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개꽃 Aug 26. 2020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두 번째 이야기

해피(누렁이)가 무사히 새끼를 낳았습니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를 기억나는 대로 옮기자면 이렇습니다.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살피던 수녀님(?)이 하느님을 향해 외쳤다고 합니다. 하느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상황을 만드실 수 있냐고요. 그러자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너를 보낸 것이란다."


하느님이 모든 곳에 다 계실 수가 없어서 어머니를 보냈다는 말도 있지요. 대체 이 말이 무슨 뜻일까 헤아려보면 모든 사람 안에 하느님이 계시다, 나(하느님)를 사랑하는 것처럼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하느님은 다양한 모습으로 곳곳에 그 모습을 드러내신다 등등의 말과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느님의 선함이 바로 인간의 속성 중 하나라는 것이 아닐까 하고요.


갑자기 이 생각이 난 건, 얼마 전 해피가 새끼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서였습니다.






아직은 그래도 세상이 살만하죠?


신고를 받고 시청에서 설치한 포획틀은 나흘 만에 철거되었습니다. 해피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절대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기에 방법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이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 걱정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긴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해피는 그동안 늘어지게 낮잠을 자던 나무 그늘을 버리고, 조금이라도 비를 덜 맞을 수 있는 건물 구석으로 몸을 피했는데, 거기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입구라 한시도 편히 있지 못하는 눈치였습니다. 다행인 것은 이제 사람들이 해피에 대해 더 이상의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냥 저 개가 저기 있구나 정도이고, 위협을 가하면 어떡하나 걱정은 내려놓은 거 같아 보였습니다.


애정 어린 사람들만이 해피가 보이지 않으면 걱정하고, 누군가 본 사람이 있으면 서로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해피의 무사함에 안도를 하고, 어디에 새끼를 낳을지 궁금해했고, 사료나 캔, 소시지 등을 갖다 주며 건강하게 출산하기를 바랐습니다.

홍수로 인해 침수됐다는 소식이 한창이던 8월 초에는 저도 급기야 차를 몰고 학교로 와 해피가 안전한지 확인할 정도였지요. 다행히 처마 밑에 앉아 있는 해피를 보았고 가져간 사료와 캔을 맛있게 먹는 걸 보고서야 안심이 된 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8월 15일 저녁에 주민 한 분으로부터 한 통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누렁이가 새끼 낳은 거 아시죠? 컨테이너 뒤에 새끼를 낳았는데 하얀 색깔 애기가 꼬물거리는 거 보니까 그때 말씀드린 흰둥이가 아빠인 게 확실해요 ㅎㅎ 밥 주려고 갔더니 어떤 분이 벌써 미역국을 갖다 놓으셨더라고요. 아직은 그래도 세상이 살만하죠? 궁금해하실 거 같아 연락드려요.


마침 휴가를 내고 3일째 되던 날이라 한 번은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던 때였습니다. 사료가 다 떨어져 배고플 텐데 들여다보지 못한 미안함이 몰려왔던 때인 만큼, 위 소식은 마치 구원의 메시지처럼 느껴졌습니다. 어깨에, 가슴에 무거운 돌이 하나 얹어져 있는 듯했는데, 돌 대신 날개가 달려 날아갈 것도 같은 기분.

해피를 데려가고 싶어 했던 여사님은 여전히 새끼들 걱정을 하고 계시며 아침마다 어디 있나 찾으러 다니십니다. 물론 저도 사료를 매일 그릇에 담아놓고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따뜻한 마음은 조금 더 세상을 살만하게 합니다.



                                                     만삭일 때의 해피





가끔은 동물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웁니다


지난주 해피가 지나가는 걸 보았습니다.

해피~ 하고 부르자 쳐다보더니 걸음을 멈추는 거예요.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함께 걷는데 눈빛이 한결 편안해 보였습니다. 젖은 축 늘어져 있었지만 몸은 가벼워졌는지 발걸음이 경쾌하게 느껴졌어요. 한두 번 마주친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건강해 보인다고 했습니다. 눈빛도 땡그래져 있고 입도 반쯤 벌려져 있는 게 꼭 웃는 것처럼 보였지요. 한참은 절 바라보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알고 보니 사료를 먹으러 가던 길이었습니다.


해피는 참 복이 많습니다. 해피를 알아보는 사람도 많고 안부를 걱정하는 사람도 많고 먹이를 챙겨주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냥 거리의 개인데도 말이에요. 그건 해피가 그동안 보여준 점잖은 모습 때문인 거 같아요. 마음을 활짝 열고 먹을 걸 달라고 애교를 부리지는 않지만 낯설고 두려우면 짖지 않고 그냥 자리를 피해 갑니다.  따라다니지도 않고 겁을 주지도 않아요. 맛있는 걸 주면서 가까이 다가가려 하면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람과의 신뢰를 놓지 않으니 어찌 미워하거나 싫어할 수 있겠어요. 


비가 오면 피할 곳을 찾고, 배고프면 또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고, 쉴 곳이 있으면 늘어지게 잠을 자고, 무서우면 몸을 피할 뿐, 투덜거리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해 본능대로 움직이는 것. 자신을 돌보고 살피는 것이 전부인 해피를 보며,  해피보다 근심과 걱정으로 대부분을 사는 제가 더 불쌍하게 보였습니다.


지난번 해피가 고기 간식을 앞에 놓고도 먹지 않고 피해 간 적이 있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라 당황스럽기도 했고 무안하기도 했는데, 자꾸 다가가려는 저를 조용히 지나쳐 어디론가 가더라고요. 걷다가 한 번은 뒤를 돌아보며 저를 한참 쳐다보더니 제 갈길을 갔는데, 전 마치 실연당한 여자처럼 잠시 가슴이 시렸습니다. 연인 간에도 내가 좋은 게 상대가 좋아하는 게 아니고, 뭔가를 자꾸 해주려는 행동이 꼭 상대를 기쁘게 해주는 게 아닌 것처럼 동물과 사람의 관계도 자기 입장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서 귀 기울이는 연습이 필요한 거 같습니다.


아직 새끼는 컨테이너 박스 깊숙한 곳에 있어 본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해피가 그 앞을 잘 지키고 있다니 어미젖과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겠지요. 폭염과 태풍이 있긴 하지만 긴 장마가 끝난 후에 새끼를 낳은 것도 다행이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가을이 다가오니 조금은 덜 걱정해보기로 했습니다.



소통을 위한 책 읽기


강이 [이수지 그림책/비룡소]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에 최종 노미네이트 된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입니다. 그저 검은 개에 불과했던 개가 '강'이란 이름을 얻어 한 가족의 일원이 된 이야기입니다. 데생으로만 표현했는데도 강이의 슬픔과 기쁨, 행복이 고스란히 전해져 옵니다.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에서 '전'에 해당하는 강이의 간절한 그리움과 외로움이 한가득 전해져 올 때 결말에 이르러 펼쳐지는 재회의 장면은 눈물 한 방울 흘려줘도 좋을 만큼 행복을 전해줍니다.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진 않지만,
보고 싶어요



    



작가의 이전글 미련스러울 만큼 부딪쳐야 성장하는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