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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버림받지 않기 위한 발버둥일 뿐이었다.

어린 시절 나의 아픈 이야기

by 혜성

언제인지도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의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애쓰며 살았습니다. 제 세상의 전부였던 엄마가, 저의 우주가 저를 버릴까 봐 늘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저의 우주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엄마의 사랑을 확인했습니다.

"엄마, 혹시 나 안사랑해?"
"엄마, 혹시 나 때문에 화났어?"
"엄마, 혹시 내가 뭐 잘못했어?"
"엄마, 나 버리면 안 돼"

걱정 어린 눈빛으로 그런 말을 할 때면 당연하다는 듯 사랑한다고, 너 때문에 화난 게 아니라고 말씀해 주시는 엄마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제야 잠자리에 들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 시절 제 눈에 비친 엄마는 늘 바쁘고 지쳐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엄마는 제가 태어날 무렵부터 동네 학원을 하셨는데 일이 바쁘셔서 저는 어린이집에서 다른 친구들은 부모님이 찾으러 와 달려나가는 모습을 보며 눈이 빠져라 엄마의 퇴근을 기다렸습니다. 아빠는 늦게 들어와 일찍 나가셔서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고, 그래서 오빠가 데리러 오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늦게까지 아무도 오지 않았던 어느 날은 이렇게 내가 버려지는 건 아닌가 두려워하며 엎드려 울었습니다.

유치원에 갈 무렵 저는 오빠 친구네 집에 맡겨졌습니다. 등원하는 아침과 퇴근 후 잠자리에서만 엄마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하원은 오빠 친구네 집으로 했고 그곳에서 먹고, 자고, 씻곤 했습니다. 그러다 잠이 들면 퇴근하신 엄마가 저를 업고 집으로 오시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쏟아지는 잠을 참으며 꾸역꾸역 엄마를 기다린 날에는 엄마의 지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엄마 손을 잡고 집에 가는 길에 오늘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눈치를 보며 '오늘은 꼭 책 읽어달라고 해야지!' 하고 생각하던 마냥 어린아이였습니다. 책을 읽어준다던 엄마는 항상 몇 문장 읽지 못하고 책을 떨구거나 놓치며 잠과의 사투를 벌이셨습니다. 서운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 정도는 어린 저도 알 수 있었습니다. 늘 다음을 기약해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에 지쳐 차마 저의 감정까지는 보듬어 주지 못하는 엄마에게 점점 화가 났습니다. 그때부터 마음의 문을 닫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더 이상 그 무엇도 바라지 않을 거라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쯤 하교하면 쭉 엄마 학원에 있었습니다. 학원에서 원장 딸은 모두에게 불편한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학원에 제 자리 따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기다려 상담실에서 엄마랑 보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5분이었습니다. 저랑 있다가도 누군가 엄마를 찾으면 나의 엄마에서 모두의 원장님으로 순식간에 변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참 씁쓸했습니다. 혹시 다시 돌아오진 않을까 닫힌 상담실 문 밑 작은 틈 사이로 그림자가 다가오는지 뚫어져라 쳐다봤습니다. 마음의 문을 닫고 엄마한테 하나도 기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봅니다. 그렇게 일상이 되어버린 외로움과 공허함, 버려진 것 같은 쓸쓸함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우울증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점점 커가면서도 엄마와 어린 시절에 대한 문제로 많이 다퉜습니다. 신경 써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엄마의 사과가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아서 계속해서 이야기를 꺼내고 사과와 공감을 원했습니다. 짧은 사과 후 "근데..." 하며 시작되는 그 당시 엄마의 상황 설명은 어린 저에게는 그저 변명일 뿐이었습니다. 하루는 엄마가 소리를 지르며 말했습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니?! 나는 최선을 다했고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보다 더 잘 키울 수는 없었어!"

저의 아픔이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이렇게 아픈 지금의 내가 최선이었다는 게 너무 분통해서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렇게 저에게 엄마는 너무나 사랑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미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엄마에 대한 양가감정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신과에서 심리 상담을 시작한 후로 많은 것들이 변화했습니다. 엄마와의 꾸준한 소통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현재는 완전히 상처가 아물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죽도록 미웠던 그 감정이 많이 누그러든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에게 한마디 할 수 있다면,, "절대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 깊은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그날까지 저는 최선을 다할 겁니다. 어린 시절 버림받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 일으킨 작은 물결이 파도가 되어 이렇게 저를 흔들지만 언젠가 모든 게 잔잔해질 그날을 기다립니다. 꼭 그런 날이 올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아니, 믿어야 합니다. 힘들었던 모든 시간의 저를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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