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독서 / 김왕노
서로의 상처를 더듬거나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는 게
누구에게나 오래된 독서네.
일터에서 돌아와 곤히 잠든 남편의 가슴에 맺힌 땀을
늙은 아내가 야윈 손으로 가만히 닦아 주는 것도
햇살 속에 앉아 먼저 간 할아버지를 기다려 보는
할머니의 그 잔주름 주름을 조용히 바라보는 것도
세상 그 무엇보다 중요한 독서 중 독서이기도 하네.
하루를 마치고 새색시와 새신랑이
부드러운 문장 같은 서로의 몸을 더듬다가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는 것도 독서 중 독서이네.
아내의 아픈 몸을 안마해 주면서 백 년 독서를 맹세하다
병든 문장으로 쓰여진 아내여서 눈물 왈칵 쏟아지네.
《김왕노 시인》
경북 포항 출생. 199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황금을 만드는 임금과 새를 만드는 시인』 『슬픔도 진화한다』『말달리자 아버지』『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중독』『복사꽃 아래로 가는 천년』 등이 있다. 한국해양문학대상, 박인환 문학상, 지리산 문학상, 한성기 문학상, 풀꽃 문학상, 황순원 시인상 등 수상. 현재 『웹진 시인광장 』주간, 『시와 경계』 주간.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는 옴니버스 구성에 ‘인권과 호식’ ‘미란과 은희’ ‘옥동과 동석’ 등 오랜 친구나 가족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았는데, 하나하나 상대에 대한 지독한 오해로 가득 차 있다. 갑으로서는 도저히 을이 이해될 수 없는 상황인 게 맞는데, 을의 입장을 알고 나면 이해를 넘어 공감이 일어나면서 오히려 갑을 원망하게 된다. 다시 갑의 심정을 떠올리면 둘 다 그럴 수 있었겠다는, 누구도 맞고 틀린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롤러코스트에 기꺼이 탑승하게 만드는 것은 작가와 배우들의 힘이지만, 우리 삶의 장면들이 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경향신문 송혁기의 책상물림) 이렇듯 나의 읽기는 어느 한쪽에 편향된 것이 아니라 혹은 어느 한쪽을 지양하거나 하는 것이 아닌, 올바른 균형감각을 지닌 것이었을까? 시인의 시를 읽으며 반성하게 된다. 나는 나만 옳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나만의 좁은 시야에 갇혀서 세상을, 내 주변 사람들을 읽고 해석하여 ‘오해’라는 뭉게구름만 잔뜩 키워낸 것은 아니었을까? 돌아보게 된다.
우리들은 하루 종일 읽고 있다. 눈으로 귀로 코로 입으로 읽고 말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듣고 있다. 나는 어떤 편견도 없이 바르게 읽고 있었던 것일까?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내 말만 옳다고 생각하며 살진 않았을까? 아집만 키우며 살아온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생각하는 것은 얼마만큼 진실에 가까운 것일까? 내가 읽은 오늘 하루는, 한 줌의 안개도 없는 것이었을까? 나는 어떤 편견도 없이 타인을 공들여 읽을 노력이라는 것을 하며 살아왔을까? 내가 읽고 짜깁기 한 세상은 정말 세상의 참모습일까? 내가 읽고 재구성한 너는 정말 너일까? 떨어지는 빗방울의 개수만큼 많은 질문들이 뇌리를 스친다. 사실 이런 질문은 몇 년 전부터 시작된 것이어서, 친구와 나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제는 나만 맞다고 말하지 못하겠다고,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어떤 사람은 그 사람대로의 입장과 전력투구가 있었을 것이라고. 이쪽과 저쪽을 아울러 포옹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일 것이다. 아니면 삶이 치열함을 잃고 시들해져 간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서로의 상처를 더듬거나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는 게 / 누구에게나 오래된 독서”라고 시인은 말한다. 나의 “오래된 독서” 는 타인을 향하여 활짝 열린 것이었을까? 자신을 바로 읽고, 자신의 민낯과 마주하는 일은 실로 어려운 일이고 두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하여 뼈만 남은 자신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일까? 다시 바르게 읽는 방법 외엔 아무것도 자신을 위로해주지 못할 것이다. 이후의 내 독서가 나를 보다 투명하게 읽고, 진실로 “서로의 상처를 더듬거나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줄 줄 아는 독서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파트 가가호호 고루 들이치는 빗방울처럼, 사람을 구분하지 않는 천변 큰 초록들처럼, 그곳에서 마주친 유난히 눈 맑고 기품 있던 길고양이처럼...(홍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