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어느날, 기필코 술을 마셔야겠다면서 몇십 분째 같은 거리를 맴돌고 있었다. 술을 마셔본 적도 없는데다가 혼자 술을 마시려니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여기저기를 서성였다. 결국, 생각난 곳은 국밥집이었다. “아줌마, 여기 순대 국밥이랑 소주 한 병 주세요.”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태연하게 말했다. 처음 마셔보는 소주는 몸서리칠 만큼 썼지만, 무슨 오기에서인지 한 병을 다 비웠다. 아빠가 늘 반주로 소주 한 병은 드셨기에 보통 그 정도는 마실 수 있는 줄 알았다.
계산을 하고 나와서도 취한 기분이 들지 않았지만, 너무 빨리 마셔서라는 걸 뒤늦게 알아챘다. 갑자기 취기가 올라와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종로 한복판 어느 벤치에 앉았다. 머릿속에는 면접관에게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말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수많은 불합격 이메일 끝에 모처럼만에 찾아온 기회였다. ‘이 말을 해야 했나? 스펙이 부족한가? 아니 애초에 전공을 잘못 선택한 걸까?’ 후회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지난해까지만해도 내 별명은 ‘근자감’이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나는 매일 밤, 술을 마시며 땅이 꺼질듯 한숨을 쉬는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취할 때마다 자신이 못다 이룬 꿈과 팍팍한 현실에 불만을 터뜨리는 아빠를 보며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몇 번씩 다짐했다. 술을 싫어하는 것도 그래서였다. 대학 OT 때도 한사코 술을 거부했다. 하지만 ‘불합격입니다’라는 20번째 이메일과 간만에 본 면접을 망친 순간 술로 오늘을 견디려는 아빠의 몸부림이 떠올랐다.
어떤 것도 내 맘 같지 않았다. 실패한 것 같은 현실과 잘 해내고 싶은 이상 사이에서 취하지 않았을 때도 휘청거렸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 같은 시간 속에서 자신감이 있든 없든 매일 한 발을 내딛어야 했다. 부모님도 애인도 대신 해줄 수 없는 나의 몫이 있었다. ‘근자감’을 잃어버리고 아빠의 한숨을 이해한 나는 비로소 어른의 세계로 들어서고 있었다.
월간 <샘터>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