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저녁부터 피부가 말썽이더니 얼굴 이곳저곳이 벌개지고 벗겨져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결국 피부과를 가서 물었더니 덤덤하게 아토피 있냐며.
어젯밤에 혼자 건선일지 건조증일지 피부염일지 인터넷을 뒤지고 곰곰히 생각했었는데 왠걸.
십년만에 아토피가 완치는 없다는 걸 상기시키려는 마냥 불쑥 나타나서 심란해졌다.
아토피하면 어릴 때 생각이 난다.
어렸을 적에 아토피로 꽤나 고생했는데, 어떤 책자에선가 아토피의 어원이 그리스어로 이상한, 비정상의 따위의 뜻이라고 쓰인 걸 읽고 충격 받은 일이 있다.
어린 마음에 비정상이라니! 내가 비정상이라니...! 정도의 감정을 느꼈으리라. 여즉 그 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생각나는 걸 보면 큰 충격이었나보다. 놀라운 것은 이 글귀를 보고나서 의식적으로 아토피가 있는 팔을 가리고, 최대한 긁지 않으려 애썼던 기억이 난다. 참지 못하게 가려울 때에도 최대한 티가 나지 않게 '적당히' 긁으려 애를 썼다.
여하튼 그때의 나는 비정상, 이상의 범주에 드는 것이 무척이나 걱정스럽고 싫었던 모양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이분법은 꽤 오래 전부터 만들어졌고 점차 공고해져서, 비정상의 범주에 드는 일은 너무나도 걱정스럽고, 때론 공포스런 일이었다.
이 정상과 비정상의 대립식은 종종 평범과 비범으로 환원되어 비범의 카테고리에 들지 않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게 했다.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어려워,
뭐든지 적당하게 사는 게 제일 좋겠어
이런 말이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것 또한 이러한 인식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결국 정상과 비정상, 평범과 비범을 나누는 건 결국 그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어떠한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이러한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가 정말 개인이 확립하고 결론지은 것이냐하는 문제이다.
사회 안의 개인이 온전히 자기만의 독립적인 사고를 가질 수 없다는 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이에 대해 얘기하려면
사회 구조 내에서 진리라고 포장된 것을 '학습'하고 '양육된' 개인이 온전히 자유로운 사고가 가능한가를 따지기 위해 사회구조, 이데올로기, 패러다임, 진리의 개념을 거슬러 올라가 되짚어야 하는 문제다.
여하튼, 정상과 비정상의 패러다임 또한 사회에서 학습된 것들 중 하나인데 그 어린 나이의 내가 걱정하고 두려워 할 만큼 무서운 개념이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이제 와 생각하면 그저 긁고 말 일이지만, 그때의 나는 나의 아토피가 누군가에게 비정상으로 보일까 너무도 걱정스러웠다 보다. 고작 긁는 일 만으로도.
(아, 그리고 지금와서 보니 아토피의 어원 atophos의 '비정상의, 이상한'이란 뜻의 수식 대상이 아토피를 겪는 사람이 아닌 그 증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즉 원인 불명의 피부병이란 뜻이었다.)
간지러운 얼굴을 박박 긁으며 어린시절의 나를 생각하니, 몸이 간지러워 마구 긁는 게 비정상으로 보일까 걱정하는 모양이 떠올라 안쓰럽다.
어쨌든 나는 또다시 아토피 증상이 나타났고 당분간 밀가루와 가공식품을 끊어야한다.
끊기도 전인데 귀신같이 빵과 떡볶이가 너무나도 먹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