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리몽땅 발가락에 이 글을 헌정하며
불쌍한 새끼발가락의 수난은 언제부터였는가?
아마도 어렸을 떄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것은 새끼발가락의 험난한 역사이다.
제일 예전으로 거스르면 새끼발가락을 크게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
어린이였을 때 나는 교통사고를 당해 수술을 받았었다.
그 수술 이후 새끼발가락의 좀 부운 채로 성장을 멈추었고 반대발의 발가락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상태이다.
새끼발가락 뼈가 부서져서 핀을 박아 고정시켜 아물게 되었다.
그때부터 자라면서 언제나 나의 새끼발가락은 짜리몽땅이다.
작고 통통한 나의 새끼발가락.
어릴 적 기억이라 그런지 완전하지가 않다.
그래서 그때 기억을 떠올리면 이상하게 아파트 상가에 병실에 누워 빵 냄새를 맡은 것 같다.
아파트 상가에 정형외과는 물론 입원할 병실도 없었고 그 자리는 그냥 점포였을 뿐인데 상가의 빵집과 병실의 만남이 떠오르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마 병문안으로 빵을 누가 사 왔나 보다.
그리고 또 인상적인 것은 병문안 선물로 받은 리자드 포켓몬 로봇이었다.
물론 진짜 존재하는 로봇인지 인형인지는 모른다.
왜 하필 파이리도 아니고 리자몽도 아닌 리자드(중간 진화단계)인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래서 더 오래 기억이 남는가 본다.
빵과 리자드와 새끼발가락은 참으로 오묘한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처음 새끼발가락의 수난 이후로 다음은 중학생 때 겪은 일화다.
중학생인 당시 또래와 마찬가지로 정말 공부하기 싫어했다.
공부와 담은 쌓지 않았지만 소심하여 공부에 대한 반항은 하지 못하던 나는 부모님, 특히 아빠 몰래 놀곤 했다.
논다고 해봤자 티비 보기가 나의 하루의 낙이었다. 그 낙마저 빼앗다니 지금 생각해도 한창 놀 시기인데 불쌍하다.
우리 집은 한참이나 후에 도어록으로 바꾸었는데 심지어 성인이 되고 나서야 겨우 바꾸었다. (이 이야기는 훗날 할 기회가 있겠지..)
발자국 소리부터 열쇠 꺼내서 돌리는 소리까지 아빠가 집에 오는 시간이 되면 귀를 예민하게 세워서 티비를 끄곤 했는데
그래서 지금도 몹시 귀가 예민해진 것 같다. 지금은 도어록 소리에 상대적 덜 예민하게 반응을 한다.
파괴적인 발가락의 충돌 때로 돌아가서 그때도 어김없이 티비 만화를 보고 있었다.
아빠의 열쇠 꺼내는 소리를 듣고 황급히 티비를 끄고 방으로 도망가다가 방문 벽에 세게 부딪히고 말았다.
정말 굉장히 아팠고 병원에 가니 새끼발가락에 금이 가고 말았다고 한다.
난생처음으로 깁스를 하게 되었고 등굣길을 아빠가 태어주게 되었다.
깁스를 하고 나니 나름 장점을 찾아보면 체육 시간을 빼는 거... 딴 게 있으려나.
무게 중심을 제대로 못주다 보니 엄지발가락에 티눈이 생기고
비 오는 날 비닐봉지에 둘러싸며 가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 도 아니고
급식 먹을 때도 오가는 일이 쉽진 않았다.
다만 제일 아쉬운 건 친구들과 같이 등하교를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원래 같이 놀던 무리와 새로 친해진 무리 친구들과 같이 하교를 하게 되었다가 등교도 같이 하자고 했다.
대부분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아 중간 공원에 만나서 가기로 했는데 그런지 며칠이 안돼서 내가 깁스하는 바람에 파토나고 만 것이다.
내가 약간 오작교 같은 역할이었는데 그래서 이후로도 등하교를 따로 하게 되고 자연스레 멀어지게 된 것이다.
내가 다치지 않았다면 계속 친하게 지냈으려나 잘 모르겠다.
친구가 전부였던 학창 시절의 아쉬운 일화다.
새끼발가락의 수난시대가 여기서 마무리 되면 좋으련만...
새끼발가락의 수모는 계속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