아갈 수 없기에 우리는 조금씩 발걸음을 서둘러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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