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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양 Apr 15. 2024

나를 단순하게 만드는 것

“찬란하게 살아줘서 고마워”



목적은,
존재가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존재라는 것은 그만큼 단순한 것입니다.

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 <다릴 앙카>








  개굴개굴개굴


  어린 시절, 노을 녘을 마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개구리 소리가 논둑을 가득 메우며 우렁차게 울려 퍼지곤 했다. 그런데 우렁차기만 하던 그 소리가 유난히도 구슬프게 들렸던 날이 있었는데, 왜인지 그때에는 노을의 주홍빛도 유독 짙어 보이기만 했다. 어둠이 자욱하게 깔리기 전이면 마지막 힘을 짜내듯 노을의 주홍빛은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새빨개지고, 살아있는 개구리들의 소리는 더욱 처절하게 들렸다. 그래서 성인이 된 나는 종종 저녁 어스름이 되면 슬펐다. 논두렁을 가득 메웠던 개구리들의 소리가 아직도 내 마음에 울리는 것 같아서, 그 시간이 되면 나는 아직도 슬펐다.







  “너는 일할 때 실수 같은 거 잘 안 하지?”


  오랜만에 만난 친구 민혜에게 내가 물었다. 평소 차분하고 똑 부러지는 성격의 민혜를 보니 실수 같은 건 모를 것 같아 내심 부러운 마음에 질문을 던진 것이다. 게다가 공기업 직원인 데다, 7년 차에 회사를 때려치운 나와는 달리 벌써 10년 차에 접어든 민혜가 꽤 대견스러웠다. 그런데 나의 질문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치 않은 대답이 나에게 돌아왔다. “아니, 나도 실수 많이 해. 내가 좀 엉성한 면이 있거든.”


  나의 추측과는 다른 대답에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내가 더 궁금했던 건 다음 질문이었기 때문에, 나는 곧바로 민혜에게 다음 질문을 내놓았다. “그럼… 그럼 극복은 어떻게 했어?”


  퇴사 후, 나는 다시는 직장 생활을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곧바로 다른 직장으로 이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냥 집에서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부담이 적을 것 같은 짧은 시간대의 아르바이트 하나를 했다. 샐러드 가게였고, 샐러드 재료 준비 및 매장을 보면 되는 일이었다. 일은 어렵지 않았고, 그동안 집안일을 해오던 나로서는 적성에 맞는 듯 재밌기까지 했다. 그런데 하루는 샐러드에 들어가는 재료 하나가 심하게 변색이 되어 고객에게 클레임이 들어왔다. 내가 판 샐러드였지만 내 후임 시간에서 걸려온 클레임이었기에 내가 수습을 할 수는 없었다. 샐러드야 다시 만들어 나가면 될 일이었지만 나는 신중하게 임하지 않은 나 자신이 부끄러워 몇 날 며칠 속앓이를 했다.


  민혜에게 던진 질문에 어떤 심오함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내 며칠간의 속앓이가 나의 소심한 성격 탓인지, 평소 나의 덜렁대는 행실 탓인지 스스로 자문해 보다가 혼자 너무 오버를 떨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변에 조언을 구해보고자 가볍게 던진 질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돌아온 민혜의 대답이 너무나 깊어서 나는 순간 현실성을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8년 전, 어릴 적 종종 보아 나도 얼굴을 알고 있었던 민혜 친오빠의 부고 소식이 들렸다. 오빠에게 갑자기 암이 찾아왔다고 했다. 속히 치료에 들어갔지만 달리 차도가 없었고, 곧 오빠는 세상을 떠났다. 민혜 오빠는 우리보다는 단 세 살이 많았기 때문에 그 소식을 막 들었을 때, 나로서도 가슴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떤 가족을 떠나보낸 들 슬프지 않겠냐마는, 먼저 떠난 오빠의 나이가 어렸기에 상당히 안타까웠다.


  그동안 민혜는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우울감은 날로 심해지고,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그래서 심리센터를 다녔다고 했다. 그곳에서 상담을 받고 나니 그나마 조금씩 괜찮아졌다고 했다. 그러고선 민혜는 덤덤하게 내게 말했다. “극복…? 그냥…. 살려고. 살려고 하니까 그런 건 돌아볼 여력이 없이 지나간 것 같아.”


  민혜의 말을 들으며 나는 그녀가 얼마나 많은 날을 혼자서 울었을지 잠시간 짐작밖에 할 수 없었다. 민혜가 그때의 일을 덤덤하게 내뱉을수록, 그 말을 그렇게 꺼낼 수 있을 때까지 혼자서 얼마나 삼켜내고 또 얼마나 단련해 왔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다만 문득 민혜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살아줘서, 이렇게 찬란하게 살아줘서 말이다.



  동시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너무도 많은 편견과 변명을 대고 삶에 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중요한 것은 더 잘, 더 많이, 더 높거나 더 빠르게가 아니라 살아있다는 그 자체를 받아들이며 사는 것은 아닐까.‘ 오로지 살기 위한다는 근원적인 욕망은 나를 단순하게 만든다. 매 순간을 통틀어 그저 살고 싶어 다른 것이 보이지 않았다던 민혜의 대답이 한동안 내 마음에서 머물다 갔다. 그 위로 어둠이 깔리면 유난히도 처절했던 논두렁 개구리들의 울음소리가 유독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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