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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양 Mar 24. 2024

금숙 씨의 삼만 원

“그녀를 진실로 마주해야 하는 시간“




하느님은 그에게
웃으면서 말씀하셨지요.

“언제나 기억하거라.
나는 너에게 천사 말고는
아무도 보내지 않는다”


작은 영혼과 해 <닐 도널드 월쉬>








  오후 두 시 반, 늦은 점심을 먹고 나른해지려던 찰나 카톡 하나가 왔다. 카톡을 보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여사님, 어디에서나 대우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 폰에는 여사님이라는 칭호로 저장해 둔 나의 어머니 금숙 씨였다. 얼마 전 갈비가 먹고 싶다는 딸내미의 말이 내심 마음에 걸렸는지 갑자기 삼만 원을 보내겠다는 문자를 보내온 금숙 씨다. 말은 제법 상대의 의견을 묻는 듯한 뉘앙스를 띄고 있지만 상당히 고집스러운 성정을 지닌 금숙 씨를 가장 가까이에서 오래 봐온 나로서는 그 말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건 ‘난 무조건 보낼 테니 알아서 받아 쓰거라’는 부드러움을 가장한 으름장이었던 것이다.


  약 사 년 전쯤인가, 퇴사를 입에 달고 살던 딸이 정말로 홀연히 직장을 관둔 뒤부터 금숙 씨의 뜬금없는 입금 제안이 끊이지 않았다. 그때쯤엔 나도 아직 손에 쥐어둔 퇴직금도 있겠다, 조만간 돈 들어올 일이 있을 거라 철석같이 믿고 금숙 씨의 제안을 가벼이 여기며 거절을 일삼았다. “아니야, 나 돈 있어. 맛있는 거 맨날 먹으니까 걱정 붙들어 매셔요.”


  금숙 씨에게 내놓은 말이야 엄마의 마음을 배려한 상냥의 딸의 어투였지만 나는 사실 내심 자존심이 상했었다. ‘나이 삼십 줄에 여사님한테 손을 벌리려고? 아이고 못할 일이지, 내가 용돈을 줘도 모자랄 판에.’





  사실 삼만 원이라는 돈의 가치를 굳이 따지고 들자면, 누군가의 경조사에 그 돈을 내느니 안 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남의 행사를 챙기기엔 적은 돈이고, 밥 한 끼 야무지게 사 먹고도 커피 두 잔 이상은 사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내가 가지기엔 넉넉한 돈이 아닌가. 그리고 부모님이 딸에게 주는 용돈으로 본다면야 받는 이도 주는 이도 부담이 적은 금액은 아닌가. 실은 그렇게 깊게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기쁘게 받으면 그만일 돈이었다. 어쨌든 이 돈을 주고받는 행위로 인해 어머니의 걱정을 한시름 놓게 한다면야 딸로서는 그만한 효도가 없고, 나로서도 한 끼 이상은 해결할 용돈이 생기니 채워진 주머니 사정만큼 마음도 풍요로워질 테니, 누이 좋고 매부도 좋은 그런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금숙 씨가 내놓은 삼만 원을 쉬이 받기가 싫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속에서는 ‘그 돈 받아 뭐에 쓰겠소’ 하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라 퉁명하게 쏘아붙이는 말투로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나의 깊은 저면에는 일종의 반항심 같은 마음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건 금숙 씨에 대한 연민인지 원망인지 모를 뒤죽박죽 한 마음덩어리였다.


