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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여니vvv Mar 31. 2024

마음도 바람에 묻어나는 걸까

“깊이까지 가늠할 수 없을 슬픔“



만나서 알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이
모든 인간의 슬픔이다.

S. T. 콜리지







  그날은 참 이상한 날이었다.

 

  창 사이로 아침해가 나직이 일렁이고, 바깥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화창하고 따뜻했던 그런 날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햇살의 인자한 수유에 동참하고자 거실의 창을 활짝 열어두었다. 그리고 나의 내적 만족도는 날씨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평온한 일상 때문이었는지 이유를 따질 수 없이 불분명한 가운데 그저 기분 좋은 상태에 머무르고 있었다.


  띵동

  그때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얼마 전 은주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 지은이의 문자였다. 그녀가 나에게 전해온 소식은 뜻밖에도 아버지의 부고 소식이었다. 은주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지은이를 보았을 때만 해도 아버지의 안부에 대해서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던 터라, 나는 지은이의 문자에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빠가 담배를 너무 좋아해.. 좀 끊었으면 좋겠는데, 가족들 말을 듣지를 않으시네. 아휴.” 반가움에 서로의 안부를 나누던 중, 내가 지은이의 아버지에 대해서 들은 것이라곤 이 말이 전부였는데,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싶어 당혹스러움을 감출 길이 없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내가 당혹스러웠던 건, 지은이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찾아 그녀에게 직접 위로의 말을 전해주고 싶은 나의 마음과는 달리 따라주지 않는 나의 현 실정 때문이었다. 어려울 때 함께 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당장이라도 지은이에게 쫓아가 슬픔을 반으로 나눠야 마땅하다 생각했지만 갑작스럽게 전해 들은 그 소식이 부담스러운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생활비를 조금씩 마련해 그때그때 생활하는 나로서는 경제적 부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 부의금만 겨우 마련한 나는 지은이에게 미안한 위로를 전하는 동시에 문자로나마 겨우 어찌 된 영문인지 조심스레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 돌아온 대답에 나는 또다시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스스로 생을 달리 하셨어.”






  당뇨로 고생하시다 일찍이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 이는 내 인생에서 진즉에 맞이한 일 중 하나였다. 그 시절은 우리 가족에게 참 힘든 시간이었다. 힘든 건 아버지의 생전 뿐만 아니라 죽음 이후에 더 명확해졌다. 바닥으로 치달은 생활고와 이별에 대한 내적 상처, 보일러 한 드럼을 채우기가 버거워 차가워진 방바닥만큼이나 냉기만이 감도는 가족 사이...


  한 부모의 부재가 한 가정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모르지 않는 나로서는, 지은이에게 어느 정도 담담하게 공감과 위로가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쩔 수 없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어떻게 할 수도 있었을 것만 같은 여지를 남기고 간 가족에 대하여 나는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생전 마지막 날, 그날도 술에 취해 당신 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귀가하신 아버지가 너무 지긋지긋하고 미워서, 팽하고 던지 듯 이부자리에 아버지를 뉘었던 그 순간에 나는 가끔 서있는데... 어서 지나가기만을 바랐던 그날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조우가 될 줄은 꿈에도 몰라 아무렇게나 놓아버렸던 아버지의 손이 가끔은 그렇게도 사무치게 그리운데... 돌이키지 못할 그리움은 종종 안방에서 평안히 주무시는 아버지의 모습만으로도 안정감을 느끼는 꿈이 되고, 때로는 아버지를 조금만 미워할 걸 하는 죄책감이 되었는데.


  나는 지은이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녀에게 당장 위로가 되는 건 그 어떤 말이 아니라 온기를 나눌 수 있는 포옹은 아닐까. 잔잔하게 얼굴을 마주하며 고요한 위로를 보내줄 수는 없을까. 서로 손을 맞잡아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한 마디를 직접 전하는 게 더 나은 건 아닐까. 하지만 그러지 못한 현실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었다.


  암을 늦게 발견하고 떠나신 은주의 아버지, 꺼내지 못한 속내를 혼자 앓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 지은이의 아버지…. 부쩍 친구 부모님들의 부고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만 해도 그런 일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니어서, 그건 친구들과 굳이 공유하지 않았던 내 인생 한구석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아픔이 수면 위로 올라와 그녀들의 마음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그럼에도 나는 알고 있었다. 다 내놓지 못하는 삶의 이야기 안에서, 나는 그녀들의 아픔을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는 있을 테지만 그 깊이까지는 가늠할 수 없을 터라는 걸 말이다.






  아침부터 열어둔 창 너머로 바람이 비집고 들어와 내 온몸을 잔잔하게 휘감았다. 그리고 그 바람에 가늠키 어려운 지은이의 슬픔이 묻어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참 이상하기만 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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