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해 Dec 05. 2020

작가의 시작

창작의 벽을 인생의 문으로 바꾸는 용기와 영감


 작가는 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로 머물러 있는 것이 중요하다.  


 작가란 계속해서 쓰는 사람이다. 작가란 오늘 아침에 글을 쓴 사람이다. 그만큼 작가란 한 번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글을 쓰고 책을 펴내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책의 저자 바버라 에버크롬비의 주장이다.

 계속해서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을 쓰는 시간을 정해두어야 한다. 하루 중 자신의 창의성이 최대한 발휘되는 때가 언제인지 알아내서 그 시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만에 하나 글이 써지지 않는다면 서재에 앉아 있거나 혹은 서서 서성거리거나 하면서 최소한 글을 쓰는 일에 대하여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좋다. 아니면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작가의 책을 찾아서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 시간은 새벽이어도 좋고 낮이어도 좋고 또는 밤이라도 좋다. 어떤 이는 ‘밤이 선생이다.’ 라는 말로 글을 쓰기엔 역시 밤이 좋다고도 하지만 그것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 위대한 작가 헤밍웨이는 항상 오전 시간에 서재에 앉아서 타이프라이터로 글을 썼다고 한다. 미국의 최남단 키웨스트에 있는 헤밍웨이가 살던 집을 방문했을 때 보았던 그의 아담한 서재를 떠올리며 나도 매일 아침시간에 글을 써보기 위해서 노력해본 적이 있다.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에 오늘을 사는 의미를, 이번 생을 살아가는 이유를 짚어보는 일도 행복한 일이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 아니 작가로 머물러있기 위해서 오늘 아침에도 컴퓨터를 열어본다.     

 

 글을 쓴다는 것은 늘 위험하고 두렵게 느껴진다. 그것은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이든 이미 몇 권의 책을 펴낸 작가든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당신의 세계관을 부정할 수도 있고, 당신에게 화가 나서 인연을 끊은 수도 있으며, 당신 자신이 웃음거리가 되거나 너무 많이 혹은 너무 적게 드러낼 수도 있다는 걱정이 따른다.

  -작가의 시작 서문 중에서-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돌아다닌다. 또한 우리는 모두 실망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장르를 불문하고 작가 자신의 진실이 드러나게 마련이다.글을 써서 발표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그 가면을 벗어야하는 일이 될 수 있고, 작가는 그 가면 벗기의 두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더러는 나 자신도 몰랐던 나의 진짜 감정을 알게 되어 위험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 알리고 싶지 않은 일이 있다. 또 내 이야기가 아니라 가족의 이야기를 쓸 때는 가족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언제나 고민하게 된다. 내 주변 어느 상대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때도 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사실을 까발려 누군가의 인격을 침해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이야기를 통해서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삶의 반짝이는 진실 같은 것을 찾아나가는 일이라는 걸 생각한다면 우리는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엄청난 삶의 혼돈을 정돈하고 저편으로 건너간다. 또한 글을 씀으로써 좋은 순간들을 붙잡아둔다. 글을 씀으로써 우리는 더욱 깊이 있고 의식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작가의 시작 서문 중에서-     


 바버라 에버크롬비가 서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글쓰기를 통해서 엄청난 삶의 혼돈을 정돈하고 저편으로 건너갈 수 있다면 글쓰기란 정말 대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삶의 혼돈을 정리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글쓰기 강좌의 문을 두드리고 글을 쓰는 작가가 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슴 속에 상처 입고 웅크리고 있는 조그만 어린아이 하나씩 품고 오는 것은 아닐까. 겉으로는 평온해보이지만 그 마음속에는 엄청난 분노, 끊임없이 흐르는 슬픔이나 우울, 그 무엇으로도 떨쳐낼 수 없는 불안이나 두려움 같은 것을 품고 있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 가슴 속 한쪽에는 옹달샘처럼 퐁퐁 솟아나는 사랑이 함께하고 있을 수도 있다.

 나는 처음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무언가 이 세상을 향해 할 이야기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세상을 향해 무언가를 따져보고도 싶었고, 이 세상 사람들과 마주 앉아 도란도란 수다를 떨고도 싶었다. 때로는 무엇 때문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싶기도 한 기분이었다. 한 마디로 이 세상을 향해 할 말이 많았다.

 테리 템페스트 윌리엄스는 ‘나를 발견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했다. 작가 박완서는 ‘쓰는 일은 어려울 때마다 엄습하는 자폐(自閉)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구하고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켜주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노년에 펴낸 산문집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늦은 나이에 소설이라는 걸 써보게 되면서 스스로 치유 받고 위안을 얻은 것처럼 느꼈다고 하면서, 글이 가지고 있는 쓰는 이와 읽는 이가 함께 누릴 수 있는 위안과 치유의 능력에 대해 말하고 있다.

 과거는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져버린다. 도로시 앨리슨은 ‘나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자신뿐이다.’라고 했다.

 

 글을 쓰고 작가가 된다는 것은 나의 삶에 그리고 우리들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멋진 일이다.


 글쓰기는 우리 삶에서 행복하고 찬란했던 순간만이 아니라 오히려 인생을 살면서 낯설고 힘들고 외로웠던 시간들에게 손을 내밀어 소중한 의미를 쥐어주는 일이다.


 글을 쓰는 법은 책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쓰고 싶은 종류의 글을 읽고 공부하는 것, 그리고 직접 써보는 것이 유일한 학습법이다.

-작가의 시작 서문 중에서-     

 

 그렇다면 과연 글을 쓰는 법은 책으로 배울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글쓰기가 배울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하지만 에버크롬비는 배움을 통해 습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글쓰기의 기술이나 기교 같은 것들뿐이라고 말한다.

 글을 쓰기 위해서 꼭 필요한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적절한 관찰력 같은 것을 책을 통해 배우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학적인 글쓰기에 필수인 두 가지 이상의 사실을 연결하여 하나의 은유를 찾아내는 일이나 그 은유를 통해 자기만의 인생철학을 발견하는 일은 책을 읽고 배운다기보다는 작가 자신의 세계관이나 문학적 역량에 달려있는 문제다.

 자기가 겪은 다양한 경험이나 이야기를 하나의 줄에 엮어서 문학적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어떤 논리를 만들어 내는 일 따위는 책을 통해서 배우기는 어렵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런 것은 글쓰기의 기술 그 이상의 삶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직관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에버크롬비가 위에서 제시한대로 자기가 쓰고 싶은 장르의 좋은 작품들을 찾아서 많이 읽고 그리고 많이 써보는 것이 글쓰기의 왕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읽기는 곧 쓰기이며 책을 읽는 것은 그저 다른 사람들의 생각들 들여다보는데서 그치지 않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읽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서 나만의 고유한 생각이나 주장 그리고 철학 같은 것을 끌어내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이다.


 바버라 에버크롬비의 <<작가의 시작>>은 이미 작가가 된 사람들 그리고 처음 작가가 되어보려는 사람들 모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좋은 책이다. 이 책을 옆에 두고 가끔씩 읽어본다면 작가로 오래 머무르며 살아가는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