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방고 델타에 가다. 제 3편

보츠와나의 추억 vol.43

by marie

오카방고 델타에 가다. 제3편



작열하던 태양이 나도 모르는 사이 지평선에 가까워졌을 때쯤 하마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매우 듬직하고 강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피부가 연약한 하마들은 프리카의 뜨거운 태양과 건조한 공기를 피해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물속에서 지낸다.



오카방고 델타로 들어오기 위한 배를 타는 길이 시작되는 곳. 그 길목에서 만났던 두 마리의 하마를 뒤로하고 초원 깊숙이 굽이 굽이 들어오니 '오카방고에 있는 하마들은 다 여기에 모여있 건가?!'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하마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하마들 사이에 저 멀리 지구 반대편에서 누가 놀러 왔다는 소문이 퍼진 걸까?

처음엔 저 눈과 귀만 빼꼼 내밀고 있는 하마 한 두 마리만 이는 게 다였는데 어느 순 물속에서 수많은 하마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하마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하마들이 잔잔한 수면을 뚫고 나오는 와중에 덩달아 숨을 쉬러 수면 위로 나오던 하마 한 마리는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낯선 생명체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걸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다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발견하자마자 갑자기 물 한가운데로 폭풍 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하마가 이렇게 날렵한 동물이었나 싶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동안 용히 하마들을 바라보면서도 '혹시라도 하마에게 공격당하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던 내 마음이 무안해지는 순간이었다. 돌이켜보니 나를 보고 놀랐을 하마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저 멀리 자리를 피한 하마는 다른 하마들과 모여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하마들과 나의 갑작스러운 눈싸움이 시작됐다. 이렇게 많은 하마를 야생에서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신기함과, 이곳 자체가 주는 신비로운 분위기에 사로잡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해를 보고서도 차마 눈길을 거두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다 문득 '이곳의 주인은 저 하마들이니 오히려 구경거리가 되는 신기한 존재는 바로 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그 후로도 우리는 서로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 까,

내가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걸 느낀 하마들은 더 이상 나를 구경하는 게 신기할 것도 없다는 듯 다시 이전의 생활로 하나 둘 돌아가고 있었다. 물속으로 잠수를 하고, 다른 하마와 장난을 치고 이리저리 헤엄치며 노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어느덧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이젠 정말로 텐트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됐다.

해가지면 빛이라곤 없을 이곳은 조만간 암흑 그 자체가 될 테니 서둘러 돌아가야 할 때라는 걸 알면서도 저 풍경을 보고 있자니 발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다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을 까?

하는 생각이 실시간으로 들 정도로 광활한 대지 수많은 야생동물들 뒤로 해가 지는 모습은 평생을 가도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아, 나는 이 순간을 앞으로 평생 잊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실시간으로 드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위대한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거대함 앞에 한 없이 작아지는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환경오염으로 인해 밀림의 면적이 계속 줄어들고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 없이 많은 동물들이 죽어가며 멸종 위기에 처한다는 뉴스를 때때로 보면서도 크게 마음이 동하지 않았던 내 모습이 갑자기 너무나 부끄러웠다.


아프리카에는 늘 물이 부족하고, 바다는 늘 오염되어 있었고, 숲은 늘 산불이 나고 나무가 불타고 동물들이 사라지고,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원래 그런 모습인 것처럼 너무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건 아닐까.



이런 생각들과 동시에 내가 하는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환경을 오염시키고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내가 먹고 마시고 쓰고 버리는 모든 것들이 환경을 오염시키고 지구를 아프게 할 수도 있겠구나. 아니, 나라는 존재 자체가 도시에서 살면서 당연하게 누려온 모든 것들이 지구를 아프게 하고 병들게 하는 것이 었구나. 후대의 사람들이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없게 되면 어쩌지?


이곳을 지키고 이곳의 모든 존재들을 보호해주고 싶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도 그 질문에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지구를 병들게 하는 하나의 작은 먼지로 살아가고 있지만, 언젠가 머지않은 시일 내에 기필코 이곳과 이곳의 모든 존재들을 지키는 데 작은 힘을 보태는 방법을 찾아내 해내고 말겠다. 는 다짐을 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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