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수 양치컵과 뽀로로 케이크

동생의 병실에서

by 멜랑꼴리한 말미잘

동생이 아프다. 5남매의 막내. 왼손잡이에 교 성적은 단골 꼴찌. 그래도 글 잘 쓰고 만화도 잘 그리던, 먹는 거 좋아하던 막냇동생. 어린 시절 같이 놀다 입술이 찢어지는 상처를 입었다. 한동안 전혀 기억하지 않고 지냈었는데, 요즘 동생의 병실을 지키다 보니 생각이 났다. 밥상인지 책상 위에 올라가 놀다가 상 모서리에 얼굴이 부딪쳤던 것 같다. 내가 안고 내리다가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다쳤을 때 도 나고 많이 울었을 텐데 이젠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직도 입술에 흉터가 있다. 그 일을 기억하는지 한번 물어보려는데.. 오늘은 동생이 내처 잠만 잔다. 밤에는 통 자질 않고 낮에 자니 간병인들이 힘이 든다. 그래도 2주 전만 해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었는데 이 정도 버텨주고 있는 것만 해도 고맙지 않은가.


이 주 전, 병원에서 갑자기 걸려온 전화는 동생이 혼수상태로 오늘을 넘기기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지난 7월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한 달 전 49재를 치를 때만 해도 별다른 조짐은 없었다. 49재는 괴산의 한 작은 절에서 치렀기에 나는 동생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같이 괴산까지 내려갔었다. 마흔이 넘어서도 미혼의 동생은 변변한 직장도 없고, 본인 명의 집 한 채 없이 아버지와 살았더랬다. 생전에 아버지는 막내 걱정을 많이 했었고, 돌아가시기 한 두 달 전쯤 나에게 동생 결혼을 부탁하셨다. 나는 그것을 아버지 유언으로 생각했고, 아버지가 내 이름으로 물려주신 작은 오피스텔의 일부를 동생의 결혼자금과 자립기금으로 사용하겠다고 결심한 바였다. 괴산을 왕복하는 시간 동안 나는 동생에게 나의 결심을 이야기했고 의견을 물었다. 동생은 묵묵부답이었다. 결혼이 쉬운 일이 아니란 건 나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친구의 도움으로 베트남 국제결혼 전문 사이트를 찾아 그 정보를 전달했다. 동생은 베트남과 국제결혼이 쉽지 않다며, 키르기스스탄 고려인 여자와 결혼한 선배가 있는데 괜찮더라는 말을 꺼냈다. "그래, 것도 괜찮지. 적극적으로 알아봐. 비용은 누나가 해줄 테니 걱정 말고." 별 대답은 없었으나 긍정적이라고 해석했다. 49재 후 아버지 상속세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 세무사도 만나고 가족회의가 이어졌지만, 막내는 주로 주말에 일하는 알바를 했기 때문에 계속 형제들과의 모임에 나오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위염 때문에 밥을 잘 못 먹는다는 문자가 올라왔다. 다들 술 먹지 마라, 죽 먹어라, 병원에 가라... 등등 걱정의 문자를 남겼다. 평상시 술을 즐겨먹었고, 패스트푸드를 좋아하고 운동은 대 하지 않는 동생의 건강을 모두들 항상 걱정했었다. 그러다 갑자기 이런 연락이 온 것이다.


형제자매는 어린 시절 같이 컸을 뿐이지, 성인이 되어서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던 각자의 수십 년 세월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는 존재인 것 같다. 생의 병실에서 나는 이 아이(?)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을 한다. 렇게 아픈데도 동생은 몇 주간 혼자서 병원을 다녔다.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면서, 조직검사 때까지도 연락 한 통이 없었다. 마음 편히 상의할 누나, 형이 못 돼준 것 같아 모두들 가슴 아파 울었다.


동생은 나에게 언제나 아기 같다. 세월은 그렇게 멈추어져 있는 것 같다. 막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원래 만화나 인형 같은걸 좋아서 귀여운 이미지의 막내. 언제 이리 늙어버렸을까. 마트에 가서 팽수 그림이 그려진 양치컵을 샀다. 때? 물으니 '귀엽네'한다. 그런데 기력이 없어 스스로 양치를 못하니 팽수는 처음 사온 그 모습으로 있다. 병원에 올 때마다 이것저것 먹을걸 해오는데, 잘 먹질 못하니 속이 탄다. 병원 1층 베이커리에 괜스레 들러 둘러보다 어린이용 바나나 케이크를 샀다, 뽀로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재미있게 생각하고 한입 먹어주었으면....


그러나 오늘 내처 잔다.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엄마 아빠 만나고 있을까. 팽수랑 뽀로로와 놀고 있을까. 어린 시절로 입술 다치기 전으로 돌아가.. 해사한 얼굴로 웃고 있을까. 한번 더 기운을 내 누나와 가족들 곁으로 돌아와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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