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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갑자기 제가 희귀병 환자라구요?!

Nucleus 2025 #4

by 혜성

사실 나는 올해 수능을 다시 준비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을 즈음에는 그냥 취미로 글이나 쓰면서 대학 생활을 할 줄 알았지만..

병원 입원과 여러 가지 이유들로 몇 년간 복학이 미뤄지고

돌고 돌아 다시 입시판이다.


늘 그렇듯 시작은 희망으로 가득했다. 아프기 전까지 공부도 잘하는 편이었고 몸도 마음도 나름 안정을 찾았으니 드디어 나에게도 마음껏 노력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재수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적표가 필요해 수능을 봤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등급들이 난무하는 성적표를 받았다. 하지만 공부하고 본 시험이 아니었기에 나에게 성적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학원 입학에 필요한 준비물이었을 뿐이었으니까. 그렇게 올해 1월 6일부터 재종을 다니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공부를 하는 게 힘들기도 했지만 나도 이제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도 기뻐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달렸다.


담임선생님과의 첫 상담, 의대에 가고 싶다는 내 말을 듣고 잠시 머뭇거리시더니

"그... 내년까지도 생각하는 거지?" 하고 말씀하셨다. 속이 쓰리긴 했지만 객관적으로 작년 수능 성적으로는 인서울은 커녕 지거국도 못 가는 성적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후로도 나의 꿈은 '터무니없는', '작년 수능은 공부 없이 봤던 거고 예전에는 공부를 잘했었다는 설명이 필요한' 그런 안쓰러운 꿈이었다. 각 과목 선생님들과 상담을 할 때도 "의대가 목표라고? 작년 수능 몇 등급이었어?" 하는 질문에 한없이 작아졌다. 그럴 때마다 수능 성적을 소명할 수 있는 나의 잠재된 가능성을 어필해야 했다.

대놓고 절대 안 될 거라고 말한 사람은 없었지만 진짜로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없는 듯했다.


6월 평가원 모의고사에서 꽤나 좋은 성적을 받았다. 아직 메디컬은 안되지만 재능도 있으니 이대로라면 의대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상담이 끝나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야 나의 꿈이 인정받을 수 있구나', '나도 이제 구구절절 해명 없이 당당히 꿈꿀 수 있구나' 하고. 반년 동안 은근히 무시당하고 상처받아 웅크려있던 나날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넘치던 의지도 시간이 지날수록 흐릿해져 가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갔고 쉬고 싶은 나태한 마음이 커졌다. 말 한마디 안 하고 12시간씩 공부만 하는 게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나를 다그쳤다.

지금이 옛날에 그렇게 원하던 평범한 삶이잖아.
아프지 않은 몸으로 오로지 공부만을 위한 하루를 보내고, 공부 때문에 고민하고, 공부하느라 고통스럽고 권태로운... 그런 복에 겨운 고통만을 느낄 수 있는 평범한 삶...
그토록 부러워했는데 지금의 내가 나태한 모습을 보이면
그런 날을 꿈꾸며 아픈 시간을 묵묵히 견뎌온 과거의 나를 욕보이는 거야.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몰려오는 날에는 팔에 멍이 들도록 손톱으로 꾹꾹 누르고 긁어가며 버텼고,

왠지 모를 눈물이 나는 날에는 자습실에서 코에 휴지를 꼽아놓고 울면서 수학 문제를 풀었다.

이렇게 버티면 끝에는 분명 빛나는 결과가 있을 거라 기대하며 매일을 버텼다.

언제 또 건강이 악화될지 모르니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고...


그런데 6월쯤 갑자기 희귀병 진단을 받았다.


눈 뒤쪽이 아프고 팽팽한 느낌이 들어 동네 안과에 방문했다. '그래봤자 그냥 안압이 조금 높아진 거겠지 뭐'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분이 너무 진지하게 검사를 하나 더 해보자고 하셨다. '뭔가 잘못됐구나'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다시 들어간 진료실에서 살면서 들어본 적 없는 말을 들었다.