  아버지와 대판 싸운 후 옥색빛 개수대 앞에 앉아 서럽게 울던 금숙 씨에 대한 내 어린 시절 기억 저편 너머로, 왜 저녁을 해놓지 않았냐고 잔뜩 성내던 금숙 씨의 표정이 오버랩되었다. 당뇨병을 오래 앓은 아버지 옆을 꿋꿋하게 지켜낸 금숙 씨의 인생이 얼마나 고달팠을지 모르지 않은 나는 금숙 씨에 대해 깊은 동정의 마음이 있었다. 또한 고생스러웠던 나날에 대한 보상을 바랄 새도 없이 남편을 일찍 떠나보내고, 어린 새끼들을 홀로 책임져 온 어미의 수고로운 삶에 대한 노고를 모를 정도로 나는 무정한 딸은 더욱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한 남자의 아내로서에 대한 연민이었다. 어쨌든 당시의 나는 한 여자의 인생을 이해하기에는 어렸고, 그 시기에 어머니의 자리에 금숙 씨가 있었다. 금숙 씨는 한 인간으로서는 대단할지언정 삼 남매의 어머니로서는 꽝이었다. 늘 자식이 먼저인 양 종내 선택은 금숙 씨 자신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나는 앞으로의 삶이 너무나 막막하기만 했다. 둥지를 벗어난 새끼새는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둥지 안에 머무르는 동안 앞으로 살아가는 법에 대해서 아무것도 배워 온 바가 없는 새끼새였다. 그것은 삼 남매 모두 마찬가지였다. 금숙 씨는 가정의 경제적인 부분을 신경 쓰는 일 외에는 대부분의 면에서 무관심을 일관했다. 가끔 나는 그것을 ‘엄마는 자식을 너무도 믿었기 때문이야’라고 혼자 되뇌어 보기도 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내 앞으로 당도한 진실은 항상, 완벽한 방목은 무관심의 또 다른 말일 수 밖에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내 소싯적 방황에 대한 탓을 누군가에게 돌리고 싶은 나의 졸렬한 마음으로부터 생겨난 감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가장 믿었고, 그리고 가장 사랑했기에. 그럼에도 나는 그만둘 방법을 몰랐다.


  자식들의 방황을 그대로 지켜봐 주지 못하던 금숙 씨. 갑자기 하늘에서 번개가 떨어진 듯 번뜩이는 각성으로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없었던 딸의 처절한 번뇌를 인정해주지 않던 금숙 씨.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딸의 무기력을, 집안일을 해놓지 않았단 이유로 책망하던 금숙 씨. 엄마의 진심 어린 관심을 가장 원했던 자식의 그 순수한 마음을 전혀 알아봐 주지 않았던 나의… 금숙 씨. 기대가 너무 커버린 탓일까. 유독 더 밝은 햇살에 더 새까만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처럼 사랑했고 믿었던 만큼 미운 마음은 더 커지기만 했다.


  나는 그런 금숙 씨가 원망스러웠다. 원망은 서서히 타오르는 불씨처럼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차근차근 나를 옥죄어 왔다. 그것은 쉬이 사라지지 않고 십 년 이상의 어둠이 되어 나를 따라다녔다. 단절된 마음에는 그 어떤 것도 받지 않으리라는 마음도 포함이었다. 금숙 씨가 딸에게 주려는 그 삼만 원이 이제 와 죄를 씻어내고 싶은 엄마의 얄궂은 발악 같아서 꼴 보기 싫었다.




  그럼에도 실은 나는 금숙 씨를 가장 열렬히 사랑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일까. 그래서 더욱이 부단히 노력하게 되었던 것일까. 그녀를 진실로 보지 않으려 했던 건 내가 가둔 과거 때문은 아니었을까. 몇몇의 서글픈 선택이 그녀를 영원히 단죄할 가치가 있는 걸까. 금숙 씨는 금숙 씨로서 가장 진실한 선택을 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나는… 결국은 용서라는 이름으로 그녀라는 한 사람을 진실로 마주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액정에 여사님이라는 글자가 뜨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쌀 보내줄까? 반찬은? 요즘 생활은 어때?” 금숙 씨의 질문이 한 트럭이다. 여전히 별다른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 딸의 안부가 걱정이 되어 다다다 몰아붙이듯 쏟아내는 중인 것이다. 내가 더 이상 금숙 씨의 질문을 거북스럽게 느끼지 않게 된 건 금숙 씨의 모든 행동이 결국은 사랑으로부터 발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터이다. 조각나기 쉬운 그 의도를 섬세하게 알아듣기 위해 이토록 시리고도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항상 그 자리에 서서 종종걸음으로 서성이던 금숙 씨, 실은 본인도 그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기에 줄 수 없었고, 아마도 방법을 몰랐을 금숙 씨는, 이제는 제법 자식 편에 서서 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금숙 씨에게 이렇게 답신한다.



응. 엄마,
쌀은 다음에 보내주고,
집반찬 먹고 싶어.

그리고 생활비로
삼만 원 좀 보태줘ㅎㅎㅎㅎ


실은 내가 언제나 사랑해왔던 나의 여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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