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의 아픈 이야기
중학교 3학년의 저는 과학고등학교 입시를 위해 남들처럼 대치동에서 학원을 다녔습니다. 매일 새벽까지 공부했고 사람이 꽉 차 위태로운 버스를 타고 오가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과학고에 진학하지 못했고 큰 좌절이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저녁에 엄마와 이야기하다가 절대 고등학교 3학년 때는 같은 결말을 맺지 말자며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고등학교 진학 전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비장하게 입학했습니다. 이미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어떤 스펙을 쌓을 것인지 모든 컨셉을 잡고 입학한 학교에서 나름 순탄한 듯했습니다. 제가 많이 아프기 전까지는.
이미 한 번의 좌절을 경험한 저에게 잠과 취미는 사치였습니다. 오로지 공부, 생활기록부 작성에만 몰두했습니다. 학교에서 하는 모든 행사에 참여했고 교과시간에 주어지는 모든 추가 활동을 수행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번에 PPT를 4개씩 만들며 발표 준비를 해야 하는 순간도 있었고 잠을 못 자고 등교하는 날도 많아졌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절대 수업시간에 졸지 않았고 피로는 점차 쌓여만 갔습니다.
1학년 2학기쯤 되었을 때 몸이 이상한 신호를 보낸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 월경도 하지 않고, 사람들이 판다라고 장난칠 정도로 다크서클이 많이 내려왔으며, 하루가 멀다 하고 코피를 흘렸습니다. 이때 그 신호들을 무시하면 안 되는 거였습니다. 당장의 과제에 눈이 멀어 건강을 챙기지 못한 저는 허리디스크가 와서 한동안 고생했고 점점 학교 생활 이외의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집에 도착하면 바로 쓰러져 자는 바람에 학원에 늦거나 못 가는 경우가 늘어갔고 2학년 1학기쯤에는 하교 후 집에 와 기절하듯 잠들면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학교를 가는 생활이 반복됐습니다. 그 와중에도 온갖 활동들로 새벽에 일어나 아침까지 고통 속에서 공부하는 날도 많았습니다. 활동이 없는 날 아무리 많이 자도 피로 회복이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겨우 겨우 버티던 중에 우연히 하게 된 피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관찰되었습니다. 간수치는 300대가 나왔고 혈당은 500대였으며 고혈압, 고지혈증도 있다는 결과를 들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당장 가서 간 초음파를 찍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이 정도 수치면 암이 있거나 기형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억장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다행히 암과 기형은 아니었지만 저는 18살의 나이에 고혈압, 고지혈증, 지방간, 당뇨를 갖게 되었습니다.
여태 '너 왜 이렇게 나약해', '지금 중요한 시기인 거 알면서 왜 이래' 하며 자책하던 저는 그저 아픈 사람이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이제까지 저는 그냥 제 마인드 문제라고 저에게 가혹한 말을 수도 없이 해왔는데 간이 망가졌으니 당연히 피로 회복이 될 리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너무 허무했습니다. 바로 대학병원에 입원해야 했고 당장 2주 뒤에 있는 중간고사를 위해 캐리어에 책들을 한가득 들고 가 한 손으로는 플래시를 켜고 식판 위에서 공부했습니다. 아픈 줄도 모르고 매일 모진 말들을 제 자신에게 쏟아내며 1년 반을 살아온 저에게 너무나 큰 무기력과 우울이 찾아왔습니다. 이미 마음도 많이 망가진 상태였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세상이 흑백으로 보였습니다. 지금까지 해온 것들이 너무 초라해 보였습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성적은 점점 떨어졌습니다. 마지막 희망으로 악착같이 챙겨 온 생활기록부는 성적으로 인해 빛을 발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죽음에 가까워졌습니다. 숨은 쉬었지만 살아있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까, 끝낼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우울의 끝을 달려가면서도 생활기록부만큼은 목숨을 걸고 챙겼는데... 2학년 2학기가 끝날 무렵 뭔가 마지막 잡고 있던 끈이 '툭,,'하고 끊어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아무 활동도 참여하지 않고 우울해하는 저를 학교에선 이상하게 쳐다봤습니다. 선생님들께서 어디 아프냐고 여쭤보실 때마다 '네, 저 많이 아팠어요... 지금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아파요.'하고 말하고 싶었는데 끝내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습니다. 그냥 이제 편해지고 싶었습니다. 죽음을 결심했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엄마가 병원에 가는 게 어떻겠냐고 하시기에 '어차피 마지막인데' 하는 마음으로 알겠다고 했습니다.
그 해의 마지막 날이었던 12월 31일, 저는 중증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진단받았습니다. 처음 보는 선생님 앞에서 펑펑 울면서 진료를 받고 나오며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조금 더 살아봐야지'
사실 병원을 다닌다고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습니다. 3학년이 되고 우울증이 점점 심해져 학교도 잘 못 가고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웠습니다. 병원에서는 자퇴를 권유했고 저도 제가 점차 망가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차마 멈출 수 없었습니다. 남들은 달려나가는데 혼자 멈추는 게 두려웠습니다. 어쩌면 그때 멈췄어야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학 입시가 끝나고 남들은 나름 좋게 보는 대학에 진학했지만, 저는 너무 많이 망가진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제 건강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너무 큰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잠깐 멈추는 게 두려워 망가지는 줄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제 행동이 지금 더 기나긴 멈춤으로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