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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양 Mar 27. 2024

애써 좋은 사람은 거짓이다

“양날의 검이 되어 나를 찌른 소망“




죽기를 원하지 않는 자는
살기를 원했다고 할 수 없다.

루킬리우스에의 서한집 <세네카>








  마음에 생의 사약을 품고 사는 사람은 누구보다 밝고 씩씩한 척 표정을 연기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자기 안의 고약한 생각에게 잡아먹혀버릴 테니까.


  솜털 같은 황금빛 갈대가 햇살을 받으며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을 볼 때면 내 마음은 한없이 깊은 영역으로 치달았다. 낮게 가라앉은 감정 사이로 주저앉은 고요는 문득 나를 향하여 빠르게 내달려서는 어떤 소리 하나를 내어놓았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해?


  길을 걸으며 사색을 즐겼던 나는 스스로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된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런 생각을 주로 했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은 이라는 어감이 단순히 좋아서인지, 사회에 본보기가 되고 싶었던 소망이 전생부터 이어져 오기라도 한 것인지, 좋은 사람에 대한 나의 열망은 생이 시작된 이후로 지독히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생각은 내가 사람을 섬기고, 겸손하고,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마치 양날의 검처럼 죽음을 소망하도록 유도하는 주범이 되기도 했다.


  내가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나를 처음 마주한 건 스무 살 초쯤이었던 것 같다. 나는 사람에게서 상처받은 날이면 이불을 펴고 누워서 방 안에 어둠이 내리고 다음 날 동이 틀 때까지 불도 켜지 않은 채로 꼼짝없이 있었다. 그 상처받은 마음은 사람들은 절대 알아차릴 수 없는 것이었는데, 내가 철저히 그 상처를 숨겼기 때문이었다. 아니 실은 나 자신에게도 숨겼다. 그리고 나는 오직 죽음을 상상하며 은밀하게 나의 상처를 달래곤 했다. 만약 그들에게 받은 상처가 내가 행한 것에 대한 결과라면 그건 언제나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한 명백한 나의 잘못 때문이라고, 잘못을 저지른 나는 살 자격이 없는 거라고, 그 죽일 놈의 좋은 사람에 대한 열망이 언제나 발 빠르게 저 눅눅한 지하로 나를 잡아끌었다.


  나는 언제나 그런 마음으로 나 자신을 대했으면서도, 집을 벗어나서는 누구보다 밝은 사람이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하에 있는 나의 내면이 사람들에게 모조리 탄로 나 버릴 테니까. 나는 사람들이 내놓은 모든 의견에 동의를 표했고, 심지어는 그 모든 것을 좋아하는 척했으며, 작은 일에도 큰 리액션으로 웃음을 터트리곤 했다. 내가 아는 좋은 사람을 연기하기 위하여 말이다.  


  한동안 나는 교회를 열심히 다니며 교회 사람들을 많이 사귀었는데, 그때 교회를 통하여 알게 된 두 자매가 있었다. 나는 나와는 정반대적 성향으로 보이는 시원시원한 성격의 그 언니와 동생을 좋아했다. 무리 없이 금방 친해진 우리는 평소에도 딱히 개인적 일이 없으면 자주 어울려 다녔다. 하지만 나는 종종 두 자매의 말에 상처를 받곤 했는데, 그들의 시원시원하고 솔직한 언사가 나의 기준에서는 선을 넘을 듯 말 듯 아슬아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들에게 나의 불편함에 대하여 일말의 표현도 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표현하지 않는 나의 행동이 옳다고 굳게 믿었었다.


  만약 지금의 나라면 두 자매를 불러 차 한잔씩을 사이에 두고 둘의 언사가 나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하여 진지하게 말해봤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표현법을 사용하고 그 차이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저마다의 용기와 배려가 필요한 법이니까. 그렇게 말했다면 아마도 나의 의견을 진지하게 고려해 봤을 언니와 동생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엄두조차 내질 못했는데, 사실은 나조차 내 마음의 상태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두 자매에게는 일언반구도 털어놓지 못한 나의 애매하고 뭉근 감정들을 내 여동생에게는 거칠게 털어놓곤 했다. 마치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감정이 속 시원히 해소될 리는 없었다. 그건 내 마음을 돌보지 못하고 내놓은 험담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그때의 나는 내 마음을 숨기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모든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만 비추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먼저 염두에 두지 않는 건 내 집의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억수를 맞는 일과 같았다. 그건 심각한 재해와 같은 것이었다. 물이 턱끝까지 차올라 나의 집과 목숨마저 위협하는 그런 재해 말이다.







내가 항상 꿈꿨던 좋은 사람이란 것이 정말 내게도 좋은 것이 맞을까?
나는 왜 항상 죽고 싶었던 걸까?
항상 자신을 죽음으로 내모는 사람이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서 설 자격이 있는 걸까?



   그 삶들을 살아 낸 후 내가 알게 된 건 단지 이것 하나였다.

죽고 싶은 마음은 제대로 살기 원했던 마음의 변형이었고, 그 마음은 자신을 제대로 돌보아야만 반대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그런 마음이라는 것이었다.






풍요로움은 참이고, 궁핍함은 거짓이다.
선한 것은 참이고, 선하려는 노력은 거짓이다.
복종은 참이고, 애씀은 거짓이다.
지금 이 순간은 참이고, 과거는 거짓이다.
당신의 본모습은 참이고, 당신의 생각이 만든 모습은 거짓이다.

디팩초프라의 완전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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