"시신경이 부어있네요. 꽤 많이 부어있는 상태이고 환자분이 말씀하시는 증상과 변화를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시신경염인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당뇨도 있고 먹고 계신 약도 너무 많아서...
원래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으시던 환자분이시니
연락해서 빨리 전원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시신경? 시신경염? 시신경에도 염증이 생기나? 이름은 별로 무서운 것 같진 않은데 지금 나 많이 아픈 건가? 얼른 약 받고 학원 가야 되는데? 아니,, 근데 내가.. 내가 희귀질환자라고? 나 또 입원해야 하나? 내 인생은 대체 왜 이런 거지? 어쩐지 나답지 않게 순항한다 했어,,

온갖 생각이 스치던 와중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저.. 그.. 환자분 너무 걱정은 하지 마시구요. 우선 빨리
원래 다니던 대학병원 외래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먹고 있는 약들도 너무 많고 스테로이드를 써야 하니
당뇨 모니터링도 중요해서 아마 입원해서
고용량 스테로이드 치료를 하게 될 겁니다."


결제를 하고 나와서 빌딩 계단에 앉아 대학병원 진료 일정을 조정하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처음 당뇨 진단받았을 때는 엄청 울고 슬펐던 것 같은데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 그저 멍해졌다. 시신경염에 대해 찾아보니 국내 환자 수가 약 2,500명에 불과한 희귀질환이었다. 시력 저하와 통증, 심할 경우 색각이상과 실명까지도 가능한 무서운 병이었다. 어째서 이런 아찔한 확률이 나한테 온 것일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불안했다.


대학병원에서는 추가적으로 유전자 검사와 각종 검사를 진행했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채혈을 했는데 총 19통의 실린더를 꽉 채울 정도로 뽑아본 건 처음이었다. 한 10통쯤 뽑았을까, 혈관이 쪼그라드는 팽팽한 느낌이 들면서 손이 저려왔다. 조영제를 주사하며 안구를 촬영하는 검사까지 다 마치고 들은 교수님 소견은... '시신경염인지 확실히 진단할 수 없다' 였다.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본 시점과 처음 증상 발현 시점 간 기간 차가 좀 있는데 발병 직후를 본인이 보지 않았으니 딱 맞다/아니다를 이야기하기 난감하고 혹시나 시신경염이었다면 자연치유된 케이스인 것 같다고 하셨다. 우선 후유증이 남았는지 추가 검사해 보고 재발할 수 있으니 몇 달 뒤에 다시 보자고 하셨다.

다행히 큰 후유증이 남지는 않았지만 시력이 많이 떨어져서 안경도 새로 맞춰야 했고 시야가 약간 어두워졌다. 안 그래도 당뇨병성 망막병증을 가지고 있는데 시신경염도 그렇고 둘 다 끝이 실명이니 아마 나는 죽기 전에 무조건 눈은 멀겠구나 싶어서 며칠을 울었다. 공부고 뭐고 너무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치열하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이인감마저 들었다. 아프기 이전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더라. 원래 이 시간에 내가 뭘 했더라. 아, 국어 공부를 했지. 그렇지.. 그게 나인데 지금의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일까.


그렇게 나는 하루아침에 국내 환자 수가 2500명밖에 안 되는 희귀질환 환자가 되었다가 운 좋게 자연치유 후 경과를 관찰하고 있다. 왜 또 하필 나인지, 올해는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대체 왜 나한테 이런 시련들이 자꾸만 오는지... 아직까지도 가끔은 가슴이 답답하고 힘들다. 온갖 질병에 이젠 희귀질환자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되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내 인생에는 왜 이렇게 입원이 자주 등장하는 건지. 내가 뭘 그리 잘못한 걸까.

하지만 이 또한 변명에 불과한 거겠지. 나만 아픈 것도 아닌데 남들 눈엔 그저 자기연민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위로가 그것뿐이다. 나라도 알아주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무너져버릴 테니까.


나는 무교이지만 하늘이 참 무심하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남들은 평생 겪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이렇게 어린 나이에 몰아 겪어야 하는 기구한 인생.

만약 신이 있다면 한 번 물어보고 싶다.


대체 나를 이렇게까지 괴롭히는 이유가 뭐냐고.

인간이 어디까지 비참해질 수 있는지 궁금한 거냐고.

그것도 아니라면,,,

죽을 듯 말 듯 위태롭던 내가 겨우 일어서 희망을 품는 걸 지켜보는 게 가소롭고 웃겨서

마치 오징어 게임처럼 다시 넘어뜨리고 이번 판에는 죽는다/산다 베팅이라도 하는 거냐고.

그저 재미를 위한 것이라면 이제 그만... 그만해줄 순 없는 거냐고.


죽기 전에 꼭 한 번쯤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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