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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양 Apr 15. 2024

천 피스 퍼즐 작품

“모든 순간은 살아 숨 쉬는 좋은 글”



모든 사람의 일생은
신의 손가락으로 쓰인 동화다.

안데르센 작품집의 서문






  “집에 해바라기 그림이 있으면 돈이 들어온대” 그건 그냥 지나친 듯 전한 흔한 속설에 불과한 말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집으로 택배 하나가 도착했다. 해바라기로 가득 메운 해바라기 밭이 그려진 작품이, 천 피스의 조각 뭉텅이와 함께.

 

  그건 내 말의 한 점도 흘려듣지 않는 짝꿍이 주문한 퍼즐 작품이었다. 퍼즐이라곤 일찍 아이를 낳은 지인의 집에 놀러 갔을 때 아이와 함께 전체적으로 핑크빛이 감도는 공주님 콘셉트의 그림이 그려진 스물네 개의 조각을 맞춰본 게 과거 이력의 전부였던 나는, 눈앞에 자잘하게 나눠져 천 개라고도 가늠할 수 없는 딱딱한 종이쪼가리들을 보며 기겁했다.


  정말 예상치 못하게 시작된 퍼즐 맞추기였다. 그러나 평소 숨겨온 은근한 승부욕이 건드려지기라도 한 것인지 나의 도전의식이 불타 올랐다. 옆에서는 한두 번의 퍼즐 맞추기 경험이 있는 짝꿍이 진지한 투로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일단 가장자리부터 만들어야 돼”


  천 개의 퍼즐조각을 전부 쏟아놓은 바구니를 커다란 앉은뱅이책상 위에 놓고 가장자리 모양처럼 보이는 조각들을 전부 찾아내 한데 맞추니 얼추 진도가 나가기 시작했다. 고난은 ‘할 만하네’라는 생각이 들라치면 휘몰아치듯이 왔다. 퍼즐은 진득한 인내와 해내겠다는 의지와 일일이 맞춰보는 섬세함이 필요한 고된 일이었다. 개인적으로 사람들은 이걸 하면서 왜 여가시간을 보내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지금은 해바라기 밭이 되어 우리 집 거실에 걸린 지 2년쯤 된 액자를 보며, 나는 저걸 해낸 나 자신의 과거에 대해, 도대체 어떻게 해냈는지 미스터리한 추억에 잠기곤 한다. 퍼즐을 맞추면서 무엇보다 가장 골 때렸던 건, 장시간 앉아있다 허리가 아작 나는 것도, 한두 시간쯤 막혀있어 진도 빼기 어려운 구간도, 한 조각이라도 사라질까 내내 마음 졸이며 임했던 시간도 아니었다. 그건, 퍼즐 한 조각을 집어 들면서 이건 도대체 어디쯤 있어야 할 조각인지 도무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던 나의 까막눈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한 조각의 퍼즐 조각을 내 눈앞에 두고 보면서도, 그것이 어떤 그림으로 완성이 될지 정말 아무리 뜯어보고 굴려봐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것들을 어렵사리 한데 모아 전체의 그림을 완성해 냈을 때에야 비로소 나는, 그 한 조각이 갖는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샛노란 해바라기 밭은 단 한 조각의 퍼즐 조각이라도 빠져서는 절대로 완성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가족 중 그 누구도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없었지만 유독 오빠의 행동은 갈수록 못 미더운 쪽으로만 향하는 것 같았다. 낮이고 밤이고 컴퓨터 앞에서만 앉아서는 게임만 해대는 오빠가 나는 한동안은 무척이나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틈만 나면 오빠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잔소리를 해대곤 했다.


  본래도 서로를 보면 까내리기에 바빴던 흔하디 흔한 관계 축에 속한 우리 남매는 갈수록 사이가 나빠졌다. 나는 오빠가 못 미덥다는 이유로 오빠를 싫어했다. 그 뒤에도 오빠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는데, 군대를 가기 전부터 집에 눌러앉아 게임을 하던 오빠는 군대를 나온 후에도 게임만 했고, 고향에서 일자리를 구해 잘 지내는 듯싶더니 저녁이면 술에 취해 어머니에게 분노를 드러냈다.


  오빠의 취한 분노는 여동생인 우리에게도 예외 없이 표출되었는데, 욕은 기본에 외모 비하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집안 환경에 대한 원망 섞인 신세한탄을 일삼았다. 어머니에 대한 미움을 드러내는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그런 오빠를 대하기가 날이 갈수록 껄끄러웠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오빠와의 대화는 항상 아슬아슬했는데도 오빠에게 지기 싫었던 나는 종종 날 선 말들을 던져 오빠의 심기를 건드렸다. 때문에 가족들이 집에만 모여 있으면 싸움이 일었다.



  만약 내 인생을 표현할 수 있는 천 피스의 퍼즐조각이 나에게 주어진다면 나는 150개의 퍼즐 조각을 새까만 색으로 칠한 뒤 그것을 오빠와의 관계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그리고 사이사이 스무 개쯤의 조각들을 따로 빼내어 반딧불이를 그려 넣고 싶다. 너무도 어두웠지만 어둠 안에서는 반딧불이가 더 선명하게 보이는 법이니까.


  어쩌면 누구보다도 자신의 마음을 마주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자신의 마음은 서슬 퍼런 분노가 되어 타인을 괴롭히고 궁극에는 자신마저 갉아먹게 되는 거라고, 20대의 오빠는 나만큼이나 역시 어렸고 어리석었기에 방법 모를 방황에 시달렸던 거라고,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낸 그의 공로를 이제는 알아볼 법하지 않냐고, 그런 생각들이 서른넷 내 앞에 당도해 왔다.


  나라는 인간이 가져왔던 인간 존재에 대한 연민은 보다 더 깊고도 폭넓은 공간이 되어 나를 확장시켰다. 그건 그토록 우매하고, 무책임해 보였던 오빠로부터 얻어낸 결과물이었다.


  내 인생의 전체 그림을 보며 의미 없는 순간은 단 한 조각도 없었다고, 모든 순간은 살아 숨 쉬는 좋은 글이었다고, 도대체 무슨 그림인지 짐작 한 스푼도 쉽게 내놓을 수 없었던 오빠와의 시간들도 그런 글이 되었다고, 그건 이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오빠를 보며 해 줄 수 있는 말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